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히 단결한 공산군과 달리, 남베트남의 민주 정치는 분열되어 있어 결집력이 약했다. 게다가 소련과 중공은 공산군을 끊임없이 지원했다.
남베트남 사회 고위층, 언론계, 종교계, 심지어 대통령 비서실까지 북베트남의 간첩이 깊숙이 침투해 있었다. 이들은 반전 여론을 선동하고 국가 기밀을 북측에 실시간으로 넘겼다.

남베트남은 민족주의자-평화주의자로 위장한 5만명의 간첩에 의해 패망했다. 사진은 1966년 5월 남베트남 수도 사이공에서 열린 반전시위 장면이다.
5만명의 월맹간첩들은 민족주의자, 평화주의자, 인권운동가로 위장한 채 시민, 종교단체는 물론 대통령비서실장과 장관, 도지사 등 권력핵심부를 장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간첩이었다는 사실은 미군의 전면철수 후 베트남 패망으로 수많은 시민들이 죽어간 이후에나 확인되었다. 1967년 치러진 베트남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된 야당지도자 쭝딘쥬가 대표적 간첩이었다. 그는 "외세를 끌여들여 동족들끼리 피를 흘리는 모습을 조상들이 얼마나 슬퍼하겠냐"면서 북베트남에 대한 '포용정책'을 주동했다. 간첩들이 가장 많이 침투했던 것은 시민, 종교단체, 반미, 반전 평화운동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선전선동을 통해 대중적 지지기반을 확대해가면서, 국방과 안보를 강조하는 사람은 전쟁에 미친 또는 정신나간 사람으로 취급받았다.
1973년 미군이 철수할 당시 남베트남군(ARVN)의 군사력은 수치상으로 세계 4위권에 달하는 초강력 군대였다. 미국은 철수하면서 자신들이 쓰던 최첨단 무기를 고스란히 남베트남에 넘겨주었고, 이를 '엔핸스 플러스(Enhance Plus)' 작전이라고 불렀다.
문제는 미국이 준 무기를 유지하고 운용할 능력과 의지가 남베트남에 없었다는 점이다.
극심한 부패로 인해 군 지휘관들은 미국이 지원한 최신 무기와 군수물자를 암시장에 빼돌려 팔아넘겼다. 심지어 이렇게 유출된 무기 가운데 일부는 간첩들의 손을 거쳐 적군인 북베트남군에까지 넘어갔다.
1975년 초 북베트남 정규군이 전면적인 남침을 감행했고, 남베트남 방어선은 순식간에 붕괴되었다. 이로 인해 1975년 4월 30일, 북베트남군이 수도 사이공을 함락하면서 남베트남은 패망했다.

사이공의 마지막 이륙: UH-1H 휴이(Huey) 헬리콥터이다. 베트남 전쟁을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다목적 헬기이다. 미 대사관이 아니라, 당시 CIA 직원들의 숙소로 쓰이던 사이공 시내의 한 아파트(Pittman Apartment) 옥상이었다. 민간 항공사인 '에어 아메리카(Air America)' 소속의 휴이 헬기가 사람들을 긴급 대피시키는 모습이 사진가 휴 반 에스(Hugh Van Es)에게 포착되어 전 세계에 타전되었다.

공산군에 의해 남베트남 주민 10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남베트남이 패망한 지 불과 5년 뒤인 1980년, 한국 군부가 삼김이 서로 대통령이 되기 위해 갈등하고 분열하는 모습을 보며 떠올린 것은 바로 남베트남이었다.
한국은 지금도 분단국가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며, 친북 세력과 간첩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