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설명│한국은 전쟁 폐허국에서 출발해 경제 선진국으로 도약한 나라다. 특히 아시아에서 대표적인 경제 선진국인 일본의 1인당 명목 국민총소득(GNI)을 한국 GNI가 2023~2024년 추월하기도 했다. 한국의 성장은 오랫동안 미국의 ‘안보 우산’ 아래 이뤄졌다는 게 필자의 주장이다. 미국의 안보 우산은 유사시 재래식 전력뿐 아니라 핵전력까지 포함한 모든 군사 역량으로 한국을 방어하겠다는 확장 억제 공약을 뜻한다. 한미 양국은 2024년 외교·국방장관회의에서도 미국의 확장 억제 공약이 핵을 포함한 모든 역량으로 뒷받침된다고 재확인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 동맹 구조를 비용 문제로 압박해 왔다. 한미 양국은 2026년 ① 방위비 분담금을 전년보다 8.3% 늘어난 1조5192억원으로 정한 바 있다. 하지만, 트럼프는 대선 과정에서 한국이 연간 100억달러(약 15조원) 규모를 내야 한다고 여러 차례 주장했다. 이는 현행 합의액의 10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수출과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높아 환율, 유가, 미·중 갈등, 중동 정세 변화에 민감한 한국으로선 트럼프의 접근이 도전으로 다가온다. 한국 경제는 인공지능(AI) 열풍으로 인한 반도체 수요 급증 덕에, 한국 수출 효자 품목인 반도체 수출 성장을 기반으로 좋아지는 모양새다. 5월 7일 기준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1.43% 증가한 7490.05로 마감하며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AI 투자 확대 기대와 반도체 업황 개선 전망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대형주 주가를 끌어올린 영향이다. 결국 한국은 소득 정체와 안보 비용 압박, 에너지 의존이라는 위험을 동반한 채 반도체·AI 랠리 흐름을 타고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 복잡한 상황이다. 필자는 “한국 정부는 AI와 반도체 등 이미 경쟁력을 갖춘 첨단산업을 지원하고 가속하기 위한 정책 패키지를 내놓았지만, 한국의 번영이 더 이상 미국 동맹과 세계화의 안정적 질서 위에서 자동으로 보장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1950년대 초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 한국은 세계 최빈국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은 1인당 GNI가 일본을 앞지르는 경제 선진국으로 도약했다. 이러한 변화는 상당 부분 미군의 안보 우산 아래 가능했으며, 이는 트럼프의 정책이 한국의 장기적 번영과 안보에 어떤 위협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지난 10년간 세계경제는 트럼프 1기(2017 ~2020) 정부 당시 대중 무역 전쟁과 트럼프 2기(2025~2028) 정부 출범 후 관세정책,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란 전쟁 등 다섯 차례의 큰 충격을 겪었다. 이 위기는 서로 얽히며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고 에너지 공급을 흔들었으며, 해상 운임을 끌어올리고 재정 여력을 줄였다. 동시에 세계무역과 국제 질서의 향방에 대한 불확실성도 키웠다.
이러한 충격을 한국만큼 크게 체감한 나라는 많지 않다. 한국 경제는 대외 무역의존도가 매우 높다. 2024년 기준 수출은 국내총생산(GDP)의 44%에 달했고, 에너지 수입의존도 역시 높다. 석유와 천연가스가 에너지 소비의 약 82%를 차지하며, 그중 약 92%가 중동에서 들어온다. 그 결과 한국은 트럼프의 관세 조치와 이란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시장 혼란에 큰 타격을 입었다.
제조업 수출, 특히 첨단 제품에 대한 높은 의존도는 한국의 취약성을 더 키운다. 2025년 한국은 세계 8위 수출국이었다. 최대 교역 상대국인 중국과 미국이 수출의 약 40%를 차지하는 만큼, 두 강대국 간 경쟁이 격화할수록 한국이 받는 충격도 커질 수밖에 없다.
또한 한국은 다른 선진국과 달리 국방비를 줄이기 어려운 상황이다. 북한이라는 상시적인 위협 때문이다. 트럼프가 한미 안보 동맹의 기반을 흔드는 가운데, 한국은 미국과 협력을 유지하면서도 중국과 관계를 개선하고 자체 군사력을 강화해야 하는 복잡한 균형에 직면해 있다.
2025년 이재명 대통령은 전략적 전환을 예고하며, 2030년까지 ② 세계 4위 무기 수출국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한국은 강한 제조업을 바탕으로 이미 상당한 성과를 내왔다. 그러나 미국 연방대법원이 차별적 관세 부과 권한에 제동을 걸었음에도 한국 수출은 여전히 트럼프의 관세 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관세 재부과를 위한 법적 우회로를 찾기 위해, 한국을 포함한 16개 교역국을 대상으로 무역법 제301조 조사에 착수했다.
여기에 더해 한국이 미국과 체결한 무역 합의는 큰 재정 부담을 안고 있다. 지난 1월 트럼프 정부는 한국이 3500억달러(약 517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는 대신 한국산 제품 관세를 15%로 낮추는 데 합의했다. 이 가운데 1500억달러(약 222조원)는 조선업에 투입될 예정이다. 한국 경제 규모를 고려하면 매우 큰 금액이다. 지난해 총투자액이 약 5670억달러(약 838조원)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부담은 더 크다.
이처럼 외부 여건이 악화했음에도 한국의 거시 경제는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 물가 상승률은 2% 안팎, 실업률은 낮은 수준이며 국가 채무 비율은 GDP의 약 48%다.
2024년 말 윤석열 당시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정치적 불안이 일시적으로 발생했지만, 질서는 빠르게 회복됐고 조기 대선이 치러졌다. 올해 초 윤 전 대통령은 내란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탄탄한 거시 경제 기반 덕분에 적극적인 재정·통화 정책을 펼칠 여지가 있었고, 충격은 제한적인 수준에 그쳤다. 2026년 성장률은 약 2%로 완만할 전망이다. 다만 인구 감소를 고려하면 1인당 성장률은 이보다 다소 나은 수준이다.
한편 한국 증시는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투자자 신뢰가 회복되면서 ③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완화된 영향이다. 그러나 에너지 수입의존도는 여전히 핵심 위험 요인이다. 단기 성장 전망 역시 호르무즈해협의 정상화 시점과 석유·천연가스 시장의 안정 여부에 크게 좌우된다.
이러한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는 AI와 반도체 등 이미 경쟁력을 갖춘 첨단산업을 지원하고 가속하기 위한 정책 패키지를 내놓았다. 이는 박정희 군사정권 이후 보기 드문 규모의 산업 정책 확대다. 다만 이러한 정책이 현재의 글로벌 경제 환경에서도 효과를 낼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
한국 정부는 부상하는 중국과 예측하기 어려운 트럼프 시대의 미국을 상대로 신중하게 대응해 왔다. 그러나 가장 가까운 동맹이 가장 큰 변수로 떠오른 지금, 안보와 번영은 더 이상 한국에게 당연하게 주어지는 조건이 아니다.
① 주한 미군 주둔에 드는 비용 가운데 한국이 부담하는 몫을 뜻한다. 정식 명칭은 ‘한미방위비 분담특별협정(SMA)’으로, 한국은 기지 운영비, 군사시설 건설비, 한국인 근로자 인건비 등을 일정 비율로 분담한다. 이는 미국의 확장 억제, 즉 핵전력을 포함한 군사력으로 한국을 방어한다는 안보 우산의 대가 성격이 있다. 2026년 기준 한국의 분담금은 약 1조5192억원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재임 시기와 이후에도 한국이 훨씬 더 큰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의 10배에 달하는 연간 약 100억달러 수준까지 증액을 요구한 바 있다. 동맹의 성격을 ‘상호 방위’에서 ‘비용 거래’로 바꾸려는 시도로 평가된다.
② 무기 수출국 순위는 통상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발표하는 ‘무기 이전 지표(TIV)’가 국제적으로 널리 활용된다. 현재 상위권은 미국·프랑스·이스라엘 등이 차지하고 있으며, 한국은 최근 폴란드·중동 등으로 수출을 확대하며 2025년 TIV 기준 4위를 차지했다. 이재명 정부가 제시한 ‘세계 4위 무기 수출국’ 목표는 단순한 순위 상승을 넘어 방위산업을 국가 핵심 수출 산업으로 키우겠다는 전략을 의미한다.
③ 한국 기업이 보유한 자산 가치나 수익성에 비해 주가가 낮게 평가되는 현상을 뜻한다. 같은 업종, 유사한 실적의 해외 기업과 비교해도 한국 기업의 주가수익비율(PER)이나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낮게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이 현상의 배경으로는 지정학적 리스크(북한 문제), 대기업 지배구조의 불투명성, 낮은 배당 성향, 정부 규제 등 여러 요인이 꼽힌다.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기업 가치 외의 ‘국가 리스크’가 반영되면서 할인 요인이 붙는 구조다. 최근에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 환원 정책 확대, 반도체·AI 산업 성장 기대가 맞물리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완화되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코스피 상승과 함께 한국 시장의 밸류에이션이 점진적으로 재평가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