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 14분의 문자


늦은 밤이었습니다.

비는 안 왔는데 창문 바깥이 이상하게 젖어 보이던 날이었어요. 유리창에 맺힌 물방울처럼 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그건 밖에서 안으로 흐른 자국이 아니라 안에서 밖으로 손가락으로 문질러 놓은 흔적 같았습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오래된 원룸이라 습기가 찰 수도 있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이상한 건, 저는 그날 퇴근하고 집에 들어온 뒤로 한 번도 창문 근처에 간 적이 없었다는 겁니다.

 

집은 작았습니다. 현관을 열면 바로 주방, 그 옆에 침대 하나 들어가는 방. 혼자 살기엔 좁지만 불편하진 않았습니다. 문제는 입주 첫날부터 들었던 건물 이야기가 자꾸 떠올랐다는 거예요.

“거긴 밤에 누가 복도 걸어 다니는 소리가 좀 크게 들려요.”
부동산 아주머니는 웃으면서 말했지만, 이상하게 그 말이 귓가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날 밤도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또각.
또각.
또각.

여자 구두 굽 소리 같았습니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제 방 앞을 지나가다가 다시 돌아오는 발소리였어요. 원룸 복도는 짧아서 누가 걸으면 금방 끝나야 정상인데, 그 소리는 마치 끝이 없는 복도를 걷는 것처럼 한참 이어졌습니다.
 

전 숨을 죽이고 현관문에 붙어 도어락 화면을 켰습니다.
요즘 문에는 밖을 비춰주는 작은 카메라가 달려 있잖아요.
화면은 처음엔 검게 나왔습니다. 그리고 몇 초 뒤, 복도 불빛이 희미하게 잡혔어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소리는 계속 들렸습니다.
 

또각.
또각.
또각.

 

분명 바로 문 앞인데, 화면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순간 등골이 쭉 내려앉았습니다. 카메라가 고장 났나 싶어서 밝기 버튼을 눌렀는데, 그때 화면 오른쪽 아래 구석에 뭔가가 보였습니다.

 

머리카락이었습니다.
 

검고 긴 머리카락 끝이, 카메라 화면 아래쪽에서 아주 조금 흔들리고 있었어요.
마치 누군가가 문 바로 밑에 쪼그리고 앉아 고개를 숙인 채 서 있는 것처럼요.

 

그 순간 도어락에서 안내음이 났습니다.

“문이 열렸습니다.”

저는 비명을 지를 뻔했습니다.

분명 열리지 않았는데, 기계음은 또렷하게 그렇게 말했어요.

 

“문이 열렸습니다.”
“문이 열렸습니다.”
“문이 열렸습니다.”

세 번 반복됐습니다.
 

하지만 문은 닫혀 있었고, 체인도 걸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소리 뒤로 복도 발소리가 뚝 끊겼어요. 대신 아주 가까운 곳에서, 정말 제 귀 바로 옆에서 누군가 숨 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하아……
하아……

 

문 밖이 아니었습니다.
방 안이었어요.

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습니다.
침대 밑이 보였습니다.

 

이상하게도 침대 밑 그림자가 평소보다 짙었습니다. 원룸 조명이 환한데도 그 아래만 검은 구멍처럼 까맣게 보였어요. 그리고 그 안쪽에서 뭔가 미세하게 움직였습니다.
 

처음엔 먼지가 흔들리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어요.
머리카락이었습니다.

 

길고 축축한 머리카락이 침대 밑에서 바닥을 쓸듯이 조금씩 밀려 나오고 있었어요.
 

전 얼어붙은 채 아무것도 못 했습니다.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은 드는데, 몸이 말을 안 들었습니다. 눈앞에서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면 사람은 비명을 지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조용해진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그리고 들렸습니다.

낮고 쉰 목소리로, 분명 여자 목소리였어요.
 

“들어왔네.”
 

순간 정수리가 저려 왔습니다.

그 말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더 무서웠어요. 마치 원래 자기 집에 누가 들어온 걸 보고 한 말처럼 들렸거든요.

 

저는 반사적으로 휴대폰을 집어 들었습니다. 112를 누르려는데 화면이 켜지지 않았어요. 방금 전까지 배터리 62퍼센트였던 폰이 완전히 꺼져 있었습니다. 충전기에 꽂혀 있던 멀티탭도 꺼져 있었고요. 분명 집에 들어왔을 때 켜져 있던 거였는데요.
 

그때 침대 밑에서 나온 목소리가 다시 말했습니다.
 

“보지 마.”
 

이상하게도 그 말을 듣자마자 더 보고 싶어졌습니다.
사람 심리가 그렇잖아요. 보면 안 된다고 하면 더 보게 되는 거.
저는 정말 천천히, 무릎을 굽혀 침대 밑을 들여다봤습니다.

 

그리고 후회했습니다.

거기엔 여자가 있었습니다.
아니, 여자의 얼굴만 있었습니다.

 

몸은 보이지 않았어요. 침대 밑 깊숙한 어둠 속에 가려져 있었는지, 애초에 없는 건지 알 수 없었습니다. 창백한 얼굴 하나만 바닥에 거의 붙은 채 저를 올려다보고 있었어요. 눈은 너무 크게 떠져 있었고, 입꼬리는 이상하게 찢어질 듯 올라가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끔찍했던 건, 그 얼굴이 저를 보며 웃고 있으면서도 눈동자는 제 뒤쪽을 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제 뒤에 누가 있다는 뜻이었죠.

저는 그대로 굳어 버렸습니다.

침대 밑의 여자는 웃은 채 아주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제 목덜미에 젖은 머리카락이 스치는 감촉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그대로 정신없이 현관문으로 뛰었습니다. 체인을 풀고 문을 열려는데 손이 미끄러져 잘 안 됐어요. 그 와중에도 뒤에서는 또각, 또각, 또각, 아까 복도에서 들리던 그 구두 소리가 방 안에서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문이 열리자마자 복도로 뛰어나왔습니다.
옆집 문을 두드리고, 아래층으로 뛰어내려가 경비실까지 갔죠. 경비 아저씨와 함께 다시 올라왔을 땐 제 방 문이 활짝 열려 있었습니다.

 

안은 평소 그대로였습니다.
멀티탭도 켜져 있었고, 휴대폰도 충전 중이었어요. 침대 밑을 비춰봤지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경비 아저씨는 제가 너무 놀란 것 같다며 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무심하게 한마디를 덧붙였어요.

“그 방, 전 세입자도 밤에 누가 들어온다고 했었는데.”
 

저는 그 자리에서 계약 해지를 결심했습니다.
다음 날 바로 짐을 뺐고, 그 집에는 다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이사한 지 일주일쯤 됐을 때, 새벽 2시 14분에 모르는 번호로 문자 한 통이 왔어요.
 

문이 열렸습니다.

장난 문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뒤에 사진이 한 장 더 왔습니다.
흐릿한 흑백 사진이었는데, 한참 들여다보다 심장이 멎는 줄 알았습니다.

 

제 새 집 방 안 사진이었습니다.
어두운 방 한가운데 침대가 찍혀 있었고, 침대 밑 그림자 속에 희미하게 얼굴 하나가 보였어요.

 

그리고 사진 구석, 벽에 걸린 시계 시간이 2시 14분이었습니다.
제가 그 문자를 받은 바로 그 시간.

 

경찰에 신고도 해봤지만 장난 문자로 처리됐고, 발신 번호는 없는 번호로 나왔습니다. 그 뒤로 저는 밤마다 침대 밑을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어요. 처음엔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어제 새벽, 확인하지 말았어야 할 걸 봐버렸습니다.
 

침대 밑은 비어 있었습니다.
대신 바닥에 젖은 손자국이 하나 있었어요.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누군가 기어나온 것처럼.

그리고 제 방 창문에는 또렷하게 이렇게 써 있었습니다.
 

이제 네가 밖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