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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보수진영에서 ‘단 한 명의 지식인’을 만들 수 없는 이유
 
 
 
“학문발전은 자유토론(open discussion)과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에서만 가능하다. 이 때문에 수직적인 똥군기 문화가 있으면 학문발전이 불가능하다.”(한국 보수유권자 정치사이트 게시판 글) 아직도 이렇게 박정희, 전두환 때 패러다임으로 보는 이들이 있다. 북침론의 저자 부르스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은 한반도는 200년간 거의 변화가 없는 사회라고 책의 초반에 박고 시작한다. 민주당은 남로당 인민공화국 때 프레임, 국힘은 박정희 전두환 때 프레임을 박고 시작하신다. 그리고, 지금 노인화된 보수 인플루언서는 자신의 육체가 박정희-전두환 시대에 박혔고, 다음세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음을 모른다.
 
모티머 J 애들러의 [논리적 독서법](오연희 번역, 예림기획, 1997)은 인문학의 아웃 라인을 보여준다. 논술교재를 만들어본 사람들은, 한 사람이 유치원→초등생→중학생→고등학생→대학생→대학원생→석사→박사로 발전하는 인식 확장 순서를 이해한다.
 
80년대 후반에 있었던 일이다. 그 당시는 ‘~~의 일고찰’이라고 제목부터 ‘겸손’이 유행이고, 서문은 ‘후대의 질정을 바란다’. 역시 서문도 겸손이 유행이었다. 이 때 20대 초반의 필자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준 어른들이 계셨다. “너, 스스로 생각한다는 게 얼마나 많이 독서가 쌓여야 되는 지 알어?” 대학생들이 AI로 대학에서 수련을 때운다는 데에서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페친 중에서 신학대 교수라는 분이 AI를 참조 이상으로 한다.
 
전라도 사대부들은 君子不器로 문사철 모두에 회통하고, 전분야 만능을 최고로 긍정한다. 군사정권 지식인들은 겸손이 기본베이스였지만, 반면에 원불교 백낙청은 세계체제론을 수입하여 분단체제론에 씌우고, 온 우주를 알았다는 논리를 적용했다. 필자는 삼류대 국문과 출신으로 전분야를 공부했으나, 사실은 다양한 분야에서 해당 전공자보다 전부 모른다.
 
민중좌파 집회에서 삼류대학은 주로 ‘폭력’을 담당했다. 쉽게 말해서, ‘학폭’ 대학생 버전에, 여기에 적절한 혁명용어로 분칠하는 상황이다. 여기서, 대학교 교수로는 백낙청 지인이 계속 괴롭혔다. 그 상황에서 보수-진보 안 가리고 바라보는 독서의 세계가 열렸다. 그러면서, 몸으로 느껴지는 진실은, 기독교신앙의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명제의 인문학버전으로, 그렇게 하나 하나 층층탑 쌓듯 쌓아올리는 과정을 겪으면서, 남이 쌓아올리는 것을 소중하게 바라보게 됐다.
 
보수진영에서 반공주의 지식이 ‘사람의 얼굴’인게 거의 없다. 이미, 한국사회에서는 공산주의 지식 규제가 폐지가 돼서 폭포수처럼 터져 나왔다 이를 다 정리를하고, 자유민주주의에 비춰서 평가를 한다는 것은 권력을 장악하는데 정적 제거로만 생각한 이들에겐 상상을 초월하게 힘들어진다.
 
한국 사회에서 ‘제도경제학’의 제도 문제가 민망해진 이유가 있다. 종교개혁 정신과 근대계몽주의 바탕으로, 지식인 연합이 단일한 약속으로 수평적으로 서 있는 문화로, 있던 문화를 조갑제기자가 완벽하고 완전하게 짓이기고 잘라버렸다. 어떤 지식을 쌓는 데 어떤 시간이 걸렸네. 그 걸리고 익은 사람의 판단을 존중한다. 이런 생각이 가능하다면, 아! 짜증나. 그냥 엿장수 맘대로 하자. 조갑제기자에게 쭉 나오는 일관된 ‘도덕규범’ 비판과 대학교수에 대한 조롱은 이런 잣대다. 즉, 감정중심의 무당언어를 쓴다면, 어차피 청중은 검증도 안할 텐데.
 
각 지역마다 씨족중심으로 무당처럼 감정으로 얼르고, 그렇게 감정으로 동원한 사람을 대동단결로 줄세운다면, 아무런 지성언어가 없어도 된다. 그렇게 30년을 살아오니, 보수진영에는 단 한명의 지성인도 발 붙일 수 없게 됐다. 샤머니즘식 씨족신앙으로 씨족주의로 무조건 충성이 아니라, 이게 왜 이래? 하는 일이 없다.
 
유신시대는 씨족중심으로 서로 다른 말 하는 것을 극복하고자, 중졸 수준의 국민이 국어책 읽듯이 읽는 내용의 전국화를 꿈꾸었다. 그리고 권위주의 포기했다면, 지성인들의 상호검증 언어가 자리해야 한다. 그러나, 유신권위주의를 대체한 것은, 더욱더 저렴한 언어였다.
 
군사독재에 1인 지도자 줄세울 때 지성이 필요없었다. 민주당 패권 30년 체제의 민중민주주의는 ‘당파(두 동학 붕당 연합)’의 독재다. 그런 의미로 어차피 엿장수 맘대로이기 때문에, 필요가 없다. 유신시대의 저항의 민주당 군중에는 학문의 자유를 외치는 지식인이 있었다. 보수진영에서는 그 수준으로 밀려도 단 한명도 세우지 못한다. 어떤 시간을 걸려야 가능한 판단이 나온다는 감이 없기 때문이다.
 
정치인과 인플루언서를 무당의 대중들 감정 뻥 뚫어준다는 것에 집착된 이 사회에서는, 군사정권 권위주의 이상으로 ‘학문의 자유’가 외면받는 사회다. 유신시대는 1인 지도자 충성. 지금은 두 동학 붕당연합의 당파에 충성하는 이들이 살아남는다.
 
[질문] 언제쯤 한국은 민주당 패권 30년 체제에 종사자가 아닌, 일반보수유권자와 연결된 지식인을 찾게 될 것인가?
 



 
 그런 뜻이 아니라요,.....
 
박정희, 전두환이 성역 (1인 지배체제)에서,
 
부족연합(통일전선 축!)이 성역.
 
여기서, 반공주의지식은 지금 지배체제의 성역을 두들기는 언사가 있어야 합니다. 이를 안하면서 하는 척!!
 
지금 그래요. 서양 진보사상과 소련 중국 북한식 민중민주주의가 다르다! .... 지금 한국은 호남동학으로 소련 중국 북한식 노선을 수용한 역사와 이어졌다.
 
이를 알아듣거나, 이를 집중적으로 논할 사람은 언제 나올까요?
 
사실상, 반공주의 지식이 불가능한.....(민주당 패권체제 성역을 두들겨야 가능한 상황) 그속에서 오랑캐논리로 쓰는 자료가 계속 나왔죠.
 
사실, 정적 관직에서 몰아내는데는 조선왕조 관습에만 쓰면 된다. 중국공산당이 당 권력중심으로 연결됐다고, 개인의 재산권 불인정하잖아요. 중국공산당은 중국경전사고 많이 하고, 군사독재 반공교재 기준은 매우 다르거든요.
 
프리드만의 ‘자본주의와 자유’란 책에서 크렘린에서 나오는 내용을 지칭하는게, 사실은 전라도 유교 사상과 그 연장선에서 러시아혁명이후 소련 사회주의 리얼리즘론을 수용했던 전통과 이어지는 의미로, 이것에 구체적 반대를 표현하는 개념을 썼죠.
 
조갑제처럼 대구경북 왕권제 유교 반대로 대구경북 지도자 코어를 두들기는게 반공이다. 이런 논리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죠.
 
조갑제기자 등장 이후에 반공주의 다운 반공(즉 집단적 사유로서 그 당중심을 정면 비판하는)이 불가능합니다.
 
한국 보수진영에 언제쯤.
 
지금 보수진영에서 꼭 해명해야 할.. 더불어 민주당의 영어권 진보와 무관하되, 노론세도가문 논리 연장선에서 해석한 북한 중국 소련 연결가닥의 사유체계를 논할 사람을 보게될까요?
 
자신있게 논하려면, 반박하는 논리에 맞받아칠 자신으로 다 각각을 봐야 됩니다.
 
정작 물었던 핵심질문. 언제쯤 나올까요? 더불어 민주당이 꾸준히 영어권 진보 호소라고 하나, 더불어민주당의 바탕 내러티브는 굉장히 토착적이며, 한국현대사 공산당 피해 경험자 악몽과도 연결되는게 분명히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