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6.25 전쟁 요약했긴 했는데 너무 긴 전쟁이라 요약을 해도 장문이라 바쁜 사람은 읽지 않아도됨 )
한국군은 1948년 창설 . 사실상 "군대" 라기 보다는 "경찰 예비대 / 경비대 " 수준 이였음 . 무장 상태도 전방부대만 미군 M1개런드 소총을 휴대했고
후방은 일본군 38년식 , 99년식 소총으로 무장함 . 전차는 당연 없었고 포병도 6개 대대 밖에 없었음 . 이것도 미군이 주고간 구식 105mm 소형 견인포
그것도 전방부대 포병대대만 미군무기 썼고 후방부대는 일본군이 두고간 구형대포 사용함 .
그래서 김일성이 " 이 전쟁 한달이면 끝난다 " 라고 호언장담 했던 것
하지만 경찰 예비대 , 경비대 수준이였던 한국군이 생각보다 게릴라 전술에 능통했음 . 거의 대부분이 가난한 시골출신이라 그런지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일 수 있었고 민첩하고 운동신경이 좋았고 밤에도 불빛 없이 맨눈으로 야간기동 , 야간매복공격에 능통해서 이때 북한군이 당황할 정도
미군도 한국전쟁 발발 이후 발빠르고 UN군 소집해서 한국을 도와줌 ( 도와준 명분은 여러가지지만 6.25 전쟁 이전 중화민국이 공산당에 무너지는걸
방관하던 미국이 동맹국들 사이에서 신뢰를 잃었음 " 미국은 자국 이익이 아니면 동맹국을 도와주지 않는다 " 라는 여론이 생겼고 미국도 이런 공산주의의
도미노 현상을 지켜만 볼 수 없어서 발 빠르게 UN군을 소입해서 민주주의 , 자본주의 단합을 결성하고 참전한 것 미국이 전쟁을 유도했다라는건 개소리임 )
하여간 미군은 북한군을 과소평가 했음 . 주일미군 제24사단에서 1개 연대를 파견함
( 사실 이때 미국에서는 동양인 인종차별이 심해서 백인 1명이 동양인 1,000명을 죽일 수 있다 라는 망상이 있었음 )
하지만 한국전쟁에 파견나간 주일미군 1개 연대가 괴멸함 ... 이때 부터 미국이 심각성 느끼고 대규모 군대를 소집해서 한국전쟁에 진지하게 참여함 .
그렇게 인민군은 쉽게 밀림 ... 생각보다 엄청 쉽게 밀림 .... 이 당시 미군 사상자는 1만명 미만 이였음 ... 반대로 북한군은 사상자만 20만명이 넘음 ....
당연히 맥아더는 " 다 끝난 전쟁이다 " 라고 생각함 . 그래서 중공군이 참전 했다는 사실을 여러 보고 받았음에도
" 걔네들 어차피 북한군 처럼 우리한테 대패 할거임 . 우린 백인이고 걔네는 동양인임 " 이런 인종적 무시 , 선입견이 커서 중공군 무시함 .
하지만 물량빨에 장사 없다고 미8군 서부전선이 먼저 깨지고 그리고 동부전선 미10군이 깨짐 .
사실상 방어축선을 만들면서 북진해야 하는데 맥아더는 " 아시아인에게 그렇게 인력낭비 할 필요 없다 " 라는 무시가 있어서 그런거 없이 북진만 하다가
전방부대가 꺠지니까 전부 38도선 이남으로 철수함 . 이때 부터 아시아인에 대한 선입견을 바꾸고 중공군에 대한 경각심이 생김 .
그래서 1951년 부터는 미군이 중공군 상대로 밀리지 않음 . 사실상 단 한번도 미군은 1951년 부터 중공군한테 밀린적이 없음 .
다만 ... 아직 제대로 된 전술경험이 없는 한국군은 중공군에게 쉽게 밀림 .... 물론 한국군은 단독으로 포병부대를 운영하고 공군부대를 운영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군 보다 화력지원이 약해서 밀린것도 있긴 함 . 하여간 펑더화이도 한국군이 약점이라고 생각해서 한국군만 공격함 .
그래서 미군이 이때 부터 한국군 재교육 시킴 ( 사실 한국군은 이때 부터 만들어졌다고 보는게 맞음 . 그 이전 까지는 경찰 예비대 , 경비대 수준 이였음 )
그리고 중공군이랑 계속 전투 하다 보니까 한국군도 전투경험 , 전술경험이 쌓이면서 중공군이랑 대등하게 싸우고 1950년 6개의 포병대대에서
1953년이 되면 19개의 포병연대가 만들어짐 . 또 한국군 최초 공군기 17대를 운영함 . 즉 미군의 지원 없이 단독으로 포병화력 , 공중화력 사용 가능해짐 .
그래서 이승만이 휴전 반대한 이유가 이제는 미군의 화력지원 없이도 단독으로 중공군이랑 싸울수 있어서 이 화력으로 평양 , 원산 까지 진군하는게
목표였음 . 하지만 그 포탄과 물자는 미국이 지원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까먹고 말이지 ...
1951년 7월 휴전회담이 진행되어 모든 전선에 대규모 공세작전은 일시 중단 했지만 1951년 10월 휴전회담이 무산 되면서 또 여러차례
대규모 공세작전이 일어남 . 하지만 이때 연합군은 북진이 아니라 대규모 항공폭격만 사용했고 반대로 중공군은 대규모 공세작전을 함 .
근데 이제는 한국군이 좇밥 군대가 아니라서 중공군 대규모 공세에 전혀 밀리지 않고 또 24시간 미공군이 북한 전 지역을 폭격하니까
보급도 안되고 병력증원도 안되서 중공군도 대규모 공세작전을 제대로 못함 ... 그래서 이때 부터 소련공군이 등장함 .
하지만 소련도 미국과 전쟁을 원하지 않아서 인민군 복장을 입고 싸움 그리고 소련 공군은 자신들의 정체가 들통나지 않기 위해 작전구역도
평양 , 원산 밑으로는 절대 내려가지 않음 . 하여간 이런식으로 전쟁이 장기화 되다가 1953년 3월 스탈린이 죽음 .
사실 스탈린은 한국전쟁이 장기화로 진행되면서 외교적으로 많이 악이용 했는데 그런 총책임자가 죽어버리니까 한국전쟁이 계속 진행될 이유가 없는거임 .
그래서 1953년 4월 ~ 5월 부터 모든 전선에 대규모 공세작전과 항공폭격을 중단함 . 당연히 이승만은 개빡쳐하고 있었음 .
그렇게 1953년 6월 휴전회담이 합의가 될 쯤 이승만이 반대하며 단독으로 반공포로 석방함 ... ( 사실 이때 부터 이승만에 대해서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아짐 )
만약 이승만이 단독으로 반공포로 석방을 하지 않았다면 금성전투는 발생하지 않았고 금성지구 영토도 뺏기지 않았고 죄 없는 국군희생도 없었을꺼다
라는 얘기도 많이 나옴 ... 왜냐면 4월 ~ 5월 모든 공세작전 , 항공폭격이 중단 되면서 이때 중공군이 화력무장 , 병력무장 엄청 보강했었거든 ....
하여건 금성전투 때문에 미국이 빡쳐서 이승만만 빼고 중국 / 북한 / 미국 이렇게 3개 국가가 휴전회담에 합의함 이게 6.25 전쟁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