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이기에 성경에 왜 그러한 형식으로 기록되었는지 이해가 되지요.

 

그 당시 유대 지역의 시대상황에

 

유대인들과 예수님의 말과 행동 등을 보고

 

본디오 빌라도가 판단을 했을 때 

'예수님이 옳다.'라고 판단했지만 결국 극형을 내립니다.

 

누구나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길을 올라가는 삶을 산답니다.

 

판단은 오직 하나님이 하십니다.

 

(다신교 국가라서 GOD[신]이라 표현하지 않고 한국말로 하나님이란 표현을 만든 것 같습니다.)

 

우리 중 하나의 선악을 분별하는 지식에 불과한 그들이 할 것이 아니지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했을 때 인간을 지으신 그 뜻으로 돌아갑시다.

 

보수의 적통을 잇는 것이지요.

 

예수께서 겨자씨 한 알의 믿음도 없는 제자들을 책망하니

 

믿음이 하나도 없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성경이 좋아 읽는 저 자신이 그리스도인 같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는 곳은 에덴 동산이 아니기에 승리하려면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떠오르네요.

 

예수께서도 인간의 몸으로 오셨기에

 

희노애락(간단하게 동양에서 쓰이는 표현으로 이해하기 쉽게 사용해봅니다.)을 보여주십니다.

 

우리에게도 희노애락이 있지요.

 

때로는 노와 애가 희와 락만큼 크게 와 닿기도 하지요.

 

감정은 소중합니다.

 

다만 순간의 감정에 치우쳐 대국적 흐름을 보지 못하면 잃는 것이 크겠지요.

 

하나님께서 말을 하니 세상이 창조되었는데

 

창조된 세상을 분석, 정리한 것만으로도

 

과학이 체계적으로 정립되서 이러한 찬란한 문명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에는 권능이 서려있고

 

항상

 

선악의 분별에 완벽하고

 

체계적이며

 

따르지 않으면 당연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지요.

 

아마 말에 권능이 있음을 보여주는 표현 같습니다.

 

그와 반대로 무능한 권력자의 말은

 

그대로 따랐다간 큰 일이 나기에 하급자들이 유도리 있게 따라야합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비전을 발견하면

 

그들의 식견을 권력자의 인지적 한계로 제대로 판단하지 못할 수 있지요.

 

그래서 그들의 비전을 기각하면

 

성장해야 할 경제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기에

 

레이건 정부의 작지만 강한 정부처럼

 

권력기관은 정부에서 꽉 잡고

 

나머지 분야는 전문가들의 자율에 맡기는 것이 맞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