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이후 장기 도피, 돌연 자수 후 복역
출소 뒤 목사 활동하며 반성없는 태도 보여

| 고문기술자로 이름을 날렸던 이근안 전 목사가 2012년 12월 14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 한 뷔페에서 열린 자서전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고백’ 출판기념회에서 취재진을 향해발언하고 있다. 이근안 전 목사는 출판기념회에 앞서 언론을 통해 자신을 소재로 한 영화 ‘남영동1985’가 사실과 다르다고 전한 바 있다. [뉴시스] |
군사정권 시절 전기고문, 물고문 등 강압수사를 해 ‘고문 기술자’로 악명 높은 이근안 전 경감이 25일 숨졌다.향년 88세.
경기일보에 따르면 이 전 경감은 최근 건강이 악화해 입원한 서울의 한 요양병원에서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요양병원에 입소하기 전에는서울 모처에서 홀로 지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 ‘고문기술자’ 이근안씨(68)가징역 7년의 형기를 마치고 2006년 경기 여주교도소에서 출소한 모습. [뉴시스] |
이근안은 1970~80년대 군사정권 시절 치안본부 대공수사관으로 활동하며 강압적 수사와 고문으로 유명해진 인사다.
발가락 사이에 쇠봉을 꽂아 전기를 통하게 하거나, 얼굴에 타월을 올리고 뜨거운 물을 붓는 방법, ‘날개 꺾기’ ‘통닭구이’ ‘관절빼기’ 등 다양한
가혹 행위로허위 자백을 받아내는 수법을 써서 악명이 높았다.
민주화 이후 수사가 본격화되자 사표를 내고 무려 10년 10개월 간 도피 생활을 해온 그는 1999년 10월 자수했다.
이 과정에서 검경의 부실 수사와 봐주기 의혹 등이 불거졌다.
이후 고문 및 불법 구금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유죄 판결을 받고 7간 복역하고 2006년 만기 출소했다.
출소 이후에는 개신교로 개종해 목사로 활동하며 공개 간증 등을 통해 과거를 반성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그러나 설교 중 과거 ‘서울대 내란음모 사건’으로 붙잡힌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을 언급하며 “건전지 하나 들이대면서 겁을 줬더니
빌빌거리더라”라고 비웃은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이후 목사직을 박탈당했다.
그동안 피해자들과 시민사회 일각에서는 사과의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책임 있는 참회를 요구해왔다.
역사의 한분 가셨노 ㄷㄷㄷㄷㄷ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