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하포 사건은 1896년 3월 9일, 청년 김구(당시 20세)가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의 한 주막에서 일본인 쓰치다 조스케(土田讓亮)를 살해한 사건
https://namu.wiki/w/%EC%B9%98%ED%95%98%ED%8F%AC%20%EC%82%AC%EA%B1%B4
나중에 사건다 지나고나서 풀려난(!?)김구의 자기합리화에 따르면
-김구는『백범일지(친필본)』에 “왜놈의 소지품을 조사한 결과, 그 왜놈은 토전양량(土田讓亮)이고, 직위는 육군 중위(陸軍中尉)요. 소지금이 엽전(葉錢) 팔백여 냥[5]
사실관계:(상인을 돌로쳐서기절시켜서 칼로난도질하고 절도한사건)이후 김구가 풀려나자 일본군인으로 자기합리화를함.
『백범일지』에서는 그를 일본군 장교로 기록했으나, 이후 학계 연구에서는 그가 '계림장업단' 소속의 민간 상인
土田(쓰치다)은 長崎県(나가사키현) 對馬島(대마도) 下郡(하군) 嚴原(이즈하라) 사람으로 當港(당항) 貿易商(무역상) 大久保 機一(오쿠보 키이치)의 雇人(고인)으로 1895년 10월 鎭南浦(진남포)에 도착한 후, 11월 4일 黃州(황주)로 가서 활동하였고, 1896년 3월 7일 진남포로 귀환하는 도중 이같은 일을 당하였다.
동경 소재 일본 외무성 외교사료관의 자료에 의하면 쓰치다는 계림장업단에 소속되어 있었다. (중략) 이 단체가 전국적인 조직을 완비하는 것은 1896년 4월이지만, 각지 지부는 이미 결성되어 있었다.
1997년 ‘백범일지’ 역주본을 낼 때 밝혔던 것임을 강조했다. 그는 이 책 98쪽에서 “일본 외무성 자료에 의하면 쓰치다(土田)는 나가사키(長崎)현 대마도 이즈하라(嚴原)항 상인으로, 1895년 10월 진남포에 도착한 후 11월 4일 황해도 황주로 가서 활동하였고, 1896년 3월 7일 진남포로 귀환하던 길
쓰치다(土田譲亮)의 직위를 육군 중위로 기록한 원본의 잘못을 지적하고, 일본 외무성 자료에 근거하여 쓰치다는 일본 鷄林奬業團(계림장업단) 소속의 상인임을 밝혔다
손세일은 토전양량에 대해 조선정부가 배상한 일본측 기록을 발굴하여, 그가 賣藥商人이었음을 입증
살해동기: 밥 나먼저안주고 먼저주문한 젊은이에게 밥을줌(틀딱분노)
-검찰조서-1차-
발(足)로 차 넘어뜨린 후 손(手)으로 타살했다(以足으로 推蹵顛仆後 以手로 打殺)
점막(店幕)의 법의(法意: 법도)가 나그네에게 밥상을 줄 때는 행인의 노소(老少)를 분별하여 그 차례를 마땅히 지켜야 하는데도
그중에 단발을 하고 칼을 찬 수상한 사람이 앉아서 먼저 달라고 하자 점인(店人)이 그 사람에게 먼저 밥상을 주므로(先給食床) 마음으로 심히 분개.
(발로차넘어뜨리고 죽여 얼음강에 던져죽였다)
- 일본인이 한눈을 팔고 있는 틈을 타서 발로 차 넘어뜨린 후에 손으로 때려 죽여서 얼음이 언 강에 버렸다.
***-검시후-타살, 칼로 난도질한 자상보고후***
-검찰조서-2차-(검시후) 돌로때려 도망가니 쫒아가서 나무로 떄려죽였다
처음에 돌(石)로 때리고 다시 나무(木)로 가격함에 따라 넘어졌던 도주하기에 강변까지 쫓아가서 나무(木)로 연타하여 살해했다
***검시후-타살, 칼로난도질한 자상-에대해 추궁한후***
일본인을 발로 차서 넘어지게(踢墜: 척추) 하자 그때 그가 칼을 뽑아 들기에(拔劒)
돌(石)을 던져 땅바닥에 쓰러지게 하고 즉시 칼을 빼앗아 찬 후(奪取佣劒) (둔기살해와 칼로 살해실토)
동행 세 사람과 방안에 있던 여러 행인들이 모두 분기를 띠고 힘을 합해 타살(打殺)했다.(*공범을만들어 범죄희석시도)
검찰조서 1차 2차 3차를 보면
-주문에 따라 밥을 먼너먹은 젊은 사람에 대해 분개함...분노폭발
-새벽에 젊은이 모르게 뒤따라가 돌로가격 기절시킴
-칼로 난도질후 금전절취. 임.
그리고 이 범죄를 합리화하기위해
1)공범을 만들어 끌어들임. 2)피해자를 일본인이라는 점을 이요해 일본군인으로 둔갑시킴
최초에 발로차 넘어뜨려 얼음강에 던졌다는 부분에서 상대방이 의심없이 가해자를 인식하지 못하는 새벽길에 뒤따라가
2차 3차조서를 통해서 돌로 때려 기절시키고 칼로 난도질하고 금품을 빼앗은것으로 판단됨.
물론 기회주의 김구는 김일성에게 나라 팔아먹고
한자리 거하게 차지할 생각만 했던것으로 보임.
-김일성과 공산당을 추종했던 기회주의자 '김구'....
백범일지 실체는 이랬다https://www.ngopress.kr/news/articleView.html?idxno=1364
문제의 원인은 -조선-시대 사람이라는거.
밥에 목숨을 걸정도로 구구절절한 "대식이"였던것이고,
거기다 "틀딱"특유의 "자기합리화"가 반복되었던
둔기살인을 저지를정도로 "상습(!?)"적 범죄를 했을 확률이 높음
-연쇄살인마 정남규는 처음에는 칼로 실수가 반복되자 둔기살인으로 범죄를 바꾸게된것을 보면 프로페셔널한 살인마일 확률이 높다는점.
연쇄살인범 정남규가 범행 후기에 주로 사용한 대표적인 둔기는 길이 약 40cm, 무게 2.18kg에 달하는 철제 파이프렌치(Pipe Wrench)입니다. [1]
-범행 도구의 변화: 정남규는 범행 초기(2004년)에는 주로 날카로운 칼(예기)을 사용해 길거리에서 피해자들을 습격했습니다.
그러나 범행 후기로 갈 수록 피해자의 집 안으로 직접 침입해 잠들어 있는 피해자를 둔기(파이프렌치)로 내려치는 방식으로 잔혹함을 키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 ?v=Ez3nyrXxl7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