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중후반부터 노동자들의 파업은 유난히 많아졌다. 신문 지면에는 연일 어디 공장 파업, 저기 노조 파업 소식이 실렸고, 시위와 파업으로 인한 폭력적인 장면들이 사진과 함께 당연하다는 듯 실려 있었다.
그중에서도 운수업 파업은,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학교에 다녀야 했던 필자에게 유독 큰 시련이었다. 등교길이 막히는 날이면 이유도 모른 채 피해자가 되는 기분이 들곤 했다.
그 시절, 전교조 소속이던 몇몇 선생들이 수업 시간마다 끼어들어 목에 핏대를 세우며 하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우리 같은 서민들은 박봉에 시달려. 그런데 사업하는 놈들은 부를 축적하지. 노동자들은 큰 걸 바라는 게 아니야. 사장과 그 주변 놈들이 너무 많이 가져 처먹으니까, 우리한테도 좀 나눠 달라는 거야!!”

그래서인지 아직까지도 ‘나눠 먹자’라는 그 단어가 머릿속에 깊이 박혀 있다. 당시엔 그 말의 임팩트가 너무 강해서 자본주의니 사회주의니 공산주의니 아무것도 모른 채, 돈 가진 사람들은 다 욕심 많고 나쁜 존재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다 보니 그 선생의 말이 얼마나 단순하고 위험한 논리였는지를 알게 됐다. 물론 신안 염전 노예 사건처럼 노동자를 착취해 부를 쌓는 악질 사업자가 없는 건 아니다. 그런 인간들은 마땅히 처벌받아야 한다.

하지만 직접 사업을 해보니, 노동자의 입장만 생각해서는 가게가 당장 굴러가지 않는다. 수익은 떨어지고, 결국 사업자와 노동자 모두가 ‘노동 해방’과는 점점 더 멀어지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 균형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물가는 오르고, 정부 정책에 따라 노동 환경은 계속 바뀌고, 각종 세금과 제반 비용들이 복잡하게 얽힌다. 하루하루가 스트레스의 연속이다. 망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어깨에 짊어진 채 사업을 이어가는 사람들, 솔직히 대단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
2026년 1월 13일, 서울버스노동조합이 파업에 들어갔다. 새벽부터 직장인들은 혼잡 속에서 고통을 감수하며 발걸음을 재촉해야 했고, 개인적인 용무로 밖에 나가야 했던 사람들은 움직이는 한 축이 사라진 불편을 온몸으로 느껴야 했다. 대중교통 파업은 늘 그렇다. 몇 년에 한 번씩, 잊을 만하면 터지고, 시민들을 볼모로 삼아 불편을 강요한다.

그런데 살아오며 느낀 점이 하나 있다. 버스는 좋아졌지만, 서비스는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난폭 운전은 여전하고, 승객에 대한 예절은 개나 줘버린 기사들이 태반이다. 일본을 그렇게 욕하면서도, 정작 그 정도의 서비스 마인드는 적용하려 하지 않는다. 승객에 대한 배려나 친절은 뒷전이고, 파업은 오직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사용된다.
결국 “나눠 먹자”는 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게다가 이번 파업은 통상임금 문제까지 더해지며, 최대 20%에 가까운 임금 인상이 가능한 상황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최소한 이렇게는 말해야 하지 않을까.

“국가가 임금을 올려준 만큼, 우리도 유니폼을 제대로 입고, 모자를 쓰고, 승객에게 친절하고, 난폭 운전하지 않으며, 버스를 타려고 뛰어 오는 손님을 쌩까고 그냥 가버리는 짓은 하지 않겠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