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을 장악한 자만이 변화를 설계한다는 선례 남긴 덩샤오핑

[뉴스임팩트=이정희 기자] 중국 현대 정치에서 개혁은 자유의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철저히 통제된 힘 위에서만 가능했다.
이 원칙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인물이 바로 덩샤오핑이다. 그는 마오쩌둥처럼 혁명의 상징도 아니었고, 국가 최고 직함을 오래 유지한 지도자도 아니었다. 그러나 실질적인 권력은 누구보다 강했다. 그 힘의 근원은 군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 마오 이후의 권력 공백…“살아남은 자만이 권력을 쥔다”
마오쩌둥 사후 중국은 심각한 권력 공백 상태에 빠졌다. 문화대혁명의 후유증으로 당과 국가 시스템은 약화됐고, 정치 엘리트들은 서로를 견제하며 혼란 속에 있었다. 이 시기 권력의 기준은 이념이 아니라 생존과 영향력이었다.
덩샤오핑은 두 차례 실각을 겪었지만,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군 내부에 그의 기반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 정치에서 이는 치명적으로 중요한 요소다. 군의 지지가 있는 정치인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 직함보다 강한 권력…“군권이 곧 실권이다”
덩샤오핑은 국가주석도, 당 총서기도 아니었던 시기가 많았다. 그러나 그는 사실상 중국의 최고 권력자였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중앙군사위원회 장악, 군 수뇌부와의 긴밀한 관계, 혁명 세대 네트워크 유지가 그 비결이었다. 즉, 그는 군을 통해 권력을 행사하는 구조를 완벽히 이해하고 있었다.
서구 정치에서 권력은 직함에서 나오지만, 중국에서는 권력이 직함을 만든다. 덩샤오핑은 이 공식을 누구보다 능숙하게 활용한 인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 개혁·개방의 숨겨진 조건…자유가 아닌 ‘통제된 변화’
덩샤오핑은 중국을 근본적으로 바꾼 인물로 평가받는다. 시장경제 도입, 외국 자본 유치, 산업화 추진 등 그의 정책은 중국을 완전히 다른 국가로 만들었다.
하지만 중요한 질문이 남는다. 어떻게 이런 급진적 변화가 가능했는가.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군이 있었기 때문이다.
개혁은 항상 저항을 동반한다. 특히 기존 체제의 이해관계를 건드리는 변화일수록 그렇다. 덩샤오핑은 군을 통해 정치적 반대 세력을 억제하고 사회적 혼란을 통제하며 개혁 속도를 조절할 수 있었다. 즉, 중국의 개혁은 자유의 결과가 아니라 통제된 권력의 산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 1989년 톈안먼…“군이 결정한 정치의 방향”
이 구조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바로 톈안먼 사건이다.
1989년, 베이징에서 대규모 민주화 시위가 발생했다. 학생과 시민들은 정치 개혁과 자유 확대를 요구했다. 당시 지도부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대화와 개혁을 주장하는 측, 강경 진압을 주장하는 측이 격렬하게 대립했다. 최종 결정은 덩샤오핑에게 있었다. 그리고 그는 군 투입을 선택했다.
이 선택의 의미는 단순하지 않다. 중국에서 정치의 최종 판단 기준은 여론이 아니라 군이다. 군이 움직이는 순간, 정치적 논쟁은 끝나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 덩사오핑이 남긴 교훈…“개혁도 총구 위에서만 가능하다”
톈안먼 사건 이후 중국은 더욱 분명한 방향을 택한다. 정치 개혁은 제한되는 반면, 경제 개혁은 지속되고 가속화됐다. 이 선택 역시 군 통제를 기반으로 가능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덩샤오핑이 남긴 핵심 교훈은 다음과 같다. 중국에서 개혁은 군을 장악한 상태에서만 가능하다. 즉, 군 없이 개혁은 불가능하고 군 없이 권력도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이다.

■ 권력 구조의 진화…마오의 원칙, 덩의 방식
마오쩌둥이 만든 원칙은 단순했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것이었다. 덩샤오핑은 이 원칙을 한 단계 발전시켰다. 총구를 쥔 자만이 변화를 설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덩샤오핑 시대에선 군은 단순한 권력 유지 수단이 아니라 정책 실행의 기반으로 확장됐던 것이다.
덩샤오핑 시대는 중국이 경제적으로 격변한 시기다. 그러나 정치 구조의 핵심은 바뀌지 않았다. 군은 여전히 당의 통제 아래 있고 권력은 여전히 군과 연결돼 있으며 지도자의 힘은 군 통제력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는 중국 정치가 외형적으로는 변화했지만, 핵심 권력 구조는 유지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 군을 쥔 자만이 미래를 설계한다
덩샤오핑은 중국 경제를 살린 실용주의적 개혁가로 기억되지만, 그의 진짜 힘은 군을 통한 통제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보여준 것은 하나다. 중국에서 변화는 자유롭게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권력에 의해 철저히 ‘허용’되는 것이며, 그리고 그 권력의 핵심은 언제나 군이라는 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