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 4 남북공동성명은 새로운 민족사의 서장(序章)이며, 민족적 양심의 승리이며, 평화통일(平和統一)을 지향하는 첫걸음이다.
'제헌절’ 경축사에서 (1972.7.17.)


‘새마을가꾸기 운동’을 나는 최근에 ‘새마을정신’이라고 말하고 있다. ‘새마을정신’이란 뭐냐? 자조(自助)과 협동정신(協同精神)이다. 내가 항시 입이 닳도록 국민들에게 당부하는 이야기지만, 특히 우리 농민들은 잘살아 보겠다는 의욕이 있어야 되겠다. “내 힘으로 잘살아 봐야 되겠다. 내가 더 노력해서 한번 잘살아 보자”하는 자조정신(自助精神), 또 “남한테 의지하거나 의지할 생각을 하지 않고 내 힘을 가지고 해보겠다.”하는 자립정신(自立精神), 또 한 동네에 있어서 온 동네 사람들이 서로 단결하고 협동해 나아가는 협동정신(協同精神), 이러한 정신이 갖추어지게 되면 우리 농촌은 불과 몇 년 이내에 완전히 일어난다.
‘벼베기대회’ 치사에서 (1971.9.29.)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영원히 못하는 사람이다. “될 수 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과 의욕이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연두기자회견에서 (1971.1.11.)


“양반은 얼어 죽어도 겻불을 쬐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지만, 이러한 체면치레는 우리의 “잘살아 보겠다”는 노력을 가로막는 큰 병통이다.
월간 ‘새농민’의 특별기고에서 (1971.4.15.)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자!” 기름으로 밝은 등(燈)은 오래가지 못한다. ‘피’와 ‘땀’과 ‘눈물’로 밝히는 등만이 우리 민족의 시계(視界)를 올바르게 밝혀 줄 수 있는 것이다.
박정희 지음 『국가와 혁명과 나』에서 (1963.9.1.)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있다. 스스로 살아 보겠다고 노력하고, 부지런하게 일하는 농민은 하늘도 도와 주는 법이다. 그러나 자조정신이 강하지 못한 농민은 하늘도 도울 수 없고, 정부도 도울 수 없고, 이웃도 도울 수가 없는 것이다.
권농일 치사에서 (1970.6.10.)


가난한 농촌의 아들로 태어나 동족상잔의 비극적인 시대에 살면서, 나는 자나 깨나 이 땅에서 가난을 몰아내고, 남북의 부모 형제가 얼싸안고 재회(再會)의 기쁨을 누릴 통일조국(統一祖國)의 실현을 희구(希求)해 왔다. 어찌 이것이 나 혼자만의 소망이겠는가? 남녘에 살거나 북쪽에 살거나, 수륙만리(水陸萬里) 이방(異邦)에 살거나, 사랑하는 우리 국민 누구나의 가슴속에 타오르고 있는 민족의 염원이 아니겠는가?
제7대 대통령 취임사에서 (1971.7.1.)


고식적(姑息的)이며, 체념(諦念)에 빠진 일부 농어민들에게 신념과 용기와 희망을 주고, 자조 · 자립(自助 自立)의 정신을 불러일으키는 농어촌의 개척자와 지도자들의 창의와 노력이야말로 농어촌개발의 관건(關鍵)이다.
농어민 소득증대특별사업 경진대회 치사에서 (1970.11.11.)


공단(工團) 안에서 일하는 연소 근로자들은 화려한 오락시설보다는 야간중학이라도 있어 열심히 배워서 중학졸업자격을 얻는 것이 절실한 소망일 것이므로 이런 문제부터 먼저 해결해 주도록 해야 한다.
정부 · 여당연석회의 치사에서 (1976.7.23.)


과학과 기술이 앞선 민족일수록 남보다 일직이 국가발전을 이룩했고 번영을 이룩했으며, 앞으로도 그러한 민족이나 국가가 남보다 앞서 세계를 이끌어 나가게 될 것이다. 오늘날 선후진 국가를 막론하고 모든 나라들이 앞을 다투어 과학 기술의 개발과 육성을 위해 경쟁을 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데 있는 것이다.
‘과학의 날’ 치사에서 (1970.4.21.)

교육의 성과는 비록 물질적인 생산이나 건설의 성과차럼 당장 눈 앞에 나타나지는 않을지 몰라도 거목(巨木)을 키워가는 은은한 지하의 물줄기처럼, 국가발전의 저력(底力)이며 역사발전의 밑거름으로서 영구불멸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종합교육센터 기공식 치사에서 (1971.4.14.)


국가와 민족의 기업체를 자기가 맡아서 운영하고 있다는 ‘기업의 공공성(公共性)’과 기업을 일으키고 키우는 일 자체에 생의 보람을 느끼는 순수한 기업가정신을 지니고, 근로자를 자기 가족처럼 아끼고 돌봐 주는 인정 있고, 존경받는 기업인이 되어야 하겠다.
‘근로자의 날’ 치사에서 (1971.3.10.)


국민 모두가 헐벗은 산을 대할 때 내 몸의 살이 벗겨진 듯 쓰라려 하고, 거기 나무 한 그루가 심어질 때, 내 몸에 옷 한가지가 걸쳐진 것처럼 흐뭇하게 생각하는 마음의 자세가 아쉽다. 거칠고 메마른 이 강산을 무성한 초원(草原)으로 뒤덮은 맑은 물로 적시게 하여, 절경(絶景)의 낙원(樂園)을 건설하고, 비옥한 농토와 수류(水流)의 혜택으로 번영을 이룩하도록 해야 한다.
‘식목일’ 치사에서 (1964.4.5.)


국적이 없는 정신적 방랑아가 되어서는 안된다. 나라와 나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다. 나라가 잘되야 나도 잘 되고, 나라가 부강해야 나도 부자가 되고, 나라가 영광을 누려야 나도 영광을 누리게 된다.
연두기자 회견에서 (1973.1.12.)


그저 앉아서 못사는 게 팔자 소관이라고 한탄하고, 나아가서는 정부가 우리를 도와 주지 않 아서 못산다고 원망이니 하고, 자기가 못사는 것이 남에게 책임이 있는 것처럼 불평이나 하는 농민들은 몇 백년 가도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전국 지방장관회의 유시에서 (1970.4.22)

근면(勤勉) · 자조(自助) · 협동(協同)의 새마을정신을 농촌과 도시의 구별 없이 각기 자기의 생활영역에서 발휘하여, 농촌에서는 소득증대(所得增大)에, 기업가는 경영합리화(經營合理化)에, 그리고 근로자는 생산증강(生産增强)에 각기 전념함으로써 국력배양에 이바지해야 하겠다.
신년사에서 (1973.1.1.)


급격한 변화에 부닥치면 약한 자는 이것을 두려워하고, 굳센 자는 이것을 지혜롭게 포착하여 새로운 발전의 발판으로 삼는 법이다. 이제 우리는 변천하는 국제정세에 성급한 낙관을 해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지나친 비관을 할 필요도 없다. 오직 자주 · 자립 · 자위의 민족주체성을 더욱 굳게 가다듬어 강인한 민족으로서의 용기와 예지(叡智)를 발휘하여 오늘의 현실을 중흥과 약진의 계기로 만들어 나가야 하겠다.
- ‘광복절’ 경축사에서 (1971.8.15.)


나는 농민의 아들로 빈농(貧農)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우리 농민들이 얼마나 고생을 하고, 우리 농촌에 어떠한 어려운 문제가 있다는 것을 뼈에 사무칠 정도로 체험했기 때문에, 행정부에 들어와서 무엇보다도 우리 농촌의 부흥을 빨리 서둘러야 되겠다고 결심했다.
제6대 대통령선거 유세에서 (1967.4.18.)


나는 농촌 근대화의 관건(關鍵)이 우리 농어민들의 자조(自助) · 협동(協同) · 단결(團結)에 있다고 보고, 앞으로 ‘새마을가꾸기 운동’을 전국적으로 파급시켜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전국 시장 · 군수 비교행정회의 유시에서 (1971.9.17.)


나는 이제 우리 국민도 생각을 180도 달리 고쳤으면 한다. 우리 한국 하면 언제든지 극동의 한 모퉁이에 있는 조그마한 약소국(弱小國)이라는 과거의 열등의식(劣等意識)과 패배의식(敗北意識)에서 우리는 탈피해야 되겠다.
연두기자회견에서 (1973.1.12.)

나를 버려 겨레를 구하고, 목숨을 던져 조국을 수호하는 군인의 길, 그것은 정녕 한 인간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공헌인 것이다.
공군사관학교 졸업식 유시에서 (1965.2.24.)


나무를 심는 일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심은 나무를 아끼고 내 몸처럼 보호하여 잘 키워 나가는 일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다.
춘계조림사업 실시 담화문 (1967.4.5.)


남북간의 대화는 흩어진 가족을 찾아야겠다는 1천만 동포의 대화(對話)며, 전쟁의 참화를 방지하고 조국을 평화적으로 통해야 하겠다는 5천만 민족의 대화다.대통령 특별선언에서 (1972.10.17.)


남북대화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앞으로 회담과정에서도 그렇겠고, 특히 우리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평화통일을 성취하기까지에는 수많은 어려운 고비가 우리 앞에 가로놓여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하겠다. 남북간에는 아직까지도 많은 불신과 오해가 남아 있는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가 무엇보다도 먼저 노력해야 할 일은 서로의 불신을 없애고 오해를 푸는 일이다. 그렇게 해서 점차 쌍방이 상대편을 이해하도록 힘써 나가야 되겠다.
연두기자회견에서 (1973.1.12.)


남의 도움만을 바라는 자에게는 언제나 파멸의 비운이 기다릴 뿐이며, 스스로를 도우려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자립의 영광이 찾아온다.
- ‘원호의 달’ 담화문에서 (1966.6.1.)

내가 정권을 인수하였을 때의 솔직한 심경이란, 마치 “도둑 맞은 폐가(廢家)를 인수하였구나!”하는 심정 바로 그것이었다.
박정희 지음 『국가와 혁명과 나』에서 (1971.3.1.)


농업의 근대화를 추진함에 있어 가장 중요하고도 시급한 과제는 유능하고 근면한 농촌지도자의 양성, 그리고 농민의 생산적이고 과학적인 정신과 자세를 확립하는 일이다.
중앙4H클럽 경진대회 치사에서 (1966.11.29.)


농촌의 근대화 없이는 조국의 근대화를 기대할 수 없다.
농협중앙회 정기총회 치사에서 (1967.2.21.)


누구나 불가능하다고 체념해 버렸던 그 어려운 일들을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거뜬히 성취시켰고, “하면 된다.”는 인간의지의 승리를 역사 앞에 실증하였다. 10년 성장의 힘겨운 과정에서 우리는 드디어 잠자던 민족의 얼을 일깨우고, 묻혔던 민족의 저력을 개발한 것이다. 유구한 반만년 역사를 통틀어 이처럼 희망과 의욕과 자신과 긍지와 생명력이 생동한 때가 과연 몇 번이나 있었던가?
제7대 대통령후보 지명수락연설에서 (1971.3.17.)


대학은 민족의 양심과 지성(知性)을 보전(保全)하는 수원지(水源池)라고 볼 수 있다.
서울대학교 종합캠퍼스 기공식 치사에서 (1971.4.2.)

도시라고 새마을운동이 안될 것은 없다. 협동 · 근검 · 검약정신을 발휘해서 도시에서도 새마을운동이 될 수 있다. 새마을운동은 국가, 사회운동이다. 따라서 농촌뿐만 아니라 지식인 도시인 모두가 참여해야 한다.
연두기자회견에서 (1976.1.15.)


동서고금(東西古今)을 통하여 한 나라가 부강하고 융성 했을 때, 거기에는 언제나 심오(深奧) 한 학술과 찬란한 예술의 힘이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었다.
- 학술원상 · 예술원상 시상식 치사에서 (1966.7.17.)


먼 훗날 우리 후손들이 오늘을 사는 우리 세대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했고, 또 조국을 위해 어떤 일을 했느냐고 물을 때, 우리는 서슴지 않고 “조국 근대화(祖國近代化)의 신앙을 가지고 일하고, 또 일했다.”고 떳떳하게 대답할 수 있도록 하자.
연두교서중에서 (1967.1.17.)


모든 기업인들은 자기가 운영하는 기업체가 단순히 자기개인의 소유물이라는 관념을 떠나서, 국가와 민족의 기업체를 자기가 맡아서 경영하고 있다는 소위 기업의 윤리성(倫理性), 기업의 사회성(社會性)울 철저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근로자의 날’ 치사에서 (1970.3.10.)


모든 진보가 자유에 있음을 가르쳐 주는 투쟁과, 모든 국가지역(國家地域)의 번영의 균형을 촉진하는 투쟁, 이 두가지의 세계적 노력이 고조(高潮)될 때, 지구상에는 편협(偏狹)한 국가이익이나 독선 배타적(獨善 排他的)인 이데올로기의 고집이 필요치 않게 될 것이다. 그 때 만나야 할 사람들, 함께 살아야 할 사람들은 한 가정을 이룰 것이며, 지구상의 모든 민족이 사계가족(世界家族)으로서 협동과 사랑, 평화와 자유, 그리고 진보와 번영을 누리는 새로운 인류사(人類史)는 시작될 것이다.
방독시 베를린 공과대학에서의 연설에서 (1964.12.11.)

몸이 커지면 옷도 더 커져야 된다. 우리 나라의 산업과 경제도 커지기 때문에 철도도 더 놓아야 하고, 도로도 만들어야 되고, 있는 도로도 더 확장(擴張)을 해야 되고, 항만도 더 고쳐야 되고, 배도 더 있어야 되고, 기차도 더 있어야 된다. 그 밖에 공업에 필요한 공업용수(工業用水)라든지, 또 관광사업(觀光事業)까지 전부 같이 병행해서 종합개발해야 된다.
제6대 대통령선거 유세에서 (1967.4.18.)


문화(文化)와 예술(藝術)은 한 민족, 한 국가의 발전과 번영을 뒷받침하는 정신적 지주(支柱)이며, 국력신장(國力伸張)의 원동력이다.
- 개천예술제 치사에서 (1966.11.10.)


미래에 사는 현명한 민족에게는 실의(失意)가 있을 수 없고, 사명을 깨닫는 세대에게는 좌절이 있을 수 없다.
‘5·16 민족상’ 시상식 치사에서 (1970.5.16.)


민족 단위의 자존(自存)과 실리(實利)를 앞세우는 세계사의 조류와 복잡 다양하게 전개되는 극동정세의 추이는 이제 우리의 문제를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해 나가지 않으면 안될 자주, 자립, 자위의 결단과 역량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의 주체적인 역량, 우리의 자주적인 결단 없이 국제 정세가 이렇게 변한다고 해서 이렇게 따라가고, 저렇게 변한다고 저렇게 흔들리고, 좌고 우면(左顧 右眄). 우왕좌왕(右往左往)하는 외교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연두기자회견에서 (1972.1.11.)


민족과 국가는 영생(永生)하는 것이다. 특히 하나의 민족이라는 것은 영원한 생명체(生命體)다.
연두기자회견에서 (1973.1.12.)

민족의 생존권은 절대불가침의 천부적 권리(天賦的 權利)다. 그러나 이 권리는 결코 남이 지켜 주는 것이 아니며, 또한 지켜 줄 수도 없는 것이다. 자주 · 자조 · 협동의 정신이 바로 집단 안전보장의 기본이 된다는 것은 명백하다.
‘국군의 날’ 유시에서 (1973.10.1.)


민주사회의 본질은 한 마디로 ‘법의 지배’로 요약될 수 있다. 법은 질서를 유지하고 사회정의(社會正義)를 실현하는 치정(治政)의 지표(指標)며, 국민의 참다운 자유와 국리민복(國利民福)의 증진을 보장하는 사회의 행동기준(行動基準)이요, 방패인 것이다.
‘법의 날’ 치사에서 (1969.5.1.)


민주사회의 영웅이란 자기 고장의 발전을 위하여, 말 없이 묵묵히 피땀 흘려 일하는 인간상록수(人間常綠樹)들이다.
지방장관회의 유시에서 (1971.7.30.)


민주주의는 방종적인 자유가 아니라 자율적(自律的)인 자유이므로 민주주의로 이끄는 힘이 받아들여져야 한다
박정희 지음 『우리 민족의 나갈길』에서 (1962.2.)


민주주의는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되, 다수의 의사(意思)로 결정 짓는 것이며, 선의(善意)의 경쟁으로 국민의 심판을 묻되, 허위(虛位)와 중상(中傷)을 삼가야 하며, 또 민주주의 창달(暢達)되어야 하되, 이로 인하여 우리 고유의 윤리와 도덕이 파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민주주의에 대한 나의 기본관념이다.
국민투표 실시에 즈음한 특별담화문에서 (1969.10.10.)

부강한 나라와 빈궁한 나라가 상호의존의 협력관계에서 공영(共榮)을 이룩해야 한다는 것을 앞으로 인류가 그 평화를 위하여 지켜야 할 하나의 윤리(倫理)다. 그래서 나는 참된 자유, 참된 평화의 절대적인 기초조건으로서, 그리고 오늘을 사는 세계인민의 긴급한 공동과제로서 번영화 균형화(均衡化)를 제창해 왔다.
아시아 국회의원연맹총회 치사에서(1966.9.3.)


빈곤과 후진의 유산을 후손들에게 물려 주고 싶은 선조가 어디에 있겠는가? 우리가 이 악유산(惡遺産)을 다시는 후손들에게 물려 주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인내와 용기로써 오늘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조국의 근대화 작업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뿐이다.
개천절 경축사에서 (1965.10.3.)


사람이 자연을 잘 보호하면 자연도 사람을 잘 보호해 준다. 그러나 사람이 자연을 함부로 파괴하고 훼손하면 자연은 인간에 대해서 무서운 보복을 하는 것이다.연두기자회견에서 (1978.1.18.)


사회의 불의(不義)를 절차와 법에 의지하지 아니 하고, 시민의 감정으로 시정해 보겠다는 조급성(躁急性)은 또 새로운 불의를 가져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7대 국회의원총선 처리 특별담화문에서 (1967.6.16.)


산을 깍아 밭을 만들고, 바다를 막아 논을 만들고, 사막에 물을 대어 옥토(沃土)로 만들어 잘살고 있는 근면한 민족들의 본을 받자. 우리라고 못할 리가 어디 있겠는가?
연두교서에서 (1967.1.17.)


우리는 박정희 정신을 다시 배워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