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태껏 살면서 폐륜적 막말을 뇌하수체 필터링 없이 쏟아내는 인간을 꽤 많이 봐왔지만, 그런 언행으로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인물이 대통령이 된 경우는 처음 겪는 일이었다. 한마디로 정치를 포기하지 않았음에도 가장 저질스러운 정치 현실을 마주한 기분에 몹시 당황스러웠고, 그 과정에서 우파 진영이 보여준 무능함 역시 원망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런 찢째명이 자신의 SNS에 '플라톤'의 명언으로 알려진 문구를 인용했다.
"정치를 포기한 결과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말을 민주주의 사회에서 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의미로 받아들일 것이다. 실제로 이 문구는 선거철마다 정치권이 즐겨 사용하는 단골 문장 가운데 하나다. 문제는 이 말을 누가 하느냐다.
국민 통합의 책임을 가진 대통령이 저 문장을 인용하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철학적 격언이 아니라 정치적 메시지가 된다. 더구나 우리 사회는 이미 진영 갈등으로 극심하게 분열돼 있다. 그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굳이 "저질스러운 인간"이라는 표현이 포함된 문구를 꺼내 드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 하는 의문이 든다.
더욱이 플라톤이 실제로 저 문장을 그대로 남겼다는 기록도 없다. 원래 취지는 훌륭한 사람들이 공적 책임을 외면할 경우 자신보다 못한 사람에게 통치를 받게 된다는 철학적 경고에 가깝다. 그런데 오늘날 정치권은 이를 마치 "내 편을 지지하지 않으면 저질스러운 인간에게 지배당한다"는 식의 선동 문구처럼 소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민주주의는 원래 다양한 의견이 충돌하고 토론하는 체제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모두 저질스러운 인간이 되는 것도 아니고, 특정 정치 세력만이 정의를 독점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자신들만 옳고 반대편은 틀렸다고 믿는 정치적 오만이다.
그래서 나는 대통령이 국민에게 투표를 독려하는 것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국민을 통합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이 상대를 향한 우월감과 정치적 선민의식을 연상시키는 표현을 굳이 가져와야 했는지는 묻고 싶다.
정치는 상대를 설득하는 일이지, 상대를 깔보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국민은 정치인의 구호가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아온 행적과 언행을 보고 평가한다. 아무리 그럴듯한 철학자의 말을 인용해도, 결국 국민들이 기억하는 것은 그 사람이 어떤 말을 해왔고 어떤 정치를 해왔는가 하는 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