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남 정신과 의사 “강남 환자 99.9%가 아무도 못 믿어…강남은 여전히 정신병동”
박효재 기자
박효재 기자
입력2026.05.23. 오전 9:00
수정2026.05.23. 오전 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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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정신과 의사가 5월 14일 서울 강남구 김정일정신건강의학과의원 진료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마약 의존, 엘리트들의 잔혹 범죄, 살인까지 이어지는 가족 간 재산 분쟁, 히키코모리, 묻지마 살인.
2026년 언론 사회면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강남의 어두운 풍경이다. 1995년부터 31년째 강남에서 정신과 의원을 운영 중인 김정일 원장은 5월 14일 인터뷰에서 “강남은 여전히 거대한 정신병동”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2023년 자신의 진료 경험을 담은 에세이 <강남은 거대한 정신병동이다>를 냈는데, 3년이 지난 현재 강남의 모습은 변한 게 없다는 것이다.
김 원장은 “강남 환자들에게 사람을 믿느냐고 물어보면 99.9%가 못 믿는다고 답한다. 사람을 안 믿으면 따뜻할 수가 없다”며 “원시사회의 원시인이 되는 것이다. 그게 바로 정신병동”이라고 말했다. 이어 “서로 경쟁하고 각축하다 보니 강남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생겼다. 돈에 입각해 판단하는 문화가 너무 많다”면서 “강북에는 대를 이어 살아온 이웃이 있지만, 강남은 거의 다 돈을 벌어서 들어온 사람들이다. 사회적 규범이 자리 잡지 못한 빈틈이 있다”고 말했다.
최근 강남에서 벌어진 사건들은 ‘강남은 정신병동’이란 김 원장 주장을 뒷받침해준다. 2023년 8월 강남 압구정역 인근에서 롤스로이스 차량의 인도 돌진으로 20대 여성이 사망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수사 결과, 운전자 A씨는 압구정의 한 의원에서 향정신성의약품을 투여받은 직후 사고를 냈으며, 원장 B씨는 환자 26명에게 프로포폴과 케타민 등을 처방하고 10여명을 수면 마취 상태에서 성폭행한 사실이 드러났다. 환자를 보호해야 할 의사가 환자를 마약 중독으로 내몰고, 성폭행 수단으로 삼은 이 사건은 강남이라는 공간 자체에 대한 정신병리학적 진단을 요청한다는 게 김 원장의 말이다.
“ 돈에 입각해 판단하는 강남만의 독특한 문화가 너무 많다…. 강북에는 대를 이어 살아온 이웃이 있지만, 강남은 거의 다 돈을 벌어서 들어온 사람들이다. 사회적 규범이 자리 잡지 못한 빈틈이 있다. 그 빈틈을 파고든 게 강남의 분위기를 만들었다.”
2024년 5월에는 수능 만점자 출신 의대 재학생 C씨가 강남역 9번 출구 인근 15층 빌딩 옥상에서 동갑 여자친구를 흉기로 살해했다. C씨는 졸업 후 피부과 의원 개원을 노리고, 건물 소유 등 재력을 가진 집안의 딸인 여자친구에게 접근했다는 게 유족의 주장이다. 두 사람은 그해 4월 16일 몰래 혼인 신고를 했다. 하지만 피해자 부모가 이 사실을 뒤늦게 알고 혼인무효 소송 절차에 들어가자, C씨는 여자친구를 살해했다. 강남에서 통용되는 ‘돈’이라는 가치가 살인의 가장 깊은 자리에서 작동했을 수 있다. 다음은 김 원장과의 일문일답.
-‘강남=거대한 정신병동’이란 표현이 도발적이다.
“환자들과 상담하다 보면 듣는 표현이다. 우리 병원엔 유흥업 종사자 환자가 많다. 그분들이 자주 그렇게 말한다. 술집에서 돈을 쓰는 사람 중에 사기꾼, 건달, 졸부가 많다. 도박이나 마약에 빠진 사람도 많다. 그런 무리만 계속 접하다 보면 다들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책을 낸 후 2년이 더 지났다. 강남은 여전한가.
“강남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 전 세계가 미쳐 있다. 인간성이라는 게 서로 돕고 의지하고 감싸주는 것이다. 그게 없으면 정신병동이 된다. 정신병자는 결국 원시적인 에너지에 사로잡힌 사람들이다. 절제가 없고 이기적이다. 어떤 환자가 ‘전 세계에서 가장 관용이 없는 나라 1위가 한국’이라고 하더라. 맹수가 먹이만 보고 달리듯이 우리도 그렇게 산다. 경제 발전을 너무 빨리 한 탓에 돈에 대한 한이 생긴 것 같다.”
-환자에게 마약을 처방하고 성폭행한 의사도 있었다.
“프로포폴을 줄 때 케타민을 섞어주는 경우가 많다. 케타민은 마약이다. 프로포폴을 맞으면 굉장한 쾌감 속에 바로 잠든다. 환자가 저항하지 못한다. 그 앞에서 욕정이 꿈틀댄 것이다. 간호사를 퇴근시키고 CCTV도 자기가 다 없앴다. 그런데 포렌식에서 다 나왔다. 처벌받지 않고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환자를 보호해야 할 의사가 자기 앞에서 저항하지 못하는 환자를 욕보였다.”

강남역 인근 건물 옥상에서 여자친구를 흉기로 살해한 20대 의대생이 지난 2024년 5월 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며 얼굴을 가리고 있다. 연합뉴스
-강남역 의대생 살인 사건 동기도 ‘돈’ 아닌가.
“공부를 잘한다고 그 사람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본인은 자기 살인이 옳다고 생각하고 행동했을 것이다. 정신과적으로는 소시오패스적 경향이 있다고 본다. 옛날에는 거짓말하지 마라, 약속 지켜라 같은 도덕 교육이 많았다. ‘돈밖에 모르냐’는 말도 있었다. 그게 사라지고 성적만 좋아지면 된다는 식으로 키우면 다른 면이 취약해진다. 수단 방법 안 가리고 성취하려는 식이 되면 범죄에 대한 둔감해진다. 살인이라는 게 대단해 보이지만 순간적으로 벌어진다.”
-한남동, 성북동도 부자 동네다. 왜 유독 강남인가.
“돈이 전국에서 가장 많이 쏠리는 곳이 강남이다. 강남에서 자리 잡고, 강남에서 경쟁하고 강남에서 부자가 되겠다는 성향이 강하다. 옛날엔 상식이었던 따뜻함과 의지, 포용, 용서, 이해 같은 것이 다 각박해졌다. 성북동 같은 곳은 아직 전국적 타깃이 안 됐다.”
-강남은 만들어진 지 50년 정도다.
“갑자기 졸부가 많이 생기니까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이 많아졌다. 한발 한발 올라가야겠다는 생각보다 수단 방법을 안 가리고 돈만 모으면 다 누릴 수 있다는 꿈을 꾼다. 강북에는 대를 이어 살아온 이웃이 있지만, 강남은 거의 다 돈을 벌어서 들어온 사람들이다. 사회적 규범이 자리 잡지 못한 빈틈이 있다. 그 빈틈을 파고든 게 강남의 분위기를 만들었다.”
-환자 99.9%가 아무도 못 믿는다고 답한다고 했다.
“환자들에게 데이터를 보여줘도 안 믿는다. 기사도 안 믿는다. 말이 곧 믿음이고, 믿음이 곧 관계다. 그게 없으니 본인도 힘들다. 무협지에서는 약속을 어기거나 거짓말을 하면 그 사회에서 인간 취급을 못 받는다. 내가 어렸을 땐 ‘사람 말을 어떻게 안 믿느냐’가 상식이었다. 지금은 ‘사람 말을 어떻게 믿느냐’가 상식이 됐다. 그게 원시사회다.”

김정일 정신과 의사가 5월 14일 서울 강남구 김정일정신건강의학과의원 진료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스스로 자살을 선택을 하는 경우도 많다.
“자존심이 상해서 그러는 경우가 많다. 수치심으로 인한 선택이 강남에 제일 많다. 한 의사 환자는 자기 분노 조절을 못 해 화를 내는 모습을 남에게 보였다는 게 부끄러워서 그런 선택을 했다. 가장 기구한 환자는 서울대 의대 시험에 2번 떨어진 환자였다. 거짓으로 부잣집 딸 행세를 하다가 들통난 뒤 ‘다음 생에 태어나면 꼭 의사가 될 거야’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강남에서 가장 흔한 정신병은 불면증이라고 했다.
“잠드는 일이 제일 힘들다고 한다. 낮에 활동한 만큼 잠이 오는 것이다. 그런데 일단 바로 잠들고 싶어한다. 깨어 있는 순간이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프로포폴에 케타민을 섞어주면 굉장한 쾌감 속에 바로 잠든다. 한 환자가 그러더라. 한 번 히로뽕을 하면 성관계할 때 쾌감의 1000배를 느끼는데, 그다음에는 절대 1000배가 안 온다고. 그 1000배를 다시 느끼려면 계속 중독될 수밖에 없다. 마약은 결국 도파민을 끌어다 쓰는 거고, 그 대가는 반드시 치른다.”
-돈이 많은 사람이 마약과 도박으로 빠진다.
“사람이 느끼는 고통 중 제일 큰 것이 한가로움이다. 인간은 어릴 때부터 무수한 도전을 통해 살아왔다. 짜릿한 게 있어야 살맛이 난다. 밋밋하면 죽을맛이다. 그래서 마약은 성공한 사람을 타깃으로 한다. 자발성을 가지고 계속 나아가야 정신적으로 건강한데, 그게 끊겨버리면 위축된다. 인생이 심심해진다. 노력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쾌락을 선택한다.”
-은둔형 외톨이가 묻지마식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세상에서 제일 겁이 많은 동물이 호랑이라고 본다. 겁이 많으면 자기가 더 무서운 존재가 돼야 한다. 그래서 결국 더 무서운 존재가 된다. 집에만 있으면 피해망상이 생긴다. 모든 게 자기를 위협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느 순간 폭발하면 위협하는 존재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돼서 공격한다. 내 환자 중에도 엄마가 정성을 다해 치료해주려 했는데, 어느 날 엄마가 때리니까 ‘내가 죽기 전에 반드시 당신을 죽이고 죽겠다’고 한 적이 있다. 진료실에서 그 비약 직전에 멈춰 세우려면 상대가 자기를 해치지 않는다는 확신을 줘야 한다. 그게 참 어렵다.”
-사랑, 우정, 가족까지 돈이 매개하는 사회가 됐다.
“엄마가 전 재산을 딸에게 물려줬는데, 딸이 그 돈을 다 취하고 거짓말로 형제들에게서도 돈을 뜯어낸 케이스가 있다. 결국 그 엄마가 딸 때문에 죽었다. 마지막에 ‘나쁜 년’이라는 말을 남기고 갔다. 맹수가 먹이를 쫓듯이 오로지 돈만 향해 달리는 모습이었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내 딸이 사위와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가 아니라 ‘내 딸이 돈 많은 부자가 됐으면 좋겠다’가 기준이다. 한 케이스는 할머니가 돈을 많이 남기고 갑자기 돌아가시자 딸과 며느리가 싸우다 딸은 뇌혈관이 터져 사망했고, 아들도 극단적 선택을 했다. 결국 다 세상을 떠났다.”
-회복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극단적이지만, 사기를 좀 당하고 사는 것도 좋다. 사람을 만나다 보면 나도 사기를 당한다. 그런데 따지지 않고 ‘너, 이득 봐라’ 하면서 그 사람과의 관계를 이어간다. 300만원, 500만원 꿔가고 안 갚는 사람도 계속 만난다. 그 사람들이 나를 2번 속일 수는 없다. 사기를 좀 당하더라도 관계는 포기하지 않는 게 좋다. 강남 부모들에게도 자식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게 열어주라고 말한다. 부모가 자기 가치관만 강조하면서 통제하면 안 된다. 사회성이 없으면 사람이 미쳐간다. 사회성을 함양할 수 있는 공적인 장이 더 많아져야 한다. 지금 같은 고통은 다 진통이고, 아픈 만큼 성장한다. 인간은 인간다워야 한다. 인간관계 회복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