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히려 60~70년대 이전에도 초·중·고생들이 습자용 딥펜에 잉크로 글을 쓰고 86세대면 펠리칸 만년필 들고서 사법시험 답안 작성에 매진하던 세대인데 이런 운동권들 중에서도 상위층은 판사연수받다 민변으로 빠지고 데모현장에서 시간만 죽이며 공부도 안 하고 놀고 먹다 보니 펜글씨와 백강고시체에 익숙치 않은 하위층이 교사로 임용되어 전교조를 형성했기에 90년대부터 일본제품 또는 그 라이센스 생산품인 샤프의 사용을 금지하는 반일선동에 더불어 원래 그림을 그릴때나 쓰는 연필에 지우개를 사용하게 하여 개인의 주관을 쉽게 지워내게 하고 논리적 사고와 연관되는 고시체보단 인쇄체에 가까운 북한의 글씨체를 반듯한 정자라고 주장하며 피아식별을 흐리게 하는 동시에 아주 불편하고 비효율적이게 초등학생들이 글자를 말 그대로 의미없이 그리게만 했는데 실제로 깜지의 목적이 그렇듯 학업의 증진이 아닌 글씨를 쓰는 것을 일종의 체벌로 인식하게 만든 우민화교육의 대표적인 일환이었음; 이는 당시 문맹이라 성경을 못 읽던 바랑기아인과 슬라브인들에게—훗날 키릴로스와 메토디우스가 문자를 제정하고 전수하긴 하지만—이콘으로 비잔틴제국이 포교하며 자신들의 지배하에 종속시킨 방식을 열화해 답습한 것과 유사한데 사실 일필휘지(一筆揮之)라고 서예는 획 수정도 제한적이고 한글의 경우에도 세종이 창제할 때 부터 먹과 붓으로 빠르게 써 내려갈 실용목적이 전제되어 있었기에 오히려 언문(諺文)은 아녀자들 뿐만이 아니라 군영의 병사들이 읽고 무반(武班)들이 적어내려가던 일종의 필기체로 기능했음을 조선시대 서찰들을 통해 알 수 있음에 진보청년들이 어린아이들에게 글자를 확고하고 짙게 쓰려면 부러지는 흐릿한 연필과 조악한 지우개로 북괴식 서체를 모방하게 했던 것은 앞서 언급했듯이 개인의 논리적 사고를 지우려는 매우 음흉하고 교묘한 우민화교육이자 민족전통까지 지워버린 매국행위임을 알 수 있으며 막상 이들이 동경하던 러시아와 독일과 프랑스는 아이들에게 자국의 언어로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표현할 필기체를 철저히 교육시키기에 문학과 사상과 저널리즘이 융성해온 것이듯 근본없는 체리피킹만 이어온 늙은 빨갱이들의 이율배반적이고 거짓으로 점철된 삶의 태도 또한 이를 통해 엿볼 수 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