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반공주의 붕괴는, 북한 탓 아니고, 중국탓 아니고, 더불어 민주당 문제도 아니고, 미국의 잘못 아니고, 핵심 문제는 영남 동학층 내부의 문제에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그 과정에서 영어권 진보가 한국의 친중파의견만 들어서 하는 과정이 있으나, 영남귀족은 이를 바로잡을 힘이 있었습니다)
어째서, 2026년 대한민국 정치에는 수준 이상의 ‘반공전문가’가 씨가 말랐을까?
첫 번째, 공산이론이 규제가 될 때와 달리 <무제한적으로 공산이론이 개방된 상황>에서, 그 공산이론을 극복하여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것은 권력싸움의 도구로 바라보는 수준의 과거의 반공전문가 관성으로는 너무나도 복잡한 일이었다.
군사독재 때 반공주의자들은 무엇이든 김일성주의로 몰고, 무엇이든 마르크스 레닌주의로 몰고, 그리고 반국가단체 이미지를 씌우면 논증은 끝이다. 반면에, 2026년 반공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⓵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내부의 사민주의적 공동체주의 ⓶ 소련공산주의, 히틀러 파시즘, 북한공산당 및 일당독재 모델의 착취적 성격 ⓷ 조선공산당, 일본공산당 및 유교문화권의 공산주의 형태 ⓸ 유로코뮤니즘 형태. 이를 모두 구분하여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씨족주의로 영남귀족을 지키며 상대편을 폄하하는 수준에만 만족하고, 진정한 정보 업데이트와 업그레이드를 안했다.
두 번째, 공산당이 인민재판 폭력의 중심에서, 김영삼 정부부터 대구경북 왕중심주의 제거가 반공이란 엽기적 왜곡 문제.
1987년 6월항쟁은 국민과 미국은 모두 시민단체주도인줄 알았고, 통일전선(민중연합)임을 몰랐다.
87년 김대중 김영삼 연합세력은 민중민주주의라는 말이 꾸준히 돌았다. 그 시절에 반공기독교는 민중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차이를 논했다. 민중민주주의는 법 규칙 규범 없이 <당>이 중심인 논리를 말한다. 농촌에서 “씨족 두레”같은 공동장소가 주인이고, 거기에 물개박수치는 노예들 문제다.
그 대상이 민통련이란 통일전선 단체였다. 김대중과 김영삼은 1987년에 후보 단일화를 민통련 중심으로 했다. 그리고, 그 시절 운동권 가요는 언제나 ‘대동세상’ 상징을 기초했다. 운동권 가요 ‘그 날이 오면’의 가사풀이를 해보시라. 5.18 광주민중항쟁 슬로건이 대동세상이었다. 대동세상은 시진핑공산당에 일당독재 상징이다.
반공은 이 대상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대구경북 씨족 족장에 대한 반대로서만으로 서술이 왜곡됐다. 지난 30여년은 결국은 반공주의의 지식의 종합으로 대중에 제출되는 일을 속으로 불편해함이 뻔한데, 겉으로는 아닌 척 하는 지배층에 쌓여 있었다.
지금도 대구경북 증오심에 사로잡힌 조갑제기자는 ‘전두환=김일성=윤석열’ 어법을 쓴다. 그러면서, 통일전선체 기준으로 인권 유린하는 일은 처저하게 논의를 안한다. 물론, 윤어게인 하는 사람들도, 엔츄파도스란 말을 쓰는 사람들도, ..... 비주사파 민족해방 통일전선체가 원불교 백낙청의 분단체제론의 남북연합체 담론까지 쭉 이어졌다는 말을 안한다. 알아서 설설 긴다.
게시판에서 ‘반공’을 표현해도, 사실은 지금 출판사 등록은 누구나 되고, 소량 출판의 인쇄비는 백수 기준으로는 고비용이나, 인생 저작물 낸다는 사람들에겐 큰 비용이 아닐 것이다. 또, 출판사 등록도 자유이고, 출판사가 대형서점에 출고할 수도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전파성 높게 진실을 전하는 꼴>을, 지금 지배층이 눈뜨고 볼까? 전파성 높게 지배층에 불편하면 꼭 탈이 오는 일이 반복됐다.
모두가 반공주의자라고 선거철 말하지만, 실제로는 지난 30여년은 반공주의 학술물을 대중에 제출하는게 정신나간 일로 보일 만큼 억압돼 왔다.
세 번째, 일제시대 한국공산주의 역사가 개방되니, 1922-45년 사이에 농촌 공산주의가 영토에 가득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여기에 대해서, 아니오! 하는 사람이 없다. 문화는 거기로 돌리고, 법과 제도장치가 문란하는 것은 자기 책임 아니라고 본다.(유신체제에서 권위주의 억압에 당한 민심 외면하는 것은 이렇게 바뀌었다)
이진숙씨가 대구 시장으로 공천 받고 싶어하면서, 대구도 사실은 해방공간에 대구폭동의 성지처럼 이야기하며, 유권자의 조바심을 이야기했다.
트럼프 1기의 ‘차이나(중화사상)=코뮤니즘’의 논리는, 자동으로 ‘리틀 차이나(소중화사상)=코뮤니즘’의 논리를 추출하게 된다. 마르크스의 “마”, 주체사상의 “주”가 없는 순전한 농촌에서 100% 순전한 중국경전 발 종족전쟁 심리에, 종족전쟁 상징에 스탈린식 계급투쟁 어법을 씌우는게 넉넉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중국공산당은 ‘타도 공가점’이라고 하여 공자사상을 탄압한 시기도 있고, 그것에 터잡아서 민주정의당은 영남 유교를 헌법 보호로 주장했지만, 백기완 딸 백원담씨가 중국공산당의 중심 관점인 곽말약의 ‘공자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했다.
미국 민주당 경제서적에서도 한국의 부채남발 경제가 공산주의 아니냐는 의문을 했다. 중국사회에서 지방정부마다 인민의 부채를 남발케 하고, 그 인민의 주택담보대출발 유동성으로 당의 관료의 이익을 먹는 모습이 나타났다. 이는 증산교 상생교리로 번안했다. 이에 성공했다.
그러면, 이 시대 참다운 반공주의자는
원불교인 백낙청의 분단체제론에 ‘남북연합체’는 원불교 교리 일원상진리로 표현한다. 또, 증산교 상생교리는 중국공산당식 공동부유의 남한 버전이 됐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아니오! 하며 비판을 해야 한다.
북한 김정은이 빡치는 특정 주제에 대해서도 이해가 간다.
원불교 백낙청의 분단체제론의 남북연합체 지식은 북한공산당의 지령이 아니다. 증산교 상생교리로 중국식 공동부유 번안도 북한공산당의 지령이 아니다. 그러나, 기존의 반공주의는 남한의 호남동학파의 행위를 모두 북한발, 혹은 중국공산당 발로 해석해왔다.
조선일보는 민족공산당 신간회 후예세력이다. 민족유일당은 다원주의 전제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깨뜨린다. 일당독재 구조를 반드시 전부 동의얻겠다는 전제로서, 숙의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신문사의 궤변은 지금 한국사회에서 반공주의가 왜 어려운지를 이해하게 되는 배경이다.
개헌안을 기필코 낼 모양이다. 광주민중항쟁세력과 부마항쟁세력의 연합이 집단기득권을 헌법전문에 박아서 국가장악을 하고, 그렇게 할 모양이다. 바로, 이런 행위 자체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일탈행위 그 자체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
유신체제의 1인독재의 어거지 문제를 아는 사람이, 지금 1당독재 구조로 가려는 문제가 왜 어거지인지 모를 수가 없다.
네 번째, 씨족사회의 모든 양반기득권을 복원하면서 반공주의가 공존하는 일은 불가능한데, 이를 유신체제에서 권위주의와 자유민주 짜맞추는 말안되는 일하는 것에서, 두번째 황당함으로 간다.
군사정권에서 크게 잘못한 일이, 교육평준화였다고 본다. 그게, 양반들끼리 고급 자제분들끼리 다해먹는 시스템을 전부 내려놓으라는 억압을 만들었고, 87년부터 교육평준화를 깨고 전부 유사 조선시대식으로 되돌리는 일로 나왔다.
양반기득권을 세우면 중국경전 문화를 사회에 채워야 하고, 그 중국경전의 다수파 논리는 청나라 세력 및 청나라 제후를 자처한 호남에 압도적 지배헤게모니 우위를 준다.
미국인들이 유튜브로 엄청난 다양성을 과시하더라도, 가령 경제유튜브에서 제이미 다이먼 등 압도적 경제지식인 몇몇에 의해서 질서지어지는 구조가 있다. 기독교에서도 결국 중하위권의 예언자는 교차검증 대상이고,제일 꼭지점에서 제사장이 있을 것이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지식정보를 소중히 생각하며, 지식의 생산을 기독교제사장처럼 생각하는 자들에 의한 정치다. 대한민국을 압도하는 지식인들의 상호 교차 검증의 허락은, 씨족마을 기득권의 내려놓음을 전제한다.
1930년대 히틀러 독일 그렇고, 소련 스탈린주의도 그렇다. 권력을 독점한 귀족들의 독점적 패권 야욕자체가 상호검증으로 불가능하게 되려면, 그 사회의 지성인의 상호검증에 나타난 투명한 이성원리가 통한다는게 있어야 한다.
요약하자.
1) 공산이론 규제가 풀려서 2026년 국민눈높이 반공은 모든 것을 다 보고 극복해야 하나, 반공을 민주당 끌어내리기의 정략도구로 하고 공부를 안했다.
2) 지난 30여년간 시늉의 반공이 아닌, 사실상 공산세력에 피해자체의 제도화를 논하는게 사실상 매우 매우 불편했다.
3) 주체사상의 주, 마르크스의 마, 가 없는 일제시대 한국공산주의를 복원하면서도 아닌 체 하는 내숭어법의 반대가 없다.
4) 이 모든 것은 씨족언어 복원을 통한 귀족중심의 국민약탈경제로 가면서도 아닌 체 하는 상황으로 나타난다.
중국인 장위안이 주장하듯, 한국에서 퍼진 중국경전발 문명은 모두 중국인 장위안의 조상이 한반도에 심은 것이다. 이는 토착어법이라면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사회계약을 이루고 과거부터 현재까지 쭉 살아온 사회에서 그 논리의 정통론은, 마치 일제시대에 동학이 기독교세력 증오하는 어법으로 쓴다.
따라서, 한국 사회의 자유민주 붕괴로 가는 잘못된 지식을 깨는 유효한 지식정보로서 반공지식의 생산은 쭉 막혀왔다. 가만히 있으면 미국이 해준다. 난세의 영웅이 나와서 해준다. 말도 안되는 어법이 나타난다.
즉, 모든 문제의 시작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자유’에서 이승만 자유당의 ‘자유’로 무속신앙에 깔린 원시도교 어법으로 쓰는 왜곡을 주도한 김영삼 정부 이후의 조갑제 기자, 박세일 교수, 김정호 교수 때의 문제로 나타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