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드론 떼로
미사일 소진케 하듯
어떤 전장에서든
골리앗과 맞설 땐
다르게 싸워야 이긴다


장경덕 칼럼니스트
장경덕 칼럼니스트

"덤벼라. 내가 네 살을 새와 들짐승에게 주리라." 거구의 전사는 청동 투구를 쓰고 갑옷을 갖춰 입은 채, 찌르는 창과 던지는 창과 검으로 무장했다. 소년은 매끄러운 돌 다섯 개와 물매만 들었다. 골리앗은 맞붙어 제압하는 싸움을 상정했다. 다윗은 다른 싸움을 생각했다. 멀리서 치명적인 빈틈을 노렸다. 그 전술은 3000년 넘게 인류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 때 아테네가 시칠리아 원정에 실패한 것도 그들의 중보병이 산악지대 투석병에게 당해서라고 전한다.

세계 최강국 대통령은 적국을 석기시대로 돌려놓을 수 있다고 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시대보다 먼 야만의 시대는 상상하기도 어렵다. 이 전쟁의 정의나 불의를 따지기에는 지면이 너무 좁다. 인간적 비극은 헤아릴 수조차 없다. 주제를 한껏 좁혀 보자. 전쟁의 승자와 패자는 누구일까. 모두가 승리를 주장해도 실은 모두 패자가 아닐까. 누구나 쉽게 점쳤던 전쟁의 흐름을 바꿔놓은 것은 뭘까. 변수는 너무 많다. 그래도 한 가지만 들자면 너무나 압도적인 힘에 맞선 비대칭 전력을 꼽아야 하지 않을까.

골리앗은 청동과 철을 섞은 육중한 창끝을 겨눴다. 다윗은 들판에 널린 작은 돌을 집어 들었다. 누구나 이 지점에서 이란의 자폭 드론을 떠올릴 것이다. '순교자'라는 이름이 붙은 샤헤드 드론은 이란 비대칭 전략의 핵심이다. 2만달러짜리 드론을 잡으려 400만달러짜리 요격 미사일을 쏘게 하고, 비싼 미사일을 아끼다 수억 달러짜리 전략자산을 잃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들은 미국이 전투에서 승리하더라도 전략적으로는 실패하게끔 몰아가려 한다. 한 세대 넘게 고립된 채 터득한 생존 전략이다.

수천 년 동안 전쟁의 승패를 가른 것은 양적 우위였다. 대영제국 해군도 2차대전 연합군도 양적으로 압도했다. 하지만 지난 반세기에는 다른 흐름이 이어졌다. 소련에 맞선 미국은 효율과 성능을 극대화한 정밀 무기로 경쟁 우위를 확보했다. 1991년 걸프전 때 미국 공군과 해군은 양적으로는 1960년대 중반의 3분의 1에 그쳤다. 최근에는 양과 질을 함께 추구하는 '정밀대량(precise mass)' 무기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드론은 그 개념에 딱 맞는다. 단순히 고가 정밀 무기를 보완하는 수준을 넘어 현대전의 결정적 변수로 떠올랐다.

이제 훨씬 똑똑해진 드론 떼가 수억 달러짜리 전략 무기를 위협하게 될 것이다. 군집 드론 전략은 새 떼에서 영감을 얻는다. 물리학자 조르조 파리시는 시속 200㎞로 날 수 있는 맹금류도 감히 찌르레기 무리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가끔 낙오하는 개체만 노리는 것을 보았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드론 전쟁은 세계가 지켜봤다. 드론 강국 중국과 러시아를 도운 북한은 더 가까이에서 봤다. 물론 미국도 그 흐름을 잘 알았다. 이번 전쟁에서도 샤헤드를 모방한 저가형 자폭 드론 루카스(LUCAS)를 투입했다. 하지만 발상의 전환은 충분하지 않았다. 실행 속도가 충분치 않았는지 모른다.

교훈은 단순하다. 다윗은 다르게 싸운다. 자신만만한 골리앗이 상대도 으레 같은 무기와 전술로 싸우리라 믿을 때 '듣보잡'은 바로 그 빈틈을 파고든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다윗과 골리앗은 언제든 처지가 바뀔 수 있다는 것. 이란의 값싼 드론이 값비싼 미국 미사일을 소진케 하는 다윗일지 몰라도 그 드론을 요격하는 더 값싸고 똑똑한 무기가 등장하면 이번에는 거꾸로 골리앗이 될 수 있다. 피 흘리는 전장뿐만 아니다. 국가와 기업의 모든 경쟁이 마찬가지다. 모든 성공한 전략은 실패의 씨앗을 품고 있다. 참혹한 전쟁을 보면서 묻게 된다. 우리는 다윗인가, 골리앗인가.

[장경덕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