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서 부산으로 내려온 애들이 모일 곳이 칠성파뿐이었다
한국사람들이 서로 말을 알아듣던 계기가 징집병사들 내무생활인데 그게 보편화되던 시절이 아니라서
부산서 말이 안통해서 평안도 함경도 들끼리 모여놀다가
조직화된게 칠성파
우리 집에도 칠성파 몇몇이 재미삼아 혹은 인척으로 생김.
칠성파출신 배우 오지명이 이모부 ㅡ 결국 이혼.
일본어 유창한 칠성파들은 주로 일본 밀수 ㅡ 그런 새끼들
오오무라 수용소에서 빼주려고 우리 아부지 그 당시에 일본 수 차례 가심.
그 사람들은 돈벌어서 70년대에 미국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