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친중파 발생의 근원에 대하여, 정면 비판하는 근거 자료 갖추기.
“역사학자 강만길은 1987년 직후 [창작과비평]을 비롯한 여러 지면을 통해, 분단 극복과 민주화를 향한 당시 시대적 과제를 1930년대 만주지역 민족해방운동(혹은 좌우합작 통일전선운동)에 빗대어 설명했습니다.”(구글ai)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미국이 이승만을 뺀 나머지를 못 믿겠다고 봐서, 이승만이 해방공간의 승자가 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3.1운동 직후 3년간 서방자유진영에 독립운동은 구애했고, 도움이 없었고 1922-45년까지 소련공산당만이 항일운동에 지원했다. 불편한 진실은 항일운동은 조선공산당과 연계였고, 유교 자체가 공산주의(혹은 소련에 줄선 동학 계파 적용)인 영역에 있엇다. 1928년 소련의 조선공산당 해체지령은 11월 테제 이후에, 조선공산당이 불가능해지니 공산파는 만주에서 중국공산당과 연합했습니다. 김구 선생 악마만들기는 하지만, 정작 소련이 관리했던 중국지역 민족해방운동의 축인 김규식선생은 도리어 감춥니다.
1987년 이후 공산주의에 반대함은 일제잔재라고 민족은 공산좌파 민족운동을 부정할 수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군사정권에서 반공민족주의로 고문수사 공권력 남용을 반대할 수 없다는 논리에서 사고구조는 같고 변주곡이다.
1980년대 반공교과서는 군사독재가 영원하다는 전제로 그 중심의 우주중심론(중화사상)으로 운동권 대학생을 비하하는 의미가 있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독립운동가 후손이라 미화된 공산파 파워 인사가 많아도 너무 많다.
(2) 김일성주의도 없이, 마르크스주의도 없이, 어쩌면 한점 불순물 없는 호남유교 사상 및 호남동학사상으로서 공산주의로 평가되며, 인간인권을 침해될 수 있는 사상의 가능성.
모택동주의의 발생은 1925년 곽말약의 공자 마르크스주의 연결 전제. 중국은 마르크스주의를 자국의 반만년 유학의 연장선으로. 1980년대 반공주의는 일제시대의 뼈대있는 호남양반가문의 민족해방운동 참여를 비하돼서, 이분들이 모욕을 느끼는 의미가 발생했다. 그런데, 미중패권전쟁은 사실은 1980년대 반공주의로 설명불가능한, 시진핑 중국의 ‘공자 전파’를 중국사에서 뿌리깊은 ‘공자=마르크스’로 해석한 것에 있다고 보는, 미국의 반응인 것이다. 삼성전자의 이익공유제 수용은 일제시대 공산파의 유교공산주의. ai 대전환은 민정당 국가주의의 유교자본주의 어법. 양쪽에서 편의적으로 자의적으로 끼워맞췄다. 꼭, 1980년대 반공주의는 공산주의를, 백의민족성에 흠집이 되는 외부의 수입품으로 봤다. 외부 수입품도 아니며, 지금 대형도서관에 깔린 공산주의 운동사 서책대부분이 토착신앙으로 본다. 지금 지배층 권력은 코어 귀족이니까 무흠하다. 그러나, 코어귀족이 외부수입 아니라고 해도, 인권 유린의 발생은 가능했다는 점.
(3) 오세훈 서울시 및 지방자치 정책에서 6.25 전쟁 때 공산군의 살포 혹은 조선후기 노론독재 때의 시혜주의적 복지와 닮아 버리는 측면으로, 보수진영에서 개인의 자유와 재산권 중시를 하는 사고관이, 조갑제의 박정희 책장사 이후 거의 소멸급으로 말살됐다는 점.
1980년대 반공주의는 군사독재는 정상이고 외부인사가 잘못이라는 점을 깔았다. 그러나, 유교 자체가 공산주의로 생각하는 것이 보수진영 깊숙이 조갑제기자와 함께 들어왔다. 지금, 미중 패권전쟁의 본질적 문제는, ‘유교자체가 공산주의’로 해석되는 문화로 해석되는 시장경제를 믿느냐? 자유진영 대부분의 국가가 절레절레. 레이달리오 1명만 정신줄 나감.
부정선거 피해당한 분들의 올림픽 공원 시위도 문제. 보수주의 세계관의 해법이 아니라, 민중민주주의 방식의 해법임. 남을 비판하려면 비판하는 자가 그 모순을 저지르면 안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