
양반들은 애초에 다주택자라 입궐하기 용이한 가회동-삼청동에 관사의 형태로 기거하면서 교외/경기지역 농토를 소유하며 별서(別墅)를 지어 풍류를 즐기는 동시에 품계의 마지노선인 능참봉들 또한 한양 외곽에 상주했고 역설적으로 고관대작일수록 안동이나 전주같이 가문의 뿌리가 되는 곳에 재실(齋室)을 보유하는데 벼슬을 하지 않는 이들은 아예 거기서 서원과 향교를 중심으로 만석꾼으로 살아가며 전주 이씨 효령대군파 고택인 선교장이나 오죽헌, 소쇄원같이 멋진 곳들은 오히려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어 똘똘한 한 채 호소하는 현대의 1주택 서민층 기준으로 생각하면 상당한 괴리가 있듯이 지방출신이면서 고향을 속이며 서울사람인 척 하는 무주택자들은 족보를 위조하고 가문의 기반이 없는 도망노비나 화전민 후손일 가능성이 높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