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人は、「変わった瞬間」よりも、“なぜその選択をしたのか”に、その人の本質が出ると思っている。

私は昔から、自分という存在を、少しだけ他人事のように見て生きてきた。

井手上漠という名前。その輪郭。空気感。言葉。視線。沈黙。

どう在れば、美しいのか。どう崩れれば、人は惹かれるのか。

気づけば私は、自分自身を素材にしながら、“井手上漠”という作品を作るように生きていた。

でも、本当に苦しかったのは、他人にどう見られるかではなく、自分自身との距離だった。

鏡に映る姿は嫌いじゃなかった。たくさん「綺麗」と言ってもらえてきた人生だったと思う。

それでも、どこかずっと、“自分の感覚”だけが置いていかれている気がしていた。

私は、女性になりたかったわけじゃない。

でも同時に、女性になれるとも思っていない。

そして、「男性として生きればいい」という言葉にも、どこか自分が綺麗には収まらなかった。

だから今回の選択は、きっと多くの人にとって矛盾して見えると思う。

女性になりたいわけではないのに、女性の象徴とも言われる胸を手に入れる。

その行為を、不思議に感じる人がいることも理解している。

世の中には、男性と女性という大きな性別の枠組みがある。

その前提の中で見れば、私の選択が“曖昧”に映ることにも異論はない。

でも私は、そのどちらかに綺麗に辿り着きたかったわけじゃない。

“どちらになるか”よりも、“どう在ると自分が自然でいられるか”を大切にしたかった。

正直、この感覚は、マジョリティのセクシャリティの中で生きている人には、完全に理解することは難しいと思う。

それは責めたいわけじゃない。

きっと、自分が平気なものを「なぜ食べられないの?」と聞き続けるくらい、感覚の前提が違う話だから。

アレルギーを持っている人に、「大丈夫だから食べてみなよ」と言うことが苦しいように、

“自分じゃない感覚”の身体で生き続けることにも、言葉にしづらい苦しさがある。

でもそれは、誰かが悪いわけじゃない。

ただ、生きている感覚の形が少し違うだけなんだと思う。

人はよく、「身体を変える」というと、欲望やコンプレックスの話だと思う。

でも私にとってそれは、“足りないものを埋める行為”ではなかった。

どちらかというと、自分の感性と身体の距離を整えていく作業に近かった。

心に合わせて髪を切るように。季節によって服を変えるように。

身体もまた、自分の意思で選び取っていけるものなんじゃないかと思った。

でも、この選択をするまで、本当に怖かった。

自分のために選ぶことが、誰かを傷つけてしまうんじゃないかと思っていた。

応援してくれていた人。昔から見守ってくれていた人。大切な家族。大好きな人たち。

「変わってしまった」と思われたらどうしよう。悲しませたらどうしよう。失望されたらどうしよう。

ずっと、その怖さがあった。

だから何度も、自分に問いかけた。

これは本当に、自分のためなのか。ただの欲じゃないのか。逃げじゃないのか、と。

でも、考え続けた先で、やっと気づいた。

自分の人生を、自分の感性で選び抜くことは、決して“誰かを裏切る行為”じゃない。

むしろ、自分を押し殺しながら生きることの方が、周りの愛に対して不誠実なのかもしれないって。

そしてもうひとつ、気づいたことがある。

自分のために勇気を出す姿は、誰かにとっての勇気にもなるんだということ。

「自分の人生を生きていいんだ」

そう思えるきっかけになることもあるんだって。

だから私は、隠さずに言葉にすることにした。

昨年、私は豊胸手術を受けました。

正直、想像していたより遥かに怖かった。

術後、過去一ひどい痛みに襲われた。

眠れない夜。息をするだけで響く身体。何もしていないのに流れる涙。

痛みだけじゃなかった。

「私は本当に変わってしまうんだ」という怖さが、ずっと胸の奥にあった。

不安で、怖くて、何度も泣いた。

でも、その時間を越えて、少しずつ身体が自分に馴染んでいくたびに、不思議と、自分自身との距離も近づいていった。

胸を手に入れた、という感覚ではなかった。

やっと、自分の感性に身体が追いついてきた。

そんな感覚だった。

私は、完成したいわけじゃない。

変わり続けたい。

変化することは、今の自分を否定することじゃない。

もっと自分を理解していくことなんだと思う。

これからの私は、今までよりもっと、感性に近い場所で言葉を紡いでいくと思う。

もしかすると、“井手上漠らしさ”も少しずつ形を変えていくのかもしれない。

でもそれは、偽物になるということではなく、

やっと、自分の人生を、自分の感覚で生き始めるということ。

今日から。

井手上漠の第二章を、静かに始め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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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번역본
 

사람은 '변한 순간'보다도,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에 그 사람의 본질이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나는 오래전부터, '나'라는 존재를 조금은 남의 일처럼 바라보며 살아왔다.
 

이데가미 바쿠라는 이름. 그 윤곽. 분위기. 말. 시선. 침묵.
 

어떻게 존재해야 아름다운가. 어떻게 무너져야 사람들의 마음을 끌 수 있는가.
 

어느새 나는, 나 자신을 하나의 소재로 삼아 '이데가미 바쿠'라는 작품을 만들어가는 것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 힘들었던 것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가 아니었다.
 

오히려 나 자신과의 거리감이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싫었던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예쁘다", "아름답다"는 말을 들으며 살아온 인생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어딘가에서는 늘, 나 자신의 감각만이 홀로 뒤처져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여성이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동시에, 여성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
 

그리고 "남성으로 살아가면 되잖아."라는 말 역시, 내게는 어딘가 자연스럽게 와닿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선택은 많은 사람들에게 모순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여성이 되고 싶은 것은 아닌데, 여성의 상징이라고도 여겨지는 가슴을 갖게 된다.
 

그 행동을 이상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충분히 이해한다.
 

세상에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큰 성별의 틀이 존재한다.
 

그 전제에서 본다면, 내 선택이 애매하게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 어느 한쪽에 깔끔하게 도달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어느 쪽이 될 것인가'보다, '어떻게 살아야 내가 가장 자연스러울 수 있는가'를 더 소중하게 여기고 싶었다.
 

솔직히 이런 감각은 다수의 성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누군가를 탓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자신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음식을 먹지 못하는 사람에게 계속해서 "왜 못 먹어?"라고 묻는 것처럼, 애초에 감각의 전제가 다르기 때문이다.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에게 "괜찮으니까 한번 먹어 봐."라고 말하는 것이 괴로운 것처럼,
 

'내 것이 아닌 감각의 몸'으로 살아가는 것에도 말로 다 설명하기 어려운 고통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저 살아가는 감각의 형태가 조금 다를 뿐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흔히 '몸을 바꾼다'고 하면 욕망이나 콤플렉스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에게 그것은 부족한 것을 채우는 행위가 아니었다.
 

오히려 내 감성과 몸 사이의 거리를 조금씩 맞춰가는 작업에 가까웠다.
 

마음에 맞춰 머리를 자르듯이.
 

계절에 따라 옷을 갈아입듯이.
 

몸 역시 내 의지로 선택해 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 선택을 하기까지는 정말 두려웠다.
 

나를 위한 선택이 누군가를 상처 입히는 일이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응원해 준 사람들.
 

오랫동안 지켜봐 준 사람들.
 

소중한 가족.
 

사랑하는 사람들.
 

"변해 버렸네."
 

그렇게 생각하면 어떡하지.
 

슬퍼하면 어떡하지.
 

실망하면 어떡하지.
 

그 두려움이 늘 마음속에 있었다.
 

그래서 수도 없이 스스로에게 물었다.
 

정말 나를 위한 선택인가.
 

단순한 욕심은 아닌가.
 

도피는 아닌가.
 

그렇게 계속 고민한 끝에, 마침내 깨달았다.
 

내 삶을 내 감성으로 선택하며 살아가는 것은 결코 누군가를 배신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을 억누르며 살아가는 것이 주변 사람들의 사랑에 더 불성실한 일일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또 하나 깨달은 것이 있다.
 

나를 위해 용기를 내는 모습은, 누군가에게도 용기가 될 수 있다는 것.
 

"내 인생을 살아도 되는구나."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숨기지 않고 말하기로 했다.
 

지난해, 나는 가슴 확대 수술을 받았다.
 

솔직히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무서웠다.
 

수술 후에는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심한 통증을 겪었다.
 

잠들 수 없는 밤.
 

숨을 쉬기만 해도 온몸에 울려 퍼지는 통증.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흐르는 눈물.
 

괴로웠던 것은 통증만이 아니었다.
 

"나는 정말 변하게 되는구나."
 

그 두려움이 계속 가슴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불안했고.
 

무서웠고.
 

수없이 울었다.




3줄 요약)
1. 남성이나 여성이 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성과 몸의 괴리를 줄이기 위해 가슴 확대 수술을 선택했다고 함
2. 이 선택은 외모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진정한 자신답게 살아가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설명.
3. 앞으로도 고정된 정체성에 머무르기보다 계속 변화하며, 자신의 감성에 더욱 솔직한 '이데가미 바쿠의 제2장'을 시작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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