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호르무즈 충격에 재생에너지·배터리 투자 가속…태양광·변압기까지 중국 장악
[신화/뉴시스] 중국 칭하이성 티베트 고원에 조성되고 있는 타라탄 태양광 패널 농장에서 양들이 풀을 뜯고 있다.2025.08.21. *재판매 및 DB 금지
[신화/뉴시스] 중국 칭하이성 티베트 고원에 조성되고 있는 타라탄 태양광 패널 농장에서 양들이 풀을 뜯고 있다.2025.08.21.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영환 기자 = 중동 전쟁으로 석유와 가스 공급망이 흔들리자 각국 정부가 충격에 버틸 전력망 구축을 서두르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중국 기술 의존은 더 깊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13일(현지시간) 미국의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재생에너지 기반 전력망 확대가 탈중동 에너지의 해법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현대 전력망 핵심 부품 대부분을 중국 기업들이 사실상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도에 따르면 중국 기업들은 태양광 패널, 고압 케이블, 변압기, 전력 저장용 배터리 등 현대식 전력망의 거의 모든 핵심 부품 생산을 주도하고 있다. 중국은 수십년간 수천억 달러를 녹색에너지 산업에 쏟아부었고, 풍력터빈과 전기차 배터리 같은 자국 시장의 핵심 영역에서는 외국 기업 경쟁도 막아 자국 기업을 키워왔다. 중동산 석유·가스 의존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빨라질수록, 각국의 중국산 전력망 장비 의존도는 더 커지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미국과 이란이 휴전에 들어가 호르무즈 해협 충격이 다소 완화되더라도, 이번 사태가 각국 정부에 남긴 경고는 이미 크다고 NYT는 짚었다. 에너지 부족에 직면한 나라들이 전력망 업그레이드를 서두르면서 중국 기업들이 그 수요를 흡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전문 자문사 트리비엄 차이나의 코리 콤스 부국장은 이번 전쟁이 재생에너지 투자와 관심을 더 강하게 촉발하는 계기가 되고 있으며, 지금 단계에서는 중국과 경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 각국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필리핀은 전력망 안정을 위해 수주 내 신규 재생에너지 발전소 22곳을 가동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고, 브라질은 3월 말 신규 발전소 건설 입찰을 진행한 데 이어 이달 대규모 배터리 저장 입찰도 예고했다. 브라질에서 중국 및 국제기업 자문을 맡는 라리사 바슈올스는 브라질이 이 분야 기술을 필요로 하고 중국이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며, 중동 전쟁이 세계가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는 점을 다시 일깨웠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흐름이 또 다른 안보 불안을 낳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이미 희토류와 태양광 패널 같은 핵심 품목에서 세계 다수 국가의 최대 교역 상대이자 지배적 공급자다. 유럽 등 일부 정부는 이런 의존이 경제안보와 국가안보를 해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특히 중국이 지난 1년간 일부 희토류 공급을 크게 조이면서 이런 경계심이 더 커졌다고 NYT는 전했다.

전력망 장비 수요는 이미 급증하고 있다. 중국 기업들이 장악한 전력망용 저장 배터리의 전 세계 출하량은 올해 1분기에 거의 두 배로 늘었다고 뱅크오브아메리카 글로벌리서치 소속 매티 자오 연구원은 밝혔다. 그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세계 각국은 에너지망 확충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국 배터리·재생에너지 장비 업체들은 늘어날 수요에 대비해 홍콩에서 잇따라 자금을 조달하며 해외 진출을 준비해왔고, 이번 전쟁은 그 움직임을 한층 더 재촉했다고 NYT는 분석했다.

중국의 강점은 값싼 하드웨어에만 그치지 않는다. 배터리와 송전 설비는 물론, 에너지 흐름을 관리하는 소프트웨어 분야까지 중국 기업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일부 정부가 자국 전력망 소프트웨어 접근권을 중국 기업에 넘기는 데는 경계심을 보일 수 있지만, 마땅한 저가 대안이 없는 만큼 하드웨어 구매는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나왔다.

특히 중국은 리튬인산철 배터리에서도 사실상 독주 체제를 구축했다. 이 배터리는 니켈·코발트 기반 구형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같은 공간에서 에너지 밀도는 다소 낮지만, 비용이 약 99% 저렴해 전력망 저장 분야에서 경쟁력이 크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중국은 전 세계 리튬인산철 배터리를 거의 전량 생산하고 있다. BYDCATL이 이 시장의 양대 축으로 꼽힌다.

NYT는 중국 기업의 에너지 기술 지배력이 거대한 내수시장과 치열한 국내 경쟁 속에서 만들어졌다고 평가했다. 중국은 다른 나라가 따라오기 힘든 규모로 재생에너지와 전력망 인프라를 깔아왔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9월 풍력·태양광 설비를 2020년 대비 6배 수준인 3600기가와트(GW)까지 늘리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중동 전쟁이 세계를 탈석유 쪽으로 더 강하게 밀어붙였지만, 그 결과가 중국 중심의 새 전력 질서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파장이 적지 않다고 NYT는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