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일본의 국력을 당시 일본의 국력에 대입시켜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출병이 무모했다고 주장하는 인간들이 

조센은 물론 일본에도 많은데,





이전 글에도 말했던 적이 있지만 

당시 일본의 국력은 전 세계에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수준이었음.





명나라 국력이 얼마나 허울 뿐인 오합지졸인지는 

오랜 기간 왜구들이 명나라 해안을 휘저으며 얻어낸 빅데이터를 통해 

충분히 파악이 된 상황이었고

서양 선교사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면서 

당시 일본 국력은 포르투갈, 스페인과 자웅을 겨룰 정도의 수준이었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할 정도로 자기객관화가 된 상황이었음.







문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예상한 수준 이상으로 

이씨 조선이 빈곤한 나라였다는 거임.

히데요시는 조선을 빠르게 접수하고 조선을 병참기지로 삼아 

명을 침략할 계획이었지만, 

조선의 빈곤함과 열등함은 

히데요시와 일본 다이묘들이 상상한 것을 훨씬 상회했음

(조센징들의 자랑인 김치라는 것도 

본래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잡초를 캐다가 

소금에 대충 절여서 쳐먹던 게 그 원조임).








덕분에 일본군의 공세종말점이 

히데요시가 예상한 것에 한참 못 미치는 대동강 유역이 되고 말았고, 

일본군은 제대로 보급이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은 물론 

조센 특유의 불결함에 의한 전염병 창궐에 의해 

고생만 하다가 지지부진한 전쟁으로 전락했던 거임.








비유를 하자면, 

알렉산더가 그리스 폴리스들을 접수하고 페르시아를 침공하려고 하는데, 

아테네가 알렉산더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빈곤하고 불결해서 

그리스에 발이 묶여 페르시아를 공격하지 못했던 꼴이라고 할 수 있음.







일명전쟁의 문제점은 

일본이 이씨 조선의 역량을 과대평가했던 것일 뿐, 

당시 일본 국력으로 명나라를 도모하려고 했던 계획 자체는 

절대 허황된 게 아니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