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단순히 건물들의 집합이 아니다. 도시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환경이고, 매일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경험하는 하나의 풍경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상하게도 도시의 풍경에 대해 너무 무심하게 살아왔다. 건물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얼마나 많은 세대가 들어가는지, 분양가가 얼마인지 같은 숫자에는 민감하면서도, 그 건물이 도시의 풍경을 어떻게 바꾸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도시는 결국 사람의 감각 위에 놓여 있는 공간이다. 매일 보고, 매일 지나가고, 매일 살아가는 풍경이 바로 도시다. 그런데 그 풍경이 난잡하고 거칠고 무질서하다면,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정과 태도 역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환경은 생각보다 강하게 인간을 형성한다. 어떤 공간에서 자라고 살아가느냐는 그 사람의 기분과 태도, 심지어 삶의 방식까지 조금씩 바꿔 놓는다.(중요)
그 풍경이나 환경의 종류에는 인구밀도, 표지판, 언어, 평균 용적률, 대중교통, 건축물 등이 있다.
 이런 문제를 오래 연구해 온 분야가 바로 환경심리학이다. 인간은 단순히 물리적 공간 속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공간의 분위기와 질서에 영향을 받는 존재라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 도시의 풍경이 점점 더 난잡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거리로 나가보면 거대한 간판들이 건물을 뒤덮고 있고, 서로 다른 스타일의 건물들이 아무 맥락 없이 서 있다. 어떤 건물은 유리로 번쩍거리고, 어떤 건물은 징크로 덮여 있고, 또 어떤 건물은 과장된 형태로 튀어나와 있다. 하나하나 따로 보면 나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것들이 한 거리 안에 뒤섞이면 도시 전체가 마치 서로 소리 지르는 상태처럼 느껴진다. 도시가 하나의 풍경이 아니라, 각 건물이 자기 목소리만 크게 내는 공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인간은 환경에 영향을 받으며, 심지어 혹자들은 지배를 받는다고도 하는데, 따라서 이에 무관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혼란스러운 풍경의 중심에는 특히 초고층 아파트 단지가 있다. 한국 도시를 조금만 둘러보면 알 수 있다. 20층, 30층짜리 건물이 수십 동씩 줄지어 서 있는 장면이 너무나 흔하다. 그 건물들은 주변 마을의 규모와도 맞지 않고, 거리와도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는다. 마치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어느 날 갑자기 꽂혀 들어온 것처럼 보인다. 더 문제는 이런 단지들이 도시의 풍경을 압도해 버린다는 점이다. 높이가 크기 때문에 몇 킬로미터 밖에서도 보이고, 결국 그 지역의 대표적인 모습이 되어 버린다.
이런 방식의 개발은 대부분 같은 논리에서 시작된다. “돈이 되니까.” 더 높은 건물을 짓고 더 많은 세대를 넣으면 수익이 늘어난다. 그래서 어디든 가능하면 높이 올리려고 한다. 심지어 시골 풍경 한가운데에도 아파트 단지를 세우려고 한다. 이런 장면을 보면 사람에 따라서는 개발이라기보다 일종의 폭력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기존의 풍경과 맥락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거대한 구조물이 주변 환경을 압도해 버리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것이 단순한 미관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도시의 풍경은 생각보다 많은 것에 영향을 준다. 사람들이 그 도시를 좋아하는지, 머물고 싶어 하는지, 창의적인 활동이 생겨나는지 같은 것들이 모두 공간의 분위기와 연결되어 있다. 도시사상가 제인 제이콥스는 도시가 살아 있기 위해서는 다양한 건물과 인간적인 스케일의 거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거대한 단지와 반복적인 구조는 도시의 활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도시의 형태가 사회의 성격을 반영한다는 말도 있다. 건축가 루이스 설리번이 말한 Form follows function이라는 원칙도 결국 같은 이야기다. 형태는 그 사회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준다. 어떤 도시는 보행과 거리 문화를 중요하게 여기고, 어떤 도시는 자동차를 중심으로 설계되고, 어떤 도시는 부동산 수익을 중심으로 만들어진다. 도시의 모습은 그 사회의 가치관이 물리적으로 드러난 결과다.
그래서 많은 도시들은 풍경 자체를 하나의 자산으로 생각한다. 예를 들어 파리는 도심의 건물 높이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코펜하겐은 인간적인 거리 스케일을 도시 경쟁력으로 본다. 스위스의 작은 마을들에서는 건물 높이뿐 아니라 지붕 형태와 재료까지 규정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풍경이 곧 그 지역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들이 원하는 도시는 그렇게 화려한 곳이 아니다. 거대한 분수나 장식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훨씬 단순하다. 건물 높이가 6~8층 정도로 유지되고, 도로는 적당히 넓으며, 건물 외관은 어느 정도 통일감이 있고, 간판은 과하게 크지 않은 도시. 건물들이 서로 경쟁하듯 튀어나오기보다는 하나의 배경처럼 조용히 어울리는 도시다.
이 정도만 되어도 도시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사람의 눈높이에 맞는 스케일이 만들어지고, 거리의 경험이 훨씬 부드러워진다. 무엇보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풍경으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Hamburg, Germany

 
 
결국 중요한 것은 도시를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이다. 도시는 단순한 부동산이 아니라 공동의 생활 환경이다. 한 건물이 만들어내는 영향은 그 건물 안에 사는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주변을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문제다. 그래서 도시에는 어느 정도의 규칙과 기준이 필요하다. 개인의 건축 자유가 완전히 사라져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도시 전체의 풍경을 함께 지켜야 한다는 뜻이다.
도시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한번 망가진 풍경은 수십 년 동안 남는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의 형태를 결정하는 문제는 생각보다 훨씬 중요하다. 어떤 풍경 속에서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는 결국 그 도시의 미래와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도시의 모습은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그 사회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집단적인 선택의 결과다. 그리고 그 선택이 모여 결국 그 도시의 흥망성쇠를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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