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로 남은 조선시대 간찰(簡札)들이 그렇듯 언문(諺文)은 군영에서 무반들이 빠르게 써 내려가던 일종의 필기체에 양인 병사들도 읽어 뜻이 통했는데 여말선초 위화도회군은 물론 강무(講武)를 가장 활발히 시행하고 갑사(甲士)가 최정예시절이던 세종의 4군 6진 개척과 대마도 정벌을 통해 당시 상무적 기상이 남아있던 조선의 상황에서 만주, 일본에 대한 정복활동을 염두했음을 알 수 있으며 이런 군사적 목적의 소통과 피아식별을 위해 한글을 창제했음을 알 수 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