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에서 )

2002년 월드컵 4강이라는 기적을 선물한 
거스 히딩크 감독의 자서전 ‘마이 웨이(My Way)’를 집필하던 당시,
필자는 본사 선배와 함께 네덜란드 현지에서 두 달 반을 머물렀다.
매일 암스테르담과 아인트호벤을 오가는 히딩크 감독의 차량에 동승해 구술을 받아 적고,
녹음한 파일을 밤새 풀어 글로 옮기며 그의 삶을 추적했다.
구단 관계자와 선수들, 고향 바르세벨트의 이웃들도 만났다.
그의 평생 연인 엘리자베스의 조력을 받으며 써 내려갔다.
 

필자가 집요하게 파고든 질문은 하나였다.
화려한 스타 선수 출신도 아니었던 그는 어떻게
축구 변방의 국가들을 세계 정상급으로 올려놓는 마법사가 되었을까.

그 답은 정교한 ‘시스템’과 끊임없는 ‘공부’에 있었다.
전문대 졸업장이 전부였던 히딩크는 선수 은퇴 후 동네 축구팀을 맡아
한 단계 올라설 때마다 엄격한 자격증 시험을 치렀다고 한다.
그는 암스테르담 시내 어느 허름한 건물 앞을 지나면서 “바로 여기서 몇 달씩 수업을 들었다”며
“최종 시험을 통과해야만 다음 상위 리그 지휘봉을 잡을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때 4년제 대학 학위도 받았다고 한다.히딩크를 배출한 네덜란드는
전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인 축구 지도자 교육 시스템을 자랑한다.
네덜란드 축구협회의 자격증은 유럽축구연맹(UEFA) 가이드라인에 따라
프로 최상위 리그를 지휘할 수 있는 ‘UEFA Pro’부터 ‘UEFA A·B·C’,
그리고 생활체육 단계까지 피라미드 구조로 촘촘하게 구성돼 있다.

1부 리그 정식 감독이 되기 위한 최고 등급인 ‘UEFA Pro’ 과정은
전술 고도화는 물론 미디어 대응, 구단 경영진과의 소통,
수백억 원대 선수단의 심리를 관리하는 최고경영자(CEO) 코스로 악명이 높다.

이 시스템이 가장 무서운 것은 평생 보장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네덜란드에서 모든 지도자 자격증의 유효 기간은 딱 3년이다.
자격증을 갱신하려면 3년 동안 최신 전술 세미나,
비디오 분석, 스포츠 심리학 강좌 등을 이수해야 한다.
공부를 게을리하는 지도자는 가차 없이 자격이 박탈된다.

이 냉혹한 검증 체계가 바로 인구 1700만명의 소국 네덜란드가
히딩크, 요한 크루이프, 루이스 판 할 같은 세계적 명장을 끊임없이 배출하는 원동력이다.

당시 그에게 미래의 한국 대표팀 감독에게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이냐고 물었다.
히딩크는 ‘평생 공부하는 자세’라고 답했다. “나는 자격증을 받기 위해 전문 심리학까지 공부했다.
선수들을 주눅 들지 않게 하고 개개인의 성향을 파악해 기량을 극대화하는 지도력을 보여야 성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