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제고 학생들의, 5.18 비하 응원가 사용을 바라보는 몇 가지 시선, chatgpt
Posted on 2026-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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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암묵적으로 잣대라고 정한 것들을 건드리려는 시도에 대해선 사회적으로 완전히 매장하려는 시도가 늘 있어 온 것 같음.

그런 경향은 역사적으로 반복해서 관찰됩니다.

어떤 사회든 “당연한 것”, “상식”, “질서”라고 여겨지는 기준들이 있는데, 누군가가 그것에 의문을 제기하면 처음에는 강한 저항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히 기득권의 문제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 기준을 통해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안정감을 얻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 갈릴레이
노예제 폐지를 주장한 초기 폐지론자들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
노동시간 단축을 주장한 노동운동가들
이들은 오늘날에는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주장을 했지만, 당시에는 위험인물이나 사회질서 파괴자로 취급되기도 했습니다.

다만 흥미로운 점은, 모든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이 옳은 것도 아니고, 모든 기존 질서가 틀린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회는 보통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칩니다.

이단 취급
“말도 안 된다.”
위험인물 취급
“저 사람 때문에 사회가 무너진다.”
논쟁
“혹시 일리가 있나?”
부분 수용
“일부는 맞는 것 같다.”
새로운 상식
“원래 다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그래서 어떤 새로운 생각이 사회적으로 공격받는다고 해서 반드시 옳다는 뜻도 아니고, 반대로 공격받는다고 틀렸다는 뜻도 아닙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그 주장 자체가 사실에 부합하는가, 인간과 사회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가를 차분히 살펴보는 것이겠죠.

사용자가 자주 이야기하는 역사 이야기에 비추어 보면, 조선의 신분제나 노비제도도 당시에는 “당연한 질서”였지만 후대 사람들은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봅니다. 현재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 중에도 미래 세대가 의아하게 바라볼 것들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역사는 “상식과 질문의 끝없는 대화”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새로운 질문이 없으면 사회는 굳어지고, 기존의 검증이 없으면 사회는 혼란스러워지니까요.

오늘, 배제고 학생들이 학교 야구부 응원을 한다고 상대편인 광주 제일고를 깍아 내리기 위해 5.18을 주제로 비하했다는 글을 봤는데, 여기엔 1. 5.18이란 성역을 의심하는 시각과 2. 학생들이 응원에 이것을 사용하려 했다는 두 가지 시선이 묘하게 섞였음.

그런 경우는 말씀하신 것처럼 사실 하나의 사건 안에 여러 층위가 섞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학생들의 응원 문화와 행동의 문제
상대 학교를 자극하거나 비하하기 위해 특정 역사적 사건을 응원 소재로 사용한 것이 적절했는가?
학교 스포츠 문화에서 어디까지가 응원이고 어디부터가 선 넘는 비하인가?
5·18에 대한 역사적 평가 문제
5·18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비판적 검토가 가능한 역사적 사건인가, 아니면 사회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가진 사건인가?
이 두 질문은 원래 별개인데, 현실에서는 종종 하나로 엉켜 버립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학생들의 행동이 부적절했다”는 말을 하면서도 동시에 “역사적 사건에 대한 토론은 가능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5·18에 대한 비하가 포함되었으므로 응원 문화의 문제를 넘어서 역사 왜곡의 문제”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사용자가 앞서 말한 “사회가 암묵적 잣대를 건드리는 사람을 매장하려는 경향”과도 연결되는 부분입니다.

사회에는 보통 세 종류의 영역이 있습니다.

자유롭게 비판 가능한 영역
비판은 가능하지만 매우 조심스러운 영역
사실상 성역처럼 취급되는 영역
어떤 사건이 세 번째 영역에 들어가면, 그 사건 자체에 대한 비판과 그 사건을 이용한 조롱이 구분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로 역사 연구자의 입장에서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검토”와 “희생자에 대한 조롱”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런 논란을 볼 때는,

“학생들의 행동이 적절했는가?”

“역사적 사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허용되어야 하는가?”

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두 질문에 대해 각각 다른 답을 내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역사 연구와 비판적 검토는 가능해야 한다.”
“그렇다고 스포츠 응원에서 특정 비극적 사건을 상대 비하 소재로 쓰는 것은 부적절하다.”
라는 입장도 충분히 성립할 수 있습니다.

결국 논쟁이 커지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첫 번째 질문과 두 번째 질문을 같은 질문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한쪽은 “응원 문제를 지적하는 것”을 역사 해석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다른 쪽은 “역사 해석을 말하는 것”을 응원 문화의 문제 회피로 받아들이면서 대화가 엇갈리게 되는 것이죠.

https://gesara.life/archives/614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