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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 제목 : 물리에서의 차원과 전기 이야기

 

특강 교수 : SOO JO CHAE 서울대 물리학과 학사, 석사, 박사

                 현 서울시립대 교수

 

물리에 대한 거부감은 우리 사회에서 유난히 크다.

 

그러다 보니 수능에서도 물리는 늘 선택자가 가장 적은 과목 가운데 하나가 된다.

 

반면 세계 이공계를 이끌고 있는 인도와 중국에서는 수학과 물리가 사실상 필수 과목에 가깝다.

 

이 차이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물리를 가르치는 사람들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오랫동안 강의하면서 같은 실수를 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학생도 당연히 쉽게 이해할 것이라고 착각했다.

 

남을 가르친다는 것은 “자식을 마음대로 키우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수십 년 강의를 하면서 그나마 효과가 있었다고 느낀 방법 하나를 소개해 보려고 한다.

 

2학기가 되어 일반물리에서 전자기학을 시작하면, 첫 시간에 학생들에게 번개와 휴대폰 배터리를 비교해 준다.

 



 

그리고 퀴즈 문제로 낸다고 협박도 한다.

 

그러면 다들 평소보다 훨씬 열심히 듣는다.

 

번개는 자연이 만든 전기 현상이고, 휴대폰 배터리는 인간이 만든 전기 저장장치다. 둘을 비교하면 전기의 기본 개념을 거의 모두 설명할 수 있다.

 

나는 번개를 아주 단순하게 다음과 같이 가정한다.

 

구름에 저장된 전하량은 약 10C, 전압은 약 1억V.

그러면 저장된 에너지는

E = QV = 10 × 1억 = 10억J

가 된다.

 

만약 이것이 약 1/100초 동안 방전된다면 전류는 약 1000A이고, 순간 출력은

10억J ÷ 0.01초 = 100GW

가 된다.

 

순간적으로 원자력발전소 수십 기를 합친 것보다 큰 출력이다. 그래서 번개를 맞으면 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에너지가 아무리 많아도 전압이 너무 높아 저장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전하량은 겨우 10C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내가 핵물리 실험에서 사용했던 반데그라프 정전가속기도 인간이 사용하는 최고 수준의 정전압 장치였지만 수십 MV, 즉 수천만 볼트 정도였다.

 

번개의 전압에는 한참 못 미친다.

 

그 다음에는 학생들에게 자기 휴대폰의 배터리 규격을 찾아보게 한다.

 

예전에는 사진처럼 분리형 배터리를 꺼내 읽게 했고, 요즘은 일체형이므로 인터넷에서 자기 휴대폰 모델의 배터리 규격을 검색하게 한다.

 

사진은 예전에 사용하던 삼성 휴대폰 배터리로 이렇게 적혀 있다.

3100mAh, 3.8V, 11.78Wh

 

학생들에게 직접 계산을 시킨다.

3100mAh는 3.1Ah이다.

그리고

3.1Ah × 3600초 = 11160C

이다.

 

휴대폰 배터리 하나에 저장된 전하량이 번개의 10C보다 오히려 천 배 정도 많다.

 

여기서 학생들이 한 번 놀란다.

 

전기 현상은 단순히 “전하가 많다, 적다”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전압이 얼마인지, 에너지가 얼마인지, 그 에너지가 얼마 동안 방출되는지가 모두 중요하다.

 

3.1Ah라는 말은 0.31A를 10시간 흘릴 수도 있고, 3.1A를 1시간 흘릴 수도 있다는 뜻이다.

 

나는 계산을 쉽게 하기 위해

0.31A × 10시간

으로 설명한다.

 

그러면서 농담도 하나 덧붙인다.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 비타500 음료수에 들어 있는 비타민 C가 500mg인데, 이것을 0.5g이라고 쓰고 이름을 “비타 0.5”라고 했으면 과연 팔렸겠느냐고 말한다.

 

학생들은 그제야 m, 즉 밀리라는 접두어의 의미를 기억하게 된다.

 

이제 전력을 계산한다.

0.31A × 3.8V = 1.178W

여기에 10시간을 곱하면

1.178W × 10h = 11.78Wh

가 된다.

 

배터리에 적혀 있는 숫자가 그대로 계산된다.

한 시간은 3600초이므로 이것을 줄로 바꾸면

11.78Wh × 3600 = 42408J

이다.

 

번개의 10억J에 비하면 수만 분의 1이다.

 

그러면서 배터리 폭발 이야기도 해 준다.

 

휴대폰 배터리 하나의 에너지는 약 4만J이다.

 

이 에너지가 정상적으로 천천히 나오면 휴대폰을 몇 시간 쓰게 해 주는 전기 에너지다.

 

그러나 이 에너지가 화학반응으로 순식간에 방출되면 그것이 바로 폭발이다.

 

전기는 결국 에너지이고, 에너지는 방출되는 시간에 따라 전혀 다른 현상이 된다.

 

언론에서도 자주 틀리는 것으로 전력 W와 전력량 Wh를 구분하지 못하고 기사를 쓰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전력은 순간적인 흐름이고, 전력량은 일정 시간 동안 쌓인 에너지다.

 

학생들은 그제야 말한다.

“아, 배터리에 적혀 있는 숫자가 그냥 적혀 있는 것이 아니었구나.”

이런 배터리를 100개 묶으면

1178Wh = 1.178kWh

가 된다.

 

일반 승용차 납축전지의 저장 에너지와 비슷하다.

승용차 배터리가 12V, 90Ah라면

12V × 90Ah = 1080Wh

정도가 된다.

 

그 무겁고 거대한 납 축전지에 비해 얼마나 리튬배터리가 에너지 밀도가 높다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여기에서 다시 100배 정도 커지면 100kWh가 넘는 장거리 전기차 배터리가 된다.

 

이렇게 몇 번만 계산해 보면 학생들은 전기에 대한 감각이 생긴다.

 

나는 강의 시간마다 J, W, V, A, C, Ah, Wh를 계속 곱하고 나누게 한다.

 

학생들은 단위를 맞추는 연습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차원(dimension) 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차원이라고 하면 공간 차원만 떠올린다.

0차원은 점이다.
1차원은 길이고, 단위는 m이다.
2차원은 넓이고, 단위는 m²이다.
3차원은 부피이고, 단위는 m³이다.

 

여기에 시간 차원을 덧붙이면 시공간의 4차원이 된다.

(ct, x, y, z)

그러면서 상대론 이야기가 나온다.

 

물론 상대론은 대단히 중요한 물리학이다.

 

그러나 물리에 처음 들어오는 학생들에게 처음부터 4차원 시공간을 들이밀면, 물리는 세상을 이해하는 언어가 아니라 겁주는 과목이 되어 버린다.

 

나는 기존 물리 교육의 문제 가운데 하나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학생들이 아직 단위와 차원도 몸으로 느끼지 못하는데, 너무 빨리 추상적인 개념과 공식으로 올라가 버리면서 공간 수축이니 시간 수축이니 하면  학생들은 물리를 이해하기 전에 먼저 포기한다.

 

그러나 물리에서 차원은 공간 차원만 뜻하지 않는다.

 

시간도 하나의 차원이고, 전하량도 하나의 독립적인 물리량이다.

 

전압, 전류, 에너지, 전력은 모두 이런 기본 물리량들이 서로 곱해지고 나누어져 만들어진다.

 

전류는 전하량을 시간으로 나눈 것이다.

A = C/s

 

전압은 에너지를 전하로 나눈 것이다.

V= J/C

 

이 두 개를 곱한 물리량인 전력은 에너지를 시간으로 나눈 것으로 단위가 W이다.

AV= C/s * J/C =J/s =W 

 

전력량은 전력에 시간을 곱한 것이다.

Wh

 

전압은 에너지를 전하량으로 나눈 것이다.

 

이 관계가 보이기 시작하면 전기가 조금씩 무섭지 않게 된다.

 

미적분도 결국 차원을 이동하는 과정이다.

 

거리를 시간으로 미분하면 속도가 되고, 속도를 다시 시간으로 미분하면 가속도가 된다.

거기에 질량을 곱하면

F = ma

가 된다.

 

반대로 시간을 따라 적분하면 다시 속도가 되고, 또 적분하면 이동거리가 된다.

 

뉴턴은 이 언어로 행성의 운동을 설명했고, 라이프니츠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미적분의 표기법을 정리했다.

 

누가 먼저였는지는 지금도 논쟁이 있지만, 내 생각에는 두 사람 모두 거의 독립적으로 같은 생각에 도달했고 미적분을 만들었다.

 

학생들이 물리를 어려워하는 것은 계산을 못해서가 아니다.

 

단우로 표현되는 차원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몸으로 느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첫 시간부터 번개와 휴대폰 배터리를 계산하게 한 것이다.

공식을 외우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숫자를 통해 세상을 보고, 단위를 통해 차원을 읽는 감각을 익히게 하기 위해서다.

 

물리는 암기 과목이 아니다.

 

세상을 차원으로 이해하는 언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