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1년전...

나는 강릉대학교를 자퇴한 사회부적응자였다

일종의 활동적 히키코모리였기 때문에

끊임없이 외출을 하고, 걷고, 버스를 타고, 

때로는 등산하기도 하였는데,

그저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는 거였다

 

음험한 기운이 내 내면에 있었다.

나는 그 기운이 뭔지 말하기는 힘들지만,

혼자 폰에 야동을 챙겨서 야외 화장실, 공공시설의 화장실 등에서 열심히 딸딸이를 치러 다니기도 하였다.

바바리 계획을 세우기도 하였는데, 실행에 옮기기는 못했다.

알수없는 양심의 벽에 부딪혔다.

 

난 그 당시에 강릉 죽헌동의 오죽헌 앞의 저류지를 자주 걸었다

오래달리기를 하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기도 했다

 

그러다가 그냥 딱 1번 그 일이 있었다. 별일 아니었다

앞에서 어떤 아줌마가 지나갔다.

그때는 그냥 평범한 아줌마라고만 생각했다

근데 그게 어떤 시발점이 되었다.

 

예를들어,

부모가 죽은뒤 장례식에서 안 우는 자식을 봤는가?

ㅇㅇ 안 우는 자식도 있다

근데 그런 사람들은 1달뒤든 1년뒤든 나중에 슬픔이 몰려온다고 하더라

 

내가 그런 상황이었던가

뒤돌아 생각을 하면 할수록 그 아줌마는 가슴이 머리통 만큼 컸다는 확신이 들던 것이다.

 

옷차림은 시골집 아짐 같은데, 내가 그 당시 그 아줌마를 꼬셨더라면, 그 집에서 먹고 자고 싸며(똥오줌 외에도), 공무원 공부를 하여 지금쯤 연차가 오래쌓이고, 그 아줌마 외에도 젊은 여자를 사겨서 결혼에 이르렀을 것이다.

 

라는 환상인데, 내 나이는 점점 들어간다.

 

기억을 하면 할수록 그 젖은 탐스런 젖이었다.

지나치는 당시에는 몰랐는데...

 

이제는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다.

더 늦기 전에 왕참젖 아줌마를 누구라도 좋으니 꼬시고 싶다.

내 나이가 만으로 30을 향해가는데...

이제는 더 늦으면 젊은총각과 새엄마 플레이를 하기가 힘들어진다

 

전체 시간으로 봐도 나를 태어나게한 그 기억으로부터 11년이 지났다.

더이상은 견디기 힘들다.

 

내일은 쉬는날이다.

도심을 걸으며 아줌마를 탐색할 것이다.

가벼운 대화부터 시작하여, 말동무가 되고,

그 다음은 ... 흘러가는대로

 

사람에게는 1명의 친구가 필요하다는데,

그런 아줌마를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