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째명은 더듬당 대표 시절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문제를 두고 누구보다도 강경한 언어와 입장을 표명 했다. 2023년 집회 현장에서는 “핵오염수라고 해서 고발을 한다고 하니까, 앞으로는 아예 핵폐수라고 불러야겠다”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단순한 우려 표명이 아니라, 공포적 선동을 통해 분노를 자극하는 표현이었다. 그는 일본의 오염수 방류를 “패악질”이라 불렀고, “제2의 태평양전쟁”이라는 말같지도 않은 말로 일본을 규탄했다. 이 정도의 수사는 외교적 비판의 범주를 훌쩍 넘어선다. 사실상 적대적 선동에 가까운 언어이다.

그런 인물이 이제는 대통령 자격으로 일본을 찾았고, 정상 간 회담이 열렸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문제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최소한 공개적으로는 그렇다. 이 대목에서 피할 수 없는 질문이 생긴다. 목숨을 걸 만큼 위험하다고 규정했던 사안이라면, 왜 가장 직접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자리에서는 침묵했는가.

사안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일본이 주장해 온 논리도, 국제기구의 검증 구도도, 방류 방식도 그대로다. 그럼에도 과거에는 단식 투쟁까지 감행하고 죽는 시늉까지 하며 ‘인류의 생존’을 거론하던 새끼가, 지금은 외교적 테이블 위에서 드럼이나 치고 자빠졌다. 이 모순을 설명하는 방법은 많지 않다. 그때의 위기가 과장이었거나, 지금의 침묵이 무책임이거나, 애초에 그 문제는 정치적으로 활용 가능한 카드였을 뿐이라는 해석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정치에서 '단식'은 가장 극단적인 메시지다. 말로 부족할 때, 타협할 수 없을 때 선택하는 행위다. 그런 선택을 정당화했던 언어가 “핵폐수”, “제2의 태평양전쟁”이었다면, 그 언어는 이후의 모든 행보에 족쇄가 된다. 그 족쇄를 스스로 풀기 위해 침묵을 택했다면, 남는 것은 일관성의 붕괴다.

지금 찢째명이 말하는 ‘실용 외교’는 그래서 시험대에 올랐다. 실용은 감정적 수사를 절제하는 태도에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과거의 과격한 언어는 국민을 호도하는 개수작에 불과하다. 실용을 위한 전략도 아니었고, 그저 선동을 위한 도구였을 뿐이다. 그래서 말이 극단적일수록, 이후의 침묵은 더 큰 의문을 남긴다. 어쨌거나 문제는 일본이 아니다. 오염수도 아니다. 한 정치인이 스스로 설정한 위기의 기준을, 필요에 따라 키우고 접을 수 있는가의 문제다. 그리고 그 기준이 국민의 불안 위에 세워졌다면, 그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ᆢ죽여야 돼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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