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 경작지자체가 일본보다 작기때문에 전체적으로 봤을때에는 일본보다 벼의 생산량 자체가 높지는 않았어

다만 그 면적대비로했을때 조선은 극한까지 올린것임 

일단 퇴비법이 동양 3국중에 가장많이 발전했어 

왕이 직접 농사를 지을정도로 농사는 조선한테 있어서 근본중에 하나였어

그래서 사 농 공 상에서 두번째에 위치한게 농사꾼이야 

왜 서양기술을 받아들이지않았냐고?

그때는 명나라 청나라 통하면 그게 세상의 중심이었어 굳이 서양하고 친교를 하지않아도 

중국가면 다 볼수있었어 

더욱이 동인도회사가 조선과의 접선을 일본한테 부탁했을때 

일본이 뭐라고했을까? 

너희들 조선하고 통교하면 더이상 우리와의 통교는없다라고 협박까지해서 조선과의 통교를 막았어 

조선이 괜히 쇄국정책을 편게 아니야 일단 명나라가 쇄국정책이었거든 

그렇다고 백성을 쥐어짯냐? 

생각이상으로 쥐어짜지도않았어 세금을보면 대략 생산량의 10~15%야 

일본은?  70%였어 

임란때 백성들이 자신들이 그렇게욕하는 왜 정부에 붙어서  싸웠을까?

일본애들이 선심쓴다고 조선은 60%로 세율을 쳐먹임 

하루아침에 세금 10~15% 내던애가 갑자기 그말들으면 어떤생각이 들까? 낫부터 들어야겠지? 

그래서 의병이 그렇게 많았던거야 

조선보고 헬조선하는데 조선 행정은 그당시기준으로 봤을때 생각이상으로 합리적인 부분이 상당히 많았어

그리고 노비가지고 까는데 

일단 노비가 재산을 보유할수있었어 세금도안내 그리고 출산휴가도 줘 

더욱이 외거노비가 90%이상인데 외거노비는 자기주인하고 볼일이없어 평생가도 

대략 100키로정도 주인집이랑 떨어져서 농사나 짓고살았기때문에 

그러다 한번 찾아가는때가 오기도 해 이제 자기가 돈도 좀 모았고 노비딱지 좀 떼고싶으면 주인하고 협상을 해 

돈 드릴테니까 노비문서 좀 돌려주쇼 하고 그럼 그때부터 양민이야 

그런데 그렇게 양인이 된 케이스가 조선후기에가면 급작스럽게 늘어나기는 하는데 못먹고 못살때는 많지않았어 양인이되면 세금을 내야되거든 

그래서 조선은 재정적으로 항상 부족한 국가였어 그래서 왕이 어떻게든 노비수를 줄이고 싶어했어 

양반들은 늘리고싶어했고 (여차하면 본인들 병력도 될수있고 노동력으로도 쓸수있고 무엇보다 농사 마스터거든) 

그래서 1800년 정조가 죽자마자 행한게 공노비 해방이었어 대략 6.6만명 

자꾸만 조선을 노비때문에 욕을하는데 왕은 진짜 끔찍하게 싫어한게 노비야 

마지막으로 한가지 

고려장이라고 이름붙은 부모갖다버리는 폐륜 행위는 일본애들이 했던거야 

고려장이라는 이름도없어 어떤 역사책을 찾아봐도 안보여 

만약 고려장이 있었으면 대략 고려때부터 있었다는건데 이름만보더라도.. 이걸 조선에서 죽도록 까겠지 

조선은 효의 나라인데 당연히 조선에선 있을수도없는일이고 그짓했다가 9족이 멸족당할걸 

천주교 믿던 양반이 제사안지낸다고 미친놈 혹은 짐승이라고까지 욕을하면서 죽인기록이있을정도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