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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해군원자력추진협력협정(NNPCA)’ 별도 체결 불가피
대미 투자 3500억 달러…트럼프 정부 만족시켜야 의회 빗장 열수 있어
1500억 달러 조선업 협력 '마스가(MASGA)' 투자,실제 이익 낼 수 있나 우려

트라이던트 미사일 탑재한 영국 해군 HMS벤전스 핵추진 잠수함@연합뉴스
트라이던트 미사일 탑재한 영국 해군 HMS벤전스 핵추진 잠수함@연합뉴스

[뉴스임팩트=박종국기자]이재명 정부가 국무회의와 진해 미래국방전략위원회 등을 통해 “미래 전략 자산인 핵추진 잠수함(핵잠) 도입에 속도를 내겠다”고 공식화하면서 해군의 숙원인 ‘장보고-N(5000t급) 사업’이 수면 위로 급부상했다. 정부는 오는 2030년대 중반까지 1번함을 실전 배치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러나 군사 및 외교 전문가들은 정부의 ‘조기 건조·배치’ 호언장담과 달리, 앞으로 넘어야 할 미국 내 법적 규제와 입법 절차, 국제 비확산 체제의 장벽이 ‘첩첩산중’이라고 지적한다. 미국 행정부의 핵심 통제와 오커스(AUKUS·미·영·호 안보동맹) 선례를 바탕으로 한국 핵잠 건조의 냉혹한 현실을 짚어본다.

◇ 국무부 중심의 3대 난관…민간용 ‘123 협정’ 넘어 ‘NNPCA’ 신설해야

한국의 핵잠 도입이 한국의 바람대로 속도전이 불가능한 이유는 군사 기술적 문제보다 외교·제도적 장벽 탓이다.

그동안 학계와 정계에서는 ‘한미 원자력협정(123 협정)’ 개정을 핵심 과제로 꼽아왔다. 그러나 외교·안보 전문가인 정성장 세종연구소 부소장의 분석에 따르면, 기존 123 협정은 기본적으로 발전소나 연구용 등 ‘민간용 원자력 협력’을 상정한 틀이다. 해군 원자력 추진 같은 군사적 목적의 협력을 직접 포괄할 수 없다는 뜻이다.

결국 한국이 핵잠을 건조하려면 미 외교 사령탑인 국무부(군비통제·국제안보차관실)를 상대로 민간 협정을 넘어선 별도의 ‘한미 해군원자력추진협력협정(NNPCA)’을 새롭게 체결해야 하는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이 새 협정 역시 미국 원자력법(AEA)에 따른 까다로운 미 의회 심사 구조와 곧바로 직결된다.

둘째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세이프가드(안전조치)다. 한국은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국이므로 잠수함용 핵연료를 다룰 때 IAEA와 ‘핵연료 전용 방지를 위한 특별 검증 조약(제14조 이행약정 등)’을 맺어야 한다.

마지막 관문은 미국 의회의 동의와 특별법 제정이다. 미국 행정부가 한미 간 NNPCA 협정에 합의하더라도 미 의회가 상·하원 외교·군사위원회를 거쳐 이를 승인해주지 않으면 합의는 종잇조각에 불과하다. 미 의회가 움직이려면 한국 핵잠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완벽히 기여한다는 ‘안보적 명분’과 미국 방산·원자력 산업계가 참여하는 ‘경제적 이익’을 증명해야 하는데, 이 법적 절차·의회 설득에만 최소 수년이 걸릴 전망이다.

2023년 미국, 영국, 호주 정상의 오커스 기자회견@연합뉴스
2023년 미국, 영국, 호주 정상의 오커스 기자회견@연합뉴스

 

◇ 호주는 ‘고농축·블랙박스’ 완제품 수입…한국은 ‘저농축·연료봉 교체’ 독자 노선

한국의 핵잠 사업은 앞서 진행 중인 호주의 AUKUS 프로젝트와 기술 및 운용 방식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보인다. 이 차이점이 오히려 한국에 더 높은 수준의 국제적 검증을 요구하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

호주의 경우, 무기급에 가까운 고농축 우라늄(HEU)을 연료로 사용한다. 원자로 역시 영국의 BAE 시스템즈와 롤스로이스 등이 완전히 용접·밀봉한 완제품 형태로 납품한다. 이 때문에 호주는 수명(약 30년) 동안 연료 장전이나 교체가 필요 없는 대신, 원자로 내부를 열어볼 수조차 없는 철저한 ‘블랙박스 수입’ 형태로 운용하게 된다.

반면 한국이 추진하는 국산 핵잠은 핵무기 전용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20% 미만의 저농축 우라늄(LEU)을 연료로 선택했다. 국제사회의 핵확산 우려를 정면으로 차단하겠다는 포석이다. 이에 따라 한국은 독자적인 기술로 국내에서 원자로를 개발·건조하되, 주기적으로 연료봉 교체가 가능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형 모델은 호주처럼 완제품을 통째로 들여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도적으로 건조하고 미국산 연료를 공급받는 구상이기 때문에, 국제사회로부터 AUKUS보다 훨씬 더 엄격한 설명 책임과 높은 수준의 검증 설계를 요구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한화필리조선소@한화오션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한화필리조선소@한화오션

◇ 최대 변수는 ‘대미 투자 3500억 달러’…트럼프 만족시켜야 핵잠 속도 붙는다

법적 장벽을 넘어 실질적인 건조 스케줄을 당길 가장 강력한 열쇠는 다름 아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를 향한 경제적 카드'다. 현 정무적 국면에서 한국 핵잠 건조의 최대 변수는 한미 관세 협상의 핵심인 총 3500억 달러(약 523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 이행 방안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지난해 10월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경북 경주 APEC 국제미디어센터에서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브리핑하며 관세 협상 세부 내용의 극적 합의를 발표했다. 합의안에 따르면 대미 투자펀드 3500억 달러 중 2000억 달러는 현금 직접 투자로, 1500억 달러는 조선업 협력 방식으로 구성된다.

우리 정부는 대규모 외화 유출 충격을 줄이기 위해 현금 투자액에 대해 연간 투자 상한을 200억 달러로 설정, 외환시장의 감내 범위 내에서 분할 납입하는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문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해 온 1500억 달러 규모의 조선업 협력, 이른바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다. 한국 기업 주도로 추진되고 투자뿐만 아니라 금융 보증까지 포함하는 이 프로젝트는 트럼프 행정부를 움직인 일등 공신이지만, 산업계에서는 냉정한 우려도 나온다.

방산 및 조선업계 관계자는 "인프라와 숙련공 부족으로 고질적인 병목 현상을 겪으며 사실상 무너져 있는 미국 조선소에 한국 조선 기업들이 직접 투자를 감행해 과연 실질적인 이익을 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독려하는 미국 조선업 재건에 우리가 어느 수준까지 맞춰주고 리스크를 짊어져야 미국이 만족할 것인가가 최대 쟁점"이라고 짚었다.

'철저한 비즈니스 기브앤테이크(Give and Take)'를 중시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완전히 납득시키고 3500억 달러 투자의 세부 이행안이 '트럼프 속도(Trump speed)'에 맞춰 매끄럽게 확정되어야만, 미 국무부의 NNPCA 협정 신설과 의회의 행정·법적 승인 절차에도 비로소 본격적인 '속도전'이 붙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26일 경남 창원시 진해구에서 열린 제1회 미래국방전략위원회에서 안규백 국방부 장관의 핵추진잠수함 개발 기본계획 보고를 듣고 있는 모습@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26일 경남 창원시 진해구에서 열린 제1회 미래국방전략위원회에서 안규백 국방부 장관의 핵추진잠수함 개발 기본계획 보고를 듣고 있는 모습@연합뉴스

 

◇ 실전배치는 언제나 가능한가…“2030 중반은 정치적 수사, 후반도 타이트”

핵추진잠수함은 핵폭탄을 싣는다는 뜻이 아니라 잠수함을 오래 잠항하게 하는 추진 동력에 핵연료를 쓴다는 뜻이다. 또한 미국의 ‘승인’이 떨어졌다고 해서 곧바로 건조 시작이나 연료 이전이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붓고 미국의 전폭적인 기술 지원을 받는 호주조차 버지니아급 핵잠수함의 인도 시점을 2032년 이후로 잡고 있으며, 영국 BAE 시스템즈가 납품하는 원자로를 탑재해 자체 건조하는 차세대 핵잠(SSN-AUKUS)은 2040년대에나 가동될 예정이다.

이를 감안할 때, 대미 투자 조율과 NNPCA 협정 신설, IAEA 안전조치 협상이라는 첫 단추를 이제 막 끼우고 있는 한국이 정부의 호언장담대로 ‘2030년대 중반에 실전배치’를 완료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핵잠은 내일 당장 안보 공백을 메우는 단기 해법이 아니라, 2030년대 이후를 내다보는 중장기 전력 구조 개편 사업이기 때문이다.

국내 방산 관계자는 “트럼프 정부와의 3500억 달러 투자 펀드 조율 속도에 따라 미 국무부와의 협정 체결과 의회 특별법 제정 시기가 결정될 것”이라며 “한국이 지금 당장 IAEA와의 대화를 개시해 소요 시간을 단축하고, 한미 간 협상이 역대급 속도로 타결된다 하더라도 실제 한국형 핵잠수함이 바다를 누비는 실전배치 시기는 2030년대 후반이나 2040년대 초반이 되어야 현실적”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