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세 0원에게 자가소유라는 환상은 누가 주었나?
— 주택정책의 현실 불일치 발생

Ⅰ. 보편적 자가 소유라는 전제의 형성
① ‘내 집 마련’이 성공의 기준이 된 사회적 배경

한국 사회에서 주택 소유는 단순한 거주 수단을 넘어, 안정과 성취의 상징으로 기능해 왔다. “집을 가지면 삶이 안정된다”는 믿음은 오랜 기간 반복되며 사회적 상식이 되었고, 개인의 노력과 성실함이 결국 주택 소유로 연결된다는 기대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이 과정에서 주택은 ‘삶의 한 요소’가 아니라 ‘삶의 안전장치’로 인식되었고, 주택 정책도 이러한 정서적 토대 위에서 설계되기 쉬웠다.

② 모든 계층에 동일 목표가 부여된 구조

문제는 이 목표가 계층별 현실을 구분하지 않은 채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목표”로 굳어졌다는 점이다. 소득·자산·직업 안정성이 서로 다른 집단이 동일한 목표를 가져야 한다는 전제는 매력적이지만, 실제로는 정책의 출발점을 왜곡한다. 현실에서 주거는 계층에 따라 ‘보호해야 할 안정’이기도 하고 ‘진입해야 할 자산’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차이가 지워진 채 ‘모두가 자가 소유’라는 구호가 정책의 기본 전제가 되면, 설계는 감정적으로는 평등해 보이지만 구조적으로는 불일치를 필연적으로 만들어낸다.

Ⅱ. 이 환상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③ 정치의 단순화 전략

정치권이 주거를 다루는 방식은 본질적으로 단기적 인센티브에 좌우되기 쉽다. 주택 시장은 복잡하고, 계층별로 해법이 다르며, 정책 효과도 장기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선거 과정에서 유리한 메시지는 복잡한 구조가 아니라 간단한 약속이다. “집값을 잡겠다”, “서민도 집을 사게 하겠다”는 구호는 이해하기 쉽고, 분노와 불안을 빠르게 흡수할 수 있다. 이때 정책은 현실 가능성을 계층별로 나누기보다, ‘하나의 목표를 모두에게 약속’하는 쪽으로 기울어지기 쉽다.

④ 금융·건설 산업의 성장 논리

금융과 건설 산업은 자가 소유 확대와 깊이 연결되어 왔다. 주택 금융이 확대되면 대출 시장이 커지고, 공급 확대는 건설 경기와 고용을 지탱한다. 집을 사는 것이 개인의 선택이라기보다 경제 성장의 기제로 활용되는 순간, 자가 소유는 ‘권장되는 행동’이 된다. 이 흐름이 누적되면, 사회는 주택을 거주재로만 보지 않고 ‘정상적인 자산 형성 경로’로 보게 된다. 그 결과 자가 소유는 더 강한 상징성을 띠고, 임대는 일시적·열등한 선택처럼 취급될 소지가 커진다.

⑤ 문화적 내러티브의 고착

문화적 수준에서 “내 집이 있어야 사람답게 산다”는 정서가 넓게 확산되면, 임대 거주는 ‘잠깐 거쳐 가는 단계’로 격하된다. 이때 사회는 자가 소유를 ‘정상 상태’로 규정하고, 자가 소유에 실패한 개인을 구조의 문제로 보기보다 개인의 노력 부족으로 해석하기 쉽다. 여기서 환상은 완성된다. 실제로는 가능성이 낮은 계층에게도, 자가 소유가 마치 보편적 목표인 것처럼 주입되는 구조가 형성된다.

Ⅲ. 소득 구조와 자가 소유 현실의 괴리
⑥ 소득세 0원 계층의 구조적 한계

소득세가 0원인 계층은 그 자체로 “부담이 적다”는 의미가 아니라, 소득과 저축 여력이 제한적일 가능성이 높다는 신호로 읽힐 수 있다. 이 계층에게 자가 진입은 ‘열심히 하면 된다’의 문제가 아니라, 대출 상환 능력·생활비·예상치 못한 지출을 감당할 수 있는 구조가 성립하는지의 문제다. 현실적으로 안정적 임대, 주거비 보호, 생계 리스크 완충이 우선되는 구간이 존재하며, 이 구간에 자가 소유 목표를 무차별적으로 주입하면 정책 설계는 필연적으로 왜곡된다.

⑦ 불가능한 목표를 전제로 한 정책 설계

정책이 “하위 계층도 자가 소유가 가능해야 한다”는 전제를 깔면, 시장 전체에 강한 규제 압력을 넣게 된다. 집값이 충분히 내려가면 가능할 것이라는 가정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시장 구조를 무시한 단순화다. 핵심 입지는 인프라 희소성 때문에 가격이 쉽게 내려가지 않고, 수요 억제는 대기 수요로 대체되며, 공급 확대는 외곽 재고를 늘리는 형태로 전개되기 쉽다. 결과적으로 불가능한 목표를 가능하게 하려는 정책은 시장 안정이 아니라 구조적 긴장을 키운다.

이 순간부터 주택정책은 현실을 조정하는 도구가 아니라, 실현 불가능한 꿈을 맞추기 위해 사회 전체를 비틀기 시작한다.

Ⅳ. 환상이 만들어낸 정책 왜곡
⑧ 하위계층 기준으로 시장 전체를 규제

하위 계층의 자가 소유 가능성을 목표로 설정하면, 정책은 곧바로 가격 억제에 집중하게 된다. 보유 규제, 거래 규제, 다주택 억제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는 주거 약자를 직접 보호하기보다 시장 기능을 경직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규제가 강해질수록 거래는 얼고, 비용은 임대료로 전가되며, 주거비 부담은 임차인에게 이동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⑨ 중산층 자산 이동 경로의 붕괴

중산층에게 주택은 자산 축적의 출발점이다. 일정 자본이 모인 이후 추가 자산 진입이 계층 이동의 분기점이 되지만, 다주택 규제와 거래 부담이 강해지면 이 통로가 먼저 막힌다.
중산층에게 주택은 단순한 거주 공간이 아니라 자산 축적이 시작되는 첫 관문이었다. 근로소득으로 일정 기간 저축해 약 2억 원 안팎의 종잣돈을 마련한 뒤, 여기에 대출과 전세 제도를 결합하면 비교적 적은 자기자본으로도 주택 매입이 가능했다. 실제로 한국의 전통적 자산 진입 구조는 자기자본 20~30%, 전세보증금 40~60%, 금융권 대출 10~30%가 결합되는 방식이었으며, 이를 통해 실질적으로는 전체 주택 가격의 10% 내외 자본만으로도 자산 시장에 진입할 수 있었다. 전세는 단순한 임대 방식이 아니라 중산층이 레버리지를 안전하게 활용할 수 있게 해주는 비공식 금융 장치였고, 이 구조가 작동할 때 자산 상승의 초기 구간에 참여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다주택 규제 강화와 금융 규제가 동시에 작동하면서 이 전통적 사다리는 빠르게 붕괴되기 시작했다. 전세 공급이 위축되고 대출 한도가 제한되자, 중산층은 더 이상 단계적으로 자산에 진입하기 어려워졌고, 대신 한 번에 최대한의 레버리지를 끌어오는 방식으로 몰릴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이른바 ‘영끌’ 전략이다. 영끌은 주택담보대출을 주축으로 하되, 부족한 금액을 신용대출로 보완하고, 경우에 따라 전세 보증금을 활용한 갭 투자 방식까지 결합해 가능한 모든 자금을 동원하는 방식이다. 생애 최초 구입자의 경우 주택 가격의 최대 80%까지 주담대를 활용하고, 여기에 신용대출과 각종 보조 금융 상품을 얹어 초기 자본 부담을 극단적으로 낮추는 구조가 일반화되었다.

정부 지원 대출 역시 이러한 흐름을 가속했다. 디딤돌대출, 특례보금자리론, 청년·신혼부부 대상 장기 고정금리 상품 등은 이자 부담을 낮추는 대신, 가계가 감당해야 할 원금 규모를 크게 키웠다. 결과적으로 과거에는 전세라는 완충 장치를 통해 비교적 안정적으로 레버리지를 조절하며 자산 시장에 진입했다면, 오늘날 중산층은 전세 축소와 규제 환경 속에서 한 번의 선택으로 인생 전체의 부채 구조를 떠안는 방식으로 내몰리고 있다. 결과적으로 중산층은 ‘완충된 레버리지’에서 ‘고레버리지 단일 베팅’ 구조로 이동하게 되었다.

현금 부자는 규제 강화 국면에서도 매입을 이어가거나 관망할 수 있지만, 중산층은 “조금 더 올라가려는 순간” 안전한 사다리를 잃고 과도한 위험을 떠안거나 아예 진입 기회에서 배제되는 구조가 된 것이다. 결국 다주택 규제가 투기 위험만 줄이는 것이 아니라, 중산층을 더 취약한 부채 구조로 밀어 넣어 경제의 허리를 약화시키고, 장기적으로는 금융 불안성을 증폭시키는 역설을 만들어낼 수 있다. 

전세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기회의 사다리’가 아니라 인생을 건 단 한 번의 부채 베팅뿐이었다.

⑩ 임대시장 위축과 주거비 상승

임대 공급이 줄고 전세가 월세로 전환되며 세입자의 부담 구조는 ‘목돈 예치’에서 ‘매달 고정 지출’로 바뀐다. 집값이 크게 오르지 않아도 체감 주거비는 상승하고, 장기적으로 가계의 자산 형성 능력은 약화된다.

Ⅴ. 해외 대도시 사례와 공간 압축의 현실

뉴욕의 이른바 ‘성냥갑 주거’는 극심한 주택난과 높은 임대료가 만들어낸 구조적 적응 방식이다. 맨해튼을 중심으로 확산된 초소형 아파트와 모듈러 주택은 평균 300평방피트(약 8.4평) 이하의 공간에 침대, 주방, 작업 공간을 압축 배치한다. 벽면 전체를 수납공간으로 활용하며, 가격 조정 대신 인간의 생활 공간이 축소되는 방식으로 시장 균형이 맞춰진다.

도쿄에서는 이 현상이 더욱 극단화된다. 일부 주택은 9~10㎡(약 3평) 수준으로, 간이 욕실과 세면대, 다락형 침실로 구성된다. 폭이 60cm 내외인 초협소 건물도 존재하며, 수직 공간 활용과 다기능 가구를 통해 최소 단위 생활이 가능하도록 설계된다. 이는 편리함보다는 고임대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형 주거 구조에 가깝다.

이 두 도시는 공통적으로 주거비 상승이 가격 조정이 아니라 공간 압축으로 전가되는 경로를 보여준다. 자가 진입이 어려워지고 임대 중심 사회가 고착될수록 주거 문제는 금액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질 축소 문제로 전환된다.

주택 가격이나 임대료가 사회적 부담 한계를 넘어설 때, 시장은 비용을 낮추는 대신 사람의 생활 공간을 줄이는 방식으로 조정한다는 것이다. 이는 다주택 규제와 임대 공급 위축이 장기적으로 도시 주거비 상승과 공간 축소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현실적 경고 사례라 할 수 있다.

Ⅵ. 한국 사회로의 잠재적 전이 경로

전세 축소와 월세화가 진행되면 한국 역시 유사한 경로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이 흐름을 한국 맥락과 직접 연결하면, 핵심 변수는 전세의 축소와 임대의 월세화입니다. 전세는 거액 보증금을 통해 월 현금지출을 낮추는 완충 장치로 작동해 왔습니다. 그런데 다주택 규제와 보유 부담 증가로 임대 공급이 위축되고, 집주인이 현금흐름 안정성을 이유로 월세를 선호하게 되면, 세입자의 부담 구조는 ‘목돈 예치’에서 ‘매달 고정 지출’로 전환됩니다. 이때 집값이 크게 오르지 않더라도, 가계의 체감 주거비는 상승합니다. 가격이 아니라 현금흐름이 압박을 받는 구조가 되는 것입니다.
이때 도시 인프라 집중이 유지된다면 사람들은 외곽 이동 대신 공간 축소로 적응하게 된다.

도시를 떠날 수 없는 상황에서 임대비를 낮추는 유일한 방법이 ‘면적 축소’로 남기 때문입니다.
원룸이 더 작아지고 쉐어하우스가 늘어나며 수납과 가구가 벽면에 밀착되는 구조가 일반화될 수 있다. 이는 비용을 낮추기 위한 유일한 생존 전략이 되며, 주거는 가격 문제가 아니라 밀도 문제로 바뀐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생활 불편을 넘어 사회 구조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높은 월 고정비는 저축 여력을 약화시키고, 자산 형성의 출발선을 더 뒤로 밀어냅니다. 청년층은 장기 계획을 세우기 어렵고, 가구 구성은 더 소형화되며, 출산과 결혼 같은 결정은 지연됩니다. 

주택정책이 가격 안정에만 초점을 맞출 경우, 그 이면에서 진행되는 공간 압축과 고정비 상승을 놓칠 수 있습니다. 결국 주거 문제는 “집값을 얼마로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삶의 구조를 허용할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Ⅶ. 현실에 맞는 주택정책 재정렬의 필요성
⑪ 하위층: 안정적 임대와 주거비 보호 중심 정책

하위 계층에게 필요한 것은 소유 기회가 아니라 주거 붕괴를 막는 장치다. 장기 거주 안정성, 임대료 급등 완충, 주거 불안 해소가 핵심 목표가 되어야 한다.

⑫ 중위층: 자가 진입과 자산 축적 통로 확보

중위 계층은 현실적으로 자가 진입이 가능한 집단이며 사회 경제의 중심축이다. 과도한 위험을 억제하면서도 자산 이동 사다리를 유지하는 금융 접근성과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

⑬ 상위층: 투자와 자산 운용에 대한 시장 규율

상위 계층 영역에서는 투명성과 공정성 강화가 핵심이며, 정상적 투자 활동까지 위축시키지 않는 균형이 요구된다.

Ⅷ. 결론

‘모두의 자가 소유’라는 구호는 따뜻해 보이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계층에게까지 목표를 강요하는 순간 정책을 왜곡한다. 그 결과 규제는 임대 위축과 주거비 상승, 중산층 이동성 붕괴로 전가된다. 주거 정책은 감정적 슬로건이 아니라 구조적 현실을 기준으로 재설계되어야 한다. 안정이 필요한 계층과 자산 진입이 필요한 계층, 규율이 필요한 계층을 구분하는 것이 한국 주택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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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비도 모자란 하위계층에게 누가 "내집 마련"이라는 환상을 강요하는가?
이들에게 주거환경이란 소유가 아니라 머무를수 있는 안정된 공간이 필요하다. 

환상을 강요하니 집사는걸 포기한다는게 큰 일이 되어버린다. 첨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는데도 마치 있었던 권리가 사라진거 같은 착시를 가져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