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민을 위한 특별한 속제제사 (레위기 4:27-31)
“만일 평민의 하나가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다가 그 범한 죄에 깨우침을 받거든 그는 흠 없는 암염소를 끌고 와서 그 범한 죄를 인하여 그것을 예물로 삼아 그 속죄제 희생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 희생을 번제소에서 잡을 것이요 제사장은 손가락으로 그 피를 찍어 번제단 뿔에 바르고 그 피 전부를 단 밑에 쏟고 그 모든 기름을 화목제 희생의 기름을 취한 것 같이 취하여 단 위에 불살라 여호와께 향기롭게 할지니 제사장이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얻으리라”
레위기에서 나오는 구약의 5대제사가 무엇이고 그것들의 차이점만 알아도 많은 은혜를 받고 주님의 구원사역에 대해 더 자세히 깨달을 뿐만 아니라 복음이 내 삶 속에서 확실해 지는 복된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번제와 소제와 화목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교훈 사이에는 명백한 차이가 있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희생제자들 속에서, 우리는 여려 각도로부터 취한 주님의 속죄사역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주제를 살피는 것이 매우 흥미진진한 일이 된다면 우리의 영적 양식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고 우리와 주님의 사이는 더더욱 가까워질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나오는 속죄제 안에는 매우 흥미로운 진리들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한 모형은 우리가 주의 깊게 살필 만한 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나오는 주제는 레위기에서도 몇 번 다루어진 부지중에 범한 죄에 관한 내용입니다. 제가 오늘 다루지 않을 주제는 부지중이라도 남에게 해를 끼친 사람은 하나님께 큰 잘못을 하였다는 사실과 이러한 죄를 범했을 때는 속건제를 드려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오늘 다룰 주제는 조금 다릅니다. 오늘 다룰 주제는 어떤 특별한 상황에서 부지중에 죄를 범하고 누군가에 도움으로 그것을 깨달은 평민을 위한 속죄제사에 관한 것입니다. 속건제가 남에게 지은 죄를 배상하기 위한 제사라면 속죄제는 하나님께 죄를 지은 것을 용서받는 사죄의 제사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선 이 평민이 지은 죄에 대하여 알아보고 그런 후 이 평민에게 죄를 깨우쳐 준 어떤 사람에 대해 살펴볼 것입니다. 다음으로 죄를 범한 평민이 드렸던 그만을 위한 특별한 속제죄사에 대해 알아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속죄제를 드리고 정결케 된 평민에 대해서 나누며 메시지를 마치겠습니다.
첫째, 본문은 비록 평민이 지은 죄라 하더라도 그 죄는 그를 충분히 멸망시킬 수 있고 하나님의 백성에서 끊어질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아마도 그의 죄는 작고 사소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는 율법에 대하여 무지하여 실수로 하나님의 계명 중 아주 작은 것을 범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비록 이러한 작은 죄를 부지 중에 범했다고 할 지라도 그 죄는 그에게 있어 저주와 형벌에 이르게 하는 죄입니다. 그는 그 죄를 제거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죄가 그를 멸망시킬 것이고 그는 결코 하나님의 백성이라 부를 수 없게 될 것입니다. 평민의 죄 역시 오직 속죄제사를 통해서만 제거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리 작고 사소한 죄라고 해도 그것을 가볍게 생각하시지 마시길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큰 죄를 위해서도 돌아가셨지만 아주 작고 사소한 죄를 위해서도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내 작고 사소한 죄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참 하나님이시요 참 사람이신 분을 피 흘리시게 만들고 돌아가시게 했습니다. 내가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죄책감 없이 저지르는 죄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고 돌아가시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 우리의 작고 사소한 죄를 죄책감 없이 가볍게 바라보아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이 말이 여러분에게 근심이 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육신을 입고 있기에 절대 100% 죄에서 승리하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의의 길을 걷는다는 것 죄와 실수가 전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느 누구도 그렇게 되지 못합니다. 의롭게 된다는 것은 우리의 몸을 깨끗하게 씻듯이 우리의 악한 양심을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는 것입니다. 의인이 된다는 것은, 비록 여전히 육신의 더러움이 묻어 있을지라도 자기 자신을 씻을 준비가 된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고 또 우리의 죄를 그리스도께 맡기고 그분과 항상 교제를 나눌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을 뜻한다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큰 죄에 대하여 애통해 하고 슬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작은 죄에 대해서도 똑같은 경중으로 애통하고 그 죄를 십자가 앞으로 가져간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주님과 깊은 교제를 나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리 작은 죄라도 가볍게 넘어가서는 안 되지만 그것을 내 힘으로 끊고 주님 앞에 의롭게 되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지 말고 이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 죄에 대해서 주님과 상의하십시오. 내가 왜 이 죄를 쉽게 범하는 지를 구체적으로 물어보십시오. 그리고 계속 이 죄에 넘어지는 것을 죄송하다고 말하십시오. 그리고 이 죄와 열심히 싸워 이기면 이 죄를 이긴 것을 주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신다는 것을 가르쳐 달라고 하십시오. 그렇게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나가면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그리스도의 충직한 일꾼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둘째, 이 평민에게 죄를 깨우쳐 준 어떤 사람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이 사람은 멸망할 수 있는 한 사람을 살린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는 평민이 멸망하는 것을 자기 일이 아니기 때문에 못 본척하고 지나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평민을 향한 따뜻한 마음이 있었고 그는 결코 그가 멸망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이 사람은 아주 조심스럽고 사려 깊은 말로 평민의 죄를 깨우쳐 주었을 것입니다. 평민이 죄를 범하면 암염소를 바쳐야 합니다. 광야에 있는 백성 중 평민에 속한다면 그는 분명 풍족한 생활을 하지 못했을 것이고 암염소를 바쳐야 한다는 사실은 그에게 적잖은 부담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평민에게 그의 죄를 깨우쳐 주는 것은 다른 말로 그가 재산에 손해를 입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평민을 향한 진심 어린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를 깨우쳐 줄 수 있었을 것입니다. 평민이 자신이 죄를 범한 사실을 인정하고 제산에 손해를 입어서까지 속죄제사를 드리려고 나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어떤 사람의 공로였습니다. 평민은 자신을 멸망하지 못하도록 구해준 그를 평생 잊지 못했을 것입니다. 거듭나서 새로워진 마음으로 드리게 되는 기도들 중에는 자기를 예수께로 인도해 준 사람을 위한 기도가 들어 있습니다. 새롭게 회심한 사람은 자신의 회심하도록 이끌었던 사람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것을 결코 잊지 않습니다. 또한, 새롭게 회심한 사람은 자신을 한번이라도 형제로 대해주고 위로나 교훈을 베풀어 준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기도를 자신의 기도 속에 포함시킬 것입니다. 왜냐하면, 새롭게 태어난 마음은 감사할 줄 아는 부드러운 마음이고, 이 땅에 있는 진실한 친구들에게 감사함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위로부터 거듭난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새롭게 태어난 신자가 자신을 이끌어 준 사람들을 위해서 중보기도를 하기 시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본능이고, 이 본능은 그의 평생에 걸쳐서 지속됩니다. 그들을 위한 중보는 그가 반드시 해야 할 일들 중에 하나가 됩니다. 그 일을 하는 것은 그에게 기쁨이 될 것입니다. 그가 그 일을 완전히 멈추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마음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그들을 위해 중보 하라고 지시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죄를 범한 평민이 드렸던 그만을 위한 특별한 속제죄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그는 암염소를 가지고 제사장을 만나 속죄제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흥미로운 사실하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장에서 속죄제물 바치고 그 속죄제물에게서 나온 모든 기름을 화목제물의 기름을 떼어낸 것 같이 떼어내 제단 위에서 불사르라고 명하십니다. 화목제물은 감사와 서원을 위해 자원해서 드린 제물을 가리킵니다. 이 제물은 구원의 기쁨과 친교를 나누는 일을 위해 준비된 제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속제제물을 화목제물처럼 다루라고 하시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거기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이 평민은 자신이 죄를 범했다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를 깨우쳐 주기 위해 말해주는 사람을 적대적으로 대하지 않고 자신이 죄를 범했다는 사실을 겸손히 인정했을 뿐만 아니라 빠듯한 생활을 하는 가운데 마련한 암염소를 가지고 제사장을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죄를 용서하실 뿐만 아니라 그가 겸손히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자신의 율법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시며 그와 함께 하고 교제하실 것을 약속하시는 의미로 속죄제물의 기름을 화목제물의 기름을 떼어낸 것 같이 떼어내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복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복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저주와 정죄의 율법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율법 ‘안에’에 있으며 그것을 자신의 삶의 기준으로 삼아 그 안에 있기를 기뻐합니다. 율법은 조금의 흐트러짐과 실수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 안에 있는 율법은 나를 소성케 하며 나를 기뻐 뛰게 만드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는 날마다 그것을 읽고 밤마다 그것을 묵상하기를 즐거워합니다.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 못했을지라도 그리하여 실족하여 넘어졌을지라도 예수 안에서 자유한 사람은 그 넘어짐조차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도구가 되고 그리하여 회개하면 완전한 율법을 행하였다고 하나님 앞에서 인정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인정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속죄제를 드리고 정결케 된 평민에 대해서 나누며 메시지를 마치겠습니다. 이 평민은 뜻하지 않은 행복을 손에 움켜쥐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를 고백하여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것 하나만을 바라였지만 자신의 죄를 고백한 상급으로 낮은 평민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전능하신 하나님과 교제를 누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뜻하지 않은 행복을 얻은 이 평민은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이 제사의 쓰인 제물에 관해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요? 제사를 통해 주님께 나아가 제물을 바치고 하나님 앞에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경험을 통해 이 평민은 이 제물이 자신을 하나님과 사이를 중재하고 피 흘리고 죽었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해 보았을 것입니다. 비록 확실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지는 못했을 지라도 그는 어느 정도 이 복음의 비밀을 알아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고 율법을 즐거워하는 믿음의 용사가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속죄제물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가는 것은 우리 스스로의 믿음이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신 역사입니다. 화목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하나님을 이어주시는 길이 되셨기에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죄를 범했다고 낙심하지 마시고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죄를 고백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하여 우리에게 임하사 성령의 교통하심을 체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