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3년 조선 외교관이 오사카 호텔에서 피살된 사건이 있었기 때문 ... 

  피살된 사람은 무관 출신의 최천종이였으며 지금으로 따지면 4성군 육군참모총장급으로 높은 사람이였다고함 . 

  다음 날 오사카에서 조선으로 귀국할 예정이였으나 새벽 취침시간 자객이 나타나 암살시도를 했는데 무관출신이라 그런지 

 칼에 찔려 바로 죽지 않고 칼에 찔린 상태에서 일어나 자객과 싸웠다고함 . 자객도 최천종의 괴력에 놀라서 도망갔는데 이미 칼이 깊숙이 

 찔린 상태에서 아드레날린으로 자객과 싸운거라 이 당시 사료에도 배가 갈라져 내장이 흘러나오고 과다출혈이 심했다고함 

 죽기 전 " 내가 적과 싸워 죽으면 억울하지도 않겠는데 이렇게 죽는게 너무 억울하다 " 라며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고함 . 

 이 사건으로 난리가 났고 일본도 비상사태가 걸려 막부군 3,000명을 투입해서 범인체포를 시도했고 오사카 영주도 사무라이들을 풀어 범인체포에 

올인함 ... 근데 몇일이 지나도 잡을 수 없었다고함 ... 조선통신사들도 귀국길을 미루고 진범을 잡지 않으면 외교적 문제를 떠나 전쟁으로 갈 수 있다는 

소리 까지 하면서 막부를 자극함 .  그러자 어디서 데려온 남자가 범인이라고 자백시켜 참수 했는데 그 당시 사료에도 조선통신사들은 

" 사건을 무마하려고 죄없는 낭인을 범인으로 내세우며 참수시킨것같다 " 라고 기록함 

이 사건은 조선조정에도 알려져 큰 외교적 문제가 되었고 다음 조선 통신사들이 일본을 방문 했을때 마다 ' 최천종 피살사건 ' 을 언급하며 

명확한 사실관계와 진실 그리고 사과와 배상을 요구함 . 결국 참다참다 일본막부와 영주들도 1811년 " 그냥 오지마 외교단절 " 선언하면서 

1811년 조선통신사 행열이 대마도에 머물다 돌아가는 사건이 발생 . 결국 조선도 일본도 양측 모두 서로 반감만 생기면서 국교가 단절되 버림 . 

이 사건으로 일본에서 '정한론' 이 대두되면서 제국주의 불씨의 시작이되었다는 얘기가 나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