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❶ ‘중국사’에 있어서 씨족권력은 두 가지 패턴이다. 다수파는 중국의 현재 지배권력은 1당독재를 이루는 부족연합형태다. 소수파는 이들에 말리는 부족집단으로 ‘왕’에 충성을 바치는 1인 독재 형태로 이루어지는 부족집단이다.
- 유신체제는 소수파의 지배권력 양식.
- 김대중체제는 다수파의 지배권력 양식을 취한다.
❷ 유신체제는 70년대 인플레이션 상황을 맞이하여, 저가 상품 수출을 위해서 정부가 기업의 원가관리 위해서 개입했다. 기업에 정부개입, 국방의 1인 위주, 법치의 1인 위주로 나아갔다.
이 시스템은 논리적으로 대한민국의 지배방식을 부족국가와 동일시하고, 또 1인 권력의 존속이 시스템 안정을 전제한다. 즉, 1인 권력의 법외의 초월지대를 만들고, 그에 연결된 중국식 어둠의 잇권 지대를 표현한다.
미국 민주당과 독일 사회민주당의 지원을 받은 김대중 민주당은, 전두환 민주정의당 유신체제를 붕괴시키는 데 성공했다. 유신체제는 왕 중심주의의 권위주의로서 불법행위로 정의하고, 이들의 꼭지점을 사법처리하여 붕괴시켰다.
❸ 김대중체제의 경제발전은 거의 전부 영역이 부동산 부채공화국 통한 발전이다. 유신체제의 영남지역의 임금관점인 성리학적 임금관점이 아니라, 전라도지역에 무속신앙이 끼인 영웅이 권력을 쟁취한다는 관점으로 바뀌었다. (한마디로, 정감록 신앙에 깔린 진인 정도령신앙은 심플하게 논하면 중국소설 『수호지』의 영웅인식과 유사하다.) 유신체제가 중국문명 씨족권력 소수파 지배질서였던 것 반해서, 김대중체제는 중국문명 씨족권력 다수파 지배질서(일당독재 형태)를 취한다.
각 지역에서 김대중파벌이거나 광의로는 동학 양반집단에 속한 귀족들이, 정부와 지방자치제 공신력을 이용하여 일반인들에게 ‘주택담보대출 부채 레버리지’ 투자를 유도한다. 그리고, 이는 엄청난 공급과잉으로 ‘일반인’에 투자 실수로 손해를 유발해왔다. 또, 삼권분립이 1당 중심으로 와해된 질서에서 투자손해본 국민들은 울분을 삼켜 왔다. 이 상황에서 자본시장 붕괴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은 정부부채로 붕괴한 납세자를, 벌어서 갚도록 구제하는 일이 있었고, 그로 인해서 일본의 정부재정은 망가졌다. 경제위기로 자본시장 붕괴 이후에는 일본의 부동산 버블 붕괴 때에 했던 처방이 불가능해진다.
유신체제가 1인 권력의 성역화를 주장하며 권력이 존속하듯이,(합종연횡에서 연횡을 휘두르는 권력의 존속방법)
김대중체제는 빅텐트, 대동세상, 대동단결, 좌우연합, 중도, 중용, 조화, 균형, 상생, 화해, 등 합종연횡에서 집단부족연합의 성역화를 주장하며 권력이 존속했다. (합종연횡에서 ‘합종’을 휘두르는 권력의 존속방법)
❹ 유신체제의 권위주의의 존속은 1인 권력이 사법처리를 당하지 않으면서 존속된다.
부동산 부채공화국 발 노동윤리 개판이자, 사회윤리와 가정윤리 붕괴가 되는 김대중체제의 존속은 1당 권력의 본질이 사법처리에 안당하는 전제로 존속한다.
한국정치사에서 민주주의의 왜곡은 왜곡의 정점이 자신들이 예외를 인정받기 위함으로 나타났다. 이 부분이 인정되면 안된다.
영남의 교회가 유신체제 지도자에 아니오! 안한점을 호남의 교회는 국제사회에 고자질해서 영남교회를 망신을 준 바 있다. 지금은, 1930년대 히틀러 파시즘 때의 1당독재 질서의 붕어빵식 복원이다. 여기에, 호남의 교회가 한 곳도 아니오!를 안하고 있다.
중국문명 소수파 씨족권력 지배질서에 들러리 역할을 한 바를 질책한 호남의 교회는, 중국문명 다수파 씨족권력에 지배질서의 더 강력한 들러리 역할의 罪惡에 빠졌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로 계약한 법질서에서 1인독재는 헌법 위반이다. 1당독재는 더더욱 헌법 위반이다. 기독교신앙으로는 르호보암의 길의 왜곡이다. 호남 사람들은 ‘르호보암’아니라 무당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실은, 그게 그거요 같은 표현이다.
❺. 일당독재 권력에서 최고지도자는 ‘바지저고리’다. 이재명은 따라서 지금의 지배체제는 언제나 버릴 수 있는 상황이다. 씨족중심의 일당독재 권력은 언제나 씨족은 정의의 보호자이고, 외부만이 불의다. 이런 식으로 내부의 왜곡을 은폐하러, 미국 탓하거나, 중국, 일본 등 한국과 교류하는 다양한 외부의 국가를 거론할 것이 유력하게 예측된다.
이는 한가지 근본문제를 감춘다.
부동산 부채공화국을 만드는 데 역할한 김대중의 대중참여경제학(천도교경제학)이다. 천도교 이념은 원불교 증산교(대순진리교)등의 사람들이, 마치 개신교에서 장로교와 감리교 침례교 소통처럼 이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쟁점에서 배제하려 하는 것이다.
유신체제가 군사정권 고문수사 공권력 남용을 의제에서 감추었다. 그런데, 김대중체제는 경제왜곡의 심장이며, 전라도 동학교단 중심부가 피해갈 수 없는 책임의 주체임을 드러내는 의미를 드러낼 수 밖에 없는, 김대중의 대중참여경제론을 의제에서 감춘다.
영어권 진보는 오랫동안 백인보수귀족에 혐오감이 있고, 이분들의 지론은 꼭 영어권 보수세력의 경제원론 교과서 따라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분들의 후원을 받고 나타난 김대중의 대중참여경제론은 최악의 문제를 야기했다. 이분들의 맥락은 영어권 경제유튜브를 보면 오해하기가 불가능하다. 영어권 로마문명 배경으로, 백인보수와 사상전선이 있는 쪽에 메어 있고, 이분들의 세계관에서 천도교, 원불교, 증산교는 상상을 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국민은 헌법 10조, 11조, 12조(독일기본법 1,2,3조와 같음)으로 공정하게 대접받지 못하고, 천도교에 깔린 동학농민운동에서 민란을 일으킬 때 성공하면 지배자 덕분, 박살나면 모든 책임을 전가당하는 불공정한 상황에 있음과, 그 억울함을 논하려면 ‘김대중대중참여경제학’이 대체 경제학을 논할 때, 인류학-종교사회학-문화사회학적으로 정말 무엇이었나는 논쟁이 필요하다.
❻.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주의의 재인식이 필요하다. 조상숭배 문화는 자신의 씨족적 자아에 갇혀서, 새로운 문화 수용에 둔감하고, 또 새로운 세대 문화 수용에 더디다. 1인독재이든 1당독재 이든 결국은 조상숭배 문화를 통하여, 자유민주사회에서는 불법한 권력집중을 주장하는 것이다. 1987년 이후 등장한 학술문화운동에 준하는 그러한 움직임이 필요하다. 결국, 중국문명 농민신앙에 빠지도록 정치권력이 유도한 것에 말린 것이 부동산 부채공화국의 기원이면, 기독교신앙이거나 근대 계몽주의의 빛으로서 지식 계몽의 재운동화가 중요하다.
❼. 중국문명 씨족권력의 소수파 질서였던 유신체제는 임금 충성 이야기하고, 민생 이야기를 안했다. 김대중체제인 중국문명 다수파 씨족질서는 일당독재와 연결된 저학력 노인층의 농민신앙을 통한 朋黨과 얽힌 문화를 이야기하고, 정말 민생 이야기를 안했다.
❽. 한국교회는 더 이상 기독교인을 동학권력의 꼭두각시나 눈가림용에 존속되면 안된다. 이재명을 기독교인이라고 부르는 문제는, 한국교회가 ‘신앙이 죽은 교회’가 많다는 것의 대외적 표현일 수 있다고 본다.
❾ 자유진영에서 경제학은 기독교신앙-정치-경제-사회-문화-법치가 모두 연결돼 있다. 그러나, “크리스천투데이”같은 이재명을 기독교인이라고 보는 매체와 교회출석의 70대 이상의 정서에서는, 기독교인으로서 열매 파악 없이 출석만으로 기독교인으로 보는 씨족적 정서로 보고 있다. 이래서는 안된다.
❿ 유신체제 경제학의 문제는 충성/반역 문제에 깔린 1인 권력 성역에 의한 시스템 문제와 같고, 이를 공론화시켜서 극복했다면, 김대중체제는 1당독재와 연결된 부족연합 질서에 깔린 <집단성역>문제와 같다. 경제문제와 긴밀히 연결된다. 이를 덮어주는 이들은 기독교인이 아니고, 기독교인으로 불려서도 안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