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의 정치인+연예인+지방자치가 당골 무당 구조로 존재한다. <유신체제(전두환 민정당도 유신체제로 보는 민주당 언어 기준)>는 박정희, 전두환 1인이 무제한적 존재다. 유교사회의 임금 존재(임금 혼자 무제한적 존재)는, 민주당 패권체제 30년은 ‘무당’ 상징과 그 연합(집단적 무제한적 사유)으로 바뀌었다. 여기서,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의 또다시 실패!를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이 사회문화 구조에 한국교회 목회자가 또다시 끼어 있다는 것이다. 유신체제 임금 구조에 교리를 훼손하면서 끼었던 악습은, 이젠 무당상징과 연합으로 지배하는 지배구조에 교리 훼손하며 영합했다.
(2) 한국 목회자들은 이미 과잉 공급이었다. 그리고 김대중 김영삼 연합권력은 모든 미디어에 갑자기 무속신앙으로 바꿨다. 여기서, 대중들은 교회에서 방송에서 보는 샤머니즘 문화를 요구했을 것이다. 여기에, 대부분의 교회에서 굴복한 모양이다. 한국인이 교회에 갈 때, ① 신앙을 통한 위로 ② 인맥 쌓기의 의미가 있고, 그 다음이 ③ 성경진리 따르기로 자리하는게 현실적이다.
(3) 당골무당 구조는 종교개혁 이전의 유럽문화이거나, 그보다 훨씬 후퇴된 정서로 복귀를 말한다. 교회에서 단순히 인맥과 위로를 위해 출석한다면, 진리의 자기 책임을 묻지 않는 의타주의로 가게 된다. 게다가, 성경에서 사실상 벗어나게 되면, 교회의 연대가 불가능해지고, 호남 동학교단에 개신교 교회가 신앙적인 완전한 분리로 존재하는 신앙수호가 불가능해진다.
(4) 군사정권 내내 법·규칙·규범 준수가 사회를 위해 기본이라던 사람들은(물론, 권력층은 영남유교가 법이라는 어법으로, 요즘의 호남씨족의리가 법이라는 어법과 같다. 이를 배제하고 바라본다면), 이 준수가 만악의 근원인것처럼 논하는 일로 바뀌었다. 결국, 무속신앙에 깔린 수많은 영웅신화는 각각이 공산혁명가 우상화로 나타나고, 일반국민 기억에 6.25 전쟁의 공산당 피해 문제와 얽힌다.
(4) 필자의 모든 스탠스는 1980년대 후반의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쪽(지금의 단체는 성질변경되고 이름만 씀)으로, 한국인의 신앙경주는 복음 진리 위해서 샤머니즘신앙과 싸운다는 신앙 논지의 승계다. 이는 성경의 진리 중심으로, 토착신앙을 통한 한국공산주의(남북한 한반도 공산주의)와 이에 연결된 계급투쟁 이름의 부족전쟁으로부터 단절을 의미한다.
(5) 유신체제는 6.25 전쟁 트라우마를 벗어나야 해! 하는 측면이 지배하여 이웃과 사회를 몰랐고, 민주당 패권기 30년은 목회성공에 갇혔다. 샤머니즘 신앙을 영어권 친중좌파가 뚜껑 열리게 하는 상황에서, 한국교회는 사람 관리에서 성경진리 수호는 말도 못 꺼내는 상황에 처했다.
영남왕권제 유교에 충성/반역 논리의 경상도식이거나, 무속신앙에 깔린 영웅에 씨족중심의 종속과 연대의 전라도식이거나, 어차피 똑같이 아시아적 생산양식의 봉건주의일 뿐이다.
(6) 성경 진리 소외는 동시에 자유민주주의 논리와 연결된 법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분야에서 전달이 불가능하게 돼 버린다. 물론, 아시아 사회에서 인맥 쌓기는 중요하다. 위로도 중요하다. 그러나, 교회의 존재의 이유는 성경의 예수님을 따르는데 있을 것이다.
(7) 한마디로 말하면 지금 한국교회에 부족한 점은 이것이다. 공자 맹자는 중국식 농촌마을의 신분제의 영원화를 전제한다. 기독교신앙의 성경진리는 자유진영의 법치 시장경제를 존속한 그 문명과 이어진다. 이승만의 기독교적 건국론은 기독교를 통해 자유진영 문명에 서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교회에 성경은 자유진영과 같은 의미의 ‘진리’여야 한다.
(8) 전두환 정권에 성경의 예수님을 도외시하고 안보담론에 영합했다고 영남의 교회를 비판한 호남 기독교는, 역시 같은 잣대로 성경의 예수님을 도외시하고 호남의 샤머니즘 토속신앙에 항복했다는 비판이 맞다. 그것이 성경의 예수를 따르는 그 사회의 기독교공동체의 정상적 발언이다.
박정희, 전두환 시대 – 국가안보
민주당 패권 30년 시대 – 귀족연합의 이기적 욕망
나와 예수님 사이의 신앙에 끼인 모든 것은 우상이다. 그런 의미로, 성경의 진리를 훼손하는 수준의 북한 언급도 우상이라고 봐야 맞다. 그러나, 그렇게 안본다. 영남의 교회에 썼던 잣대는 호남의 교회에는 쓰이지 않는다.
목회성공에 사로잡혀 성경진리에 벗어나는 양떼를 통제 못한 ‘불량 목자’는 ‘양떼 폭망’ 사태에서 같이 망할 것이다. 동시에, 경제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날 것이다. 지난 30년간 원칙에서 벗어남을 유능하다고 본 언어습관이 깨질 날이 다가온다.
(9) 한국의 평민출신 기독교인보다, 양반출신 기독교인이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이 사회변화에 힘을 준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하나도 안 내려놓고 있음을 반복해서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