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연합인포맥스) 김학성 기자 = 일본 엔화가 노동생산성 둔화 탓에 안전자산 지위를 상실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잠재성장률 하락 국면에서 원화 국제화를 추진하는 한국 입장에서 가볍게 들을 수 없는 경고다.
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정성태 삼성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추세적인 엔화 약세의 원인과 전망' 보고서에서 "엔화는 안전자산보다 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위험자산의 특징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며 이같이 분석했다.
삼성증권은 지난 2월 말 발발한 이란 전쟁 이후 달러-엔 환율이 156엔에서 160엔 이상으로 상승했다면서 그간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 엔화가 강세를 보였던 과거와 다른 모습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삼성증권은 엔화의 실질실효환율이 지난 30년간 하락해 왔다는 점에 주목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엔화의 실질실효환율은 1995년 4월 194.2에서 지난 3월 66.4까지 떨어졌다. 31년 만에 엔화의 실질 구매력이 3분의 1 수준으로 흘러내린 것이다.
실질실효환율은 교역 상대국과의 물가 차이까지 감안한 자국 통화의 실질가치를 보여준다. 100을 웃돌면 기준 시점(2020년) 대비 고평가, 100을 밑돌면 저평가를 의미한다.
이 같은 엔화 장기 약세의 이유를 삼성증권은 일본의 더딘 노동생산성 개선 속도에서 찾았다.
삼성증권은 중국발 글로벌 경쟁 심화와 일본 상품 수요 둔화, 자본투자 정체를 이유로 꼽으면서 최근 10년간 일본의 노동생산성 개선 속도가 이웃한 중국과 한국을 따라가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노동생산성 정체가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의 입지를 줄였고, 이것이 엔화의 약세를 초래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일본의 노동생산성은 2007년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행(BOJ)은 2015년 이후 10년 동안 일본의 연평균 자본스톡 증가율이 0.5%로 고용 증가율(0.6%)을 밑돌아 1인당 자본장비율이 오히려 하락했다고 밝혔다.
삼성증권은 "일본 제조업의 낮은 노동생산성 상승은 수요와 투자 둔화, 임금 및 물가 상승률 저하로 이어졌고, 실질실효환율 하락으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일본은행의 최근 추정에 따르면 일본의 잠재성장률은 인구 감소와 낮은 투자 증가율 때문에 0,7%에 그치고 있다.
삼성증권은 "일본 내 기업투자가 증가한다고 해도 주요 경쟁국보다는 증가율이 낮을 것"이라면서 다카이치 정권의 적극적인 재정정책도 국가부채에 대한 우려를 높여 엔화 약세를 부채질할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분석은 구조적 저성장 국면에 접어든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올해와 내년 잠재성장률 전망치를 각각 1.71%, 1.57%로 제시했다. 2000년대 초 5% 안팎에 달했던 잠재성장률은 꾸준히 하락해 2%를 밑돌고 있다. 잠재성장률에서 2023년 한국을 역전한 세계 최대 경제 대국 미국은 점차 그 격차를 벌리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로 생산성 증가세 둔화 탓에 하락했고, 최근 들어 노동 투입까지 줄어들면서 부진이 심화했다.
잠재성장률 하락세를 반전하지 못하면 정부와 한국은행이 추진하는 원화 국제화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지난달 원화의 실질실효환율은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이후 가장 낮은 85.3을 기록했다.
KDI는 지난해 5월 펴낸 보고서에서 "경제 구조개혁을 통한 총요소생산성 개선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며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노동력 감소를 완화하기 위해 일·가정 양립, 고령층 경제활동 촉진, 노동시장 개방을 위한 정책적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