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및 《윤석열 증오자》인 조갑제기자의 ‘자유우파’란 말을 ‘국힘’에서 금지어를 만들지 않는 한 보수진영 단결이 불가능한 이유
 
 
구글ai를 인용하지만, 구글ai의 조갑제기자에 대한 기본입장은 조갑제씨에 조금도 비판하지 않겠다는 것이 기본입장이다. ai는 국민에 서비스하며 정보제시만 할 뿐이며 정치적인 주제는 두루뭉수리하게 얼버무리는게 이해가 된다. 이를 글의 서두에 밝혀둔다. 일베정게에 오랫동안 적어온 본인의 기본 메시지는 본인의 <오~~래된 생각>일 뿐이다.
 
하나의 공동체에서 의사소통은 개념을 의사소통이 가능할 수준으로 비슷하게 적용해야 한다.
 
“AI 개요
학문 공동체에서 쌍방이 개념을 정확하게 사용하는 것은 연구의 타당성, 신뢰성, 그리고 학문적 발전을 위한 가장 기초적이고 필수적인 요건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학문적 오해와 오류 방지 (지식의 정확성)
용어의 모호성 해소: 추상적이거나 복잡한 개념이 많은 학문 분야에서 용어의 정의가 불분명하면 쌍방 간의 오해(misinterpretation)가 발생하여 논의 자체가 어긋날 수 있습니다.
비극적 오해 방지: 이념이나 학파가 다른 경우, 같은 용어라도 다른 의미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정확한 정의가 없으면 학문적 오해라는 비극적 결과(연구 결과 왜곡)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2. 지식의 공유 및 누적 (연구의 확장성)
공동의 기반 조성: 정확한 개념 사용은 연구자가 연구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수신자가 이를 명확히 이해하도록 도와 지식 공유를 쉽게 만듭니다.
건전한 비판과 발전: 명확한 개념 정의는 연구의 논리 구조를 투명하게 만들어, 타 연구자가 그 토대 위에서 의문을 제기하거나 연구를 확장(build on)할 수 있게 합니다.
3. 연구의 타당성 및 신뢰성 확보
연구의 전문성 증명: 정확한 학술 용어와 명확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연구자가 해당 분야를 깊이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연구의 타당성과 신뢰성을 높여줍니다.
연구의 질 향상: 모호한 언어는 연구의 질을 낮추고 결과에 대한 불신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명확하고 간결한 언어 사용이 필수적입니다.
 
4. 협업과 소통 효율화
효율적인 상호작용: 학문 공동체 내에서 공통된 용어와 개념을 사용하면 의사소통에 드는 비용과 시간을 줄이고, 효율적인 공동 연구 및 논의가 가능해집니다.
 
결론적으로 학문 공동체에서의 정확한 개념 사용은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연구자들이 하나의 주제에 대해 동일한 이해를 가지고 담론을 나누기 위한 최소한의 약속"이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조갑제의 이승만은 이승만 본래 입장 아니라, 이승만의 정적 신채호 세계관으로 분석했다. 조갑제의 ‘자유’표현은 칼 마르크스의 자유인지, 하이에크의 자유인지 통으로 하나로 표현되는게 너무 많다. 비주사파 민족해방파 두목인 문익환 노선으로 가다가, 그 노선개념으로 이승만을 바로 긍정하기도 한다.
 
이렇게 양 극단의 개념을 통으로 하나로 이쪽 저쪽을 동시에 쓰는 개념은 함석헌 선생에서 김대중으로 흐르는 사고궤적이다.
 
“AI 개요
함석헌 선생의 유교, 불교, 도교, 기독교를 아우르는 사상적 입장은 '씨알사상(민중 중심의 철학)'으로 종합되어,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서 '행동하는 양심'과 '평화통일론', '민주주의 실천'이라는 구체적인 정치적 행동으로 확장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사상적 동지로서, 함석헌의 철학이 김대중의 정치적 기반을 닦는 데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1. 함석헌의 종교/사상적 입장 (씨알사상으로의 종합)
함석헌은 특정 종교의 교리보다 '사람(민중)'을 중심에 두는 보편적 영성을 추구했습니다.
기독교: 서구 신학을 넘어선 무교회주의와 퀘이커(Quaker) 사상에 기반하여, 내면의 '속사람'과 '행동하는 신앙'을 중시했습니다.
유교/도교/불교: 민족의 전통사상을 융합하여 '나'를 비우는 '무위자연(도교)'과 '인(仁)과 사랑(유교)', '공(空)과 깨달음(불교)'을 기독교적 사랑과 결합했습니다.
씨알사상: 결국 종교의 목적은 민족이나 국가가 아닌 '세계와 인간'에 있다고 보았으며, 억압받는 민중을 '씨알(백성)'로 지칭하며 그들의 힘과 주체성을 강조했습니다.
2. 김대중에게서의 정치적 확장
김대중은 함석헌의 '씨알사상'을 정치 현장에서 실천 가능한 '민중의 도리'로 변용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 (정치적 실천론):
함석헌이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며 민중의 자각을 촉구했듯, 김대중은 1975년 함석헌의 '씨알의 소리' 창간 시국강연회에서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는 말로 유명한 '행동하는 양심'을 제창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생각하는 것을 넘어 독재에 저항하고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민주화 운동의 지침이 되었습니다.
'민주주의와 민족통일' (인권·평화 운동):
함석헌은 민족 경계를 뛰어넘는 '세계주의'와 '비폭력'을 강조했습니다.
김대중은 이를 이어받아 1970년대 유신 독재에 맞서며 민주화 운동을 전개했고, 재야의 대표적인 반유신 단체(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한 국민연합)에서 함석헌 등과 함께 활동했습니다.
이러한 평화사상은 후에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이어지는 '햇볕정책(포용정책)'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민중 중심의 국가관 (씨알의 정치):
함석헌이 권력 중심의 국가를 비판하고 씨알(백성) 중심의 사회를 강조한 것을 김대중은 '국민의 정부'라는 국정 운영 철학으로 받아들여, 권력 중심이 아닌 국민 중심의 국정 운영을 표방했습니다.
 
함석헌의 사상은 "종교적 초월성(도/불/유/기독교 융합) → 씨알(민중)의 주체성"으로 정리되며, 김대중은 이를 "행동하는 양심(민주주의) → 평화와 포용(통일)"이라는 구체적인 정치적 행동으로 확장하여 한국 현대사의 민주화와 평화의 토대를 만들었습니다.”
 
우리공화당에서도 함석헌 선생에서 김대중에 흐르는 유영모 선생에서 시작된 ‘천지인합일체’개념이 발견된다. 구글 ai의 정리를 그대로 옮긴다.(거듭 밝히지만, 구글의 기본입장은 한국정치에 누구도 비판하는 쪽 아니라, 제시만 하는쪽이다. 비판적 인용은 본인의 시점이다)
 
“네, 민중신학계는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를 거치며 서구 중심의 신학 방법론을 비판하고 한국적인 신학을 정립하기 위해 동서양의 사고방식을 비교하는 논의를 활발히 진행했으며, 동양적 사고를 일원론(관계론/유기체론), 서양적 사고를 이원론(실체론/이분법)으로 규정하여 비교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논의의 배경과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배경 (1980년대 후반~1990년대): 민중신학의 제1세대인 안병무 등은 서구 신학의 철학적 배경(헬라 철학)이 주객(主客)을 분리하는 이원론적 구조를 가지고 있어, 민중의 '삶의 자리(Sitz im Leben)'와 '관계'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고 비판했습니다.
동양적 사고 (일원론): 동양의 사유방식은 인간과 자연, 주체와 객체, 삶과 죽음을 분리하지 않고 유기적으로 연결된 '관계' 중심의 사고, 즉 일원론적인 특성을 가진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는 불교나 노장 사상, 유교적 배경에서 나온 동양적 도(道)의 개념과 연결되었습니다.
서양적 사고 (이원론): 서양의 전통은 데카르트식의 실체 철학에 기초한 개체론적 사유, 즉 주객을 이분법적으로 분리하는 이원론적 특징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목적: 민중신학은 이러한 비교를 통해 서구의 '교리' 위주 신학을 비판하고, 한국의 전통적인 사유(한, 恨, 도, 道)에 근거한 '사건'과 '삶'의 신학으로 전환하고자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90년대 민중신학은 한국적인 정체성을 찾기 위해 서구의 이원론적 사고를 비판하고 동양의 일원론적(관계적) 사유를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신학 방법론을 갱신하려고 시도했습니다.”
 
농촌마을에서 시시콜콜히 그 마을 사람들을 다 알지만, 그래서 그 마을은 모두 하나지만, 외지인(조갑제 마을에서 윤석열씨, 그리고 조갑제 마을에서 탄핵이 불의하고, 부정선거가 있다고 여기는 민경욱씨, 황교안씨 등은)은 철저하게 배제대상인 그런 호남씨족종교 우주중심론(중화사상)이 가능하다.
 
김대중과 김영삼이 연합했다. 조갑제기자는 김영삼계이지만 김대중 인터뷰로 인기를 얻었다고 본다. 바로, 민중신학에서 강조가 되고, 유영모 선생, 함석헌 선생, 및 김대중에 이르고, 우리공화당 조원진에게도 장착되 이 사고가, 조갑제기자에 있다고 봄은 합리적 판단이다.(구글 ai는 이런 판단이 조갑제기자에 없다고 판단. 미안하네. 구글. 한국정치에 구글을 끌어들일 생각 없다)
 
조갑제는 자기가 중도이며, 자기 마음에 안드는 모두를 극좌, 극우라고 한다. 자기가 우주중심이다.
 
그래서, 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의 자유와, 하이에크의 자유.
신채호 선생의 친중공산주의 자유와 이승만의 자유
 
등 조갑제씨 기준으로는 온 우주를 관장하나!! 조갑제 사단이 아닌 밖에서는 극한대의 황당무계로 빠진다.
 
결국, 개념과 논리로서 의사소통의 기본이 빠지니, 결국은 씨족중심의 원리만이 남게 된다.
 
장동혁 증오자, 대구경북 증오자, 부정선거 있다고 여기는 사람 증오자, 윤석열 증오자, 조갑제의 ‘자유우파’란 용법은 조갑제씨족들의 구성원을, ‘상간녀 1, 상간녀 2, 상간녀 3..... 법적 부인’등을 통으로 아우르는 일원론적 사고로 가나,..... 의사소통의 최소한의 잣대가 망가졌다.
 
더불어, 조갑제기자는 이렇게 권력을 쥔 부족당파만 신경쓰니, 보수의 인문학을 절멸급 파괴했다.
 
보수공동체에서 ‘의사소통’은, 결국은 김영삼 때부터 노무현 때까지, 조갑제-박세일-김정호 교수가 세운 어떤 틀에 대한 기계적 반복(이는 유신체제 유신경제학의 기계적 반복을 하는 것과 비슷)으로서 씨족계승원리만 남고, 수평적 의사소통은 완전히 사라진다. 학적 규정 하나도 정확한게 없다.
 
따라서, 의사소통이 이러니 외부의 인사들이 보수진영에 새 인사로 들어올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