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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째 이어져온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전시경제 체제에 익숙해진 러시아, 전쟁 종료시 그동안 누적돼온 각종 내부 불만 쏟아져나와 푸틴 체제 위협

전시경제 유지를 위해서는 전쟁을 끝낼 수 없는 상황에 놓인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연합뉸스
전시경제 유지를 위해서는 전쟁을 끝낼 수 없는 상황에 놓인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연합뉸스

[뉴스임팩트=최진우 전문기자] 러시아는 이미 평시 국가가 아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러시아 경제는 사실상 ‘전시경제(war economy)’ 체제로 전환됐다. 국방비는 급증했고, 민수산업의 상당 부분이 군수 생산에 직간접적으로 동원되고 있다. 전쟁은 더 이상 일시적 충돌이 아니라 러시아 국가 운영의 핵심 축이 된지 오래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러시아의 2024~2025년 국방 관련 지출은 연방 예산의 30%를 넘긴 것으로 추정된다. 유럽 국가들의 평균 국방비가 3% 미만인 점을 감안하면, 10배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이자 소련 붕괴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무기 생산, 탄약 보급, 병참 체계 유지에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며 철강·기계·화학 산업은 민간 수요보다 군 수요에 맞춰 재편되고 있다. 실업률은 낮아졌지만 이는 생산성이 높아진 결과라기보다는 전쟁 동원이 만든 착시 효과에 가깝다는 것이 군사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문제는 이 전시경제가 전쟁 없이 유지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군수 산업에 과도하게 의존한 경제 구조에서 전쟁이 멈출 경우 생산 과잉, 실업 증가, 재정 악화가 동시에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서방의 제재로 인해 민간 투자와 기술 유입이 막힌 상황에서 ‘전쟁 특수’가 사라지면 러시아 경제는 급격한 조정을 피하기 어렵다. 크렘린 입장에서는 전쟁을 끝내는 것이 곧 경제 위기의 시작이 될 수 있는 셈이다.

이러한 구조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체제의 정치적 한계와도 맞물려 있다. 푸틴 대통령은 2000년 집권 이후 총리와 대통령직을 오가며 사실상 26년 가까이 러시아를 지배해왔다. 장기집권 체제의 공통된 특징은 내부 개혁보다 외부 위협을 활용해 권력을 정당화한다는 점이다. 전쟁은 국민에게 ‘불편한 현실’을 설명하는 가장 손쉬운 수단이다.

권위주의 체제에서 전쟁은 단순한 군사행동이 아니라 강력한 정치 도구에 가깝다. 언론 통제, 반대 세력 탄압, 선거 관리 등 평시라면 비판받을 조치들이 ‘국가 안보’라는 명분 아래 정당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에서는 반전 발언이 범죄로 규정되고 수만 명이 체포되거나 국외로 탈출했다. 체제 유지에 전쟁이 유리한 구조가 굳어진 것이다.

러시아 국영 TV에 방영되고 있는 병사 모집 광고.
러시아 국영 TV에 방영되고 있는 병사 모집 광고. "남자라면 지원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연합뉴스

크렘린이 직면한 딜레마는 분명하다. 전쟁을 계속하면 국제적 고립과 인적·물적 손실이 누적되지만, 그렇다고 전쟁을 멈추면 체제 내부의 균열이 가시화된다는 것이다. “전쟁을 멈추는 순간 질문이 시작된다”는 말은 러시아 엘리트 사회에서 공공연하게 회자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왜 이렇게 많은 희생을 치렀는지, 무엇을 얻었는지, 그리고 다음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푸틴 체제는 이런 질문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러시아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 사회도 크게 변했다. 젊은 노동력은 전장으로 소모되거나 해외로 유출됐고, 중산층은 소비를 줄이며 생존 모드로 전환했다. 국가는 애국주의와 보조금을 앞세워 불만을 관리하지만,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해법은 아니다. 사회 전반에 군사화된 사고방식이 확산되며 전쟁은 일상이 되었고, 평화는 오히려 불안 요소로 인식되는 역설적인 상황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유럽이 우려하는 ‘제2의 우크라이나 전쟁’ 가능성은 단순한 음모론으로 치부할 사안이 아니다. 러시아가 또 다른 전쟁을 선택할 수 있는 이유는 공격성이 아니라 구조적 필요성에 가깝다. 전쟁이 체제를 지탱하는 버팀목이 된 순간, 평화는 선택지가 아니라 위협이 된다. 러시아가 왜 다시 전쟁을 필요로 하는지에 대한 답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