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라즘 제국은 13세기 때 이란고원과 중앙아시아를 차지했던 중동의 패권국이었다.

1218년 호라즘의 오트라르 영주가 몽골 외교관과 상인 450명을 이교도 간첩으로 몰아서 처형시켰다. 이에 몽골의 칭기즈칸은 호라즘 국왕에게 직접 사신을 보내 보상을 요구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할 것을 건의했다. 하지만 호라즘 국왕은 몽골 사신의 얼굴을 짓이겨서 칭기즈칸에게 돌려보냈다. 예나 지금이나 이쪽 사람들이 좀 미련한 구석이 있었던 것 같다.

<화가 난 몽골인의 눈빛>

1219년 분노한 칭기즈칸이 10만의 몽골 기병군단을 이끌고 원정에 나서 오트라르를 함락시키고 사건의 발단이 된 영주 '이날추크(Inalchuq)'를 잔인하게 처형했다. 온도 1000도에 달하는 끓는 은물을 눈과 귀에 부어 처형했다고 한다.
칭기즈 칸이 이러한 잔혹한 방식을 선택한 데에는 명확한 이유와 상징성이 있었다.
1. 탐욕에 대한 응징: 이날추크가 몽골 사절단을 죽인 결정적인 이유는 그들이 가진 막대한 재물(금, 은, 비단 등)을 탐냈기 때문이다. 칭기즈 칸은 "네가 그토록 은(재물)을 좋아하니 실컷 가져라"라는 상징적인 의미로 그의 눈과 귀에 끓는 은물을 부어 처형했다.
2. 배신과 모욕에 대한 복수: 유목민 사회에서 사절단을 해치는 것은 전쟁 선포와 다름없는 극악한 범죄이자 큰 모욕으로 간주되었다. 칭기즈 칸은 자신이 보낸 사절단이 당한 고통과 모멸감을 그대로, 혹은 그 이상으로 돌려준다는 관점에서 이 처형을 집행했다.
3. 심리적 공포와 경고: 단순히 한 개인을 처벌하는 것을 넘어, 몽골 제국에 대항하거나 사절단을 건드리는 자는 어떤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지 전 세계에 보여주는 본보기이기도 했다.

당시 호라즘 제국은 45만 대군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몽골군 10만에게 각개격파 당했고 주요 도시들도 차례차례 함락당했다. 곳곳에서 끔찍한 학살이 벌어지면서 호라즘 제국의 인구는 500만 명에서 250만 명으로,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당시 몽골군은 현재 이란의 수도 테헤란 지역도 점령했다. 다만 당시에는 오늘날의 테헤란이 아직 큰 도시가 아니었고, 근처의 레이(Ray)가 훨씬 중요한 도시였다고 한다. 몽골군은 레이(Ray)를 공격하여 점령하고 크게 파괴시켰다. 몽골 침공 이후 레이가 파괴되면서 주민들이 주변 마을로 이동했고, 그중 하나가 테헤란이었다.

몽골 침공 이후 대도시였던 레이가 파괴되어 쇠퇴하자 주변의 테헤란이 점점 커졌고, 훗날 카자르 왕조(Qajar dynasty) 시대인 18세기 말에 수도가 되었다.
몽골제국은 오늘날 이란지역에 일 칸국을 세워서 그땅을 지배했다.

이란을 끝장내려면 역시 육군이 투입되어 그 땅을 점령해야 한다. 해군과 공군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이란 내부에서 반란이 일어나 신정체제가 무너지는 것이지만, 실제로 그럴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는 불확실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