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과 잡범 찢째명이 “국민의 집단지성은 언제나 가장 현명한 해답을 찾아낸다”는 말을 꺼냈고, 생중계된 업무보고 과정에서 실시간 댓글을 통해 삐뚤어진 공직자를 국민들이 참교육 해 바로잡았다는 사례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언뜻 보면 투명성과 민주주의의 확장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발언을 곰곰이 들여다보면, 집단지성이라는 개념을 학문적 의미가 아닌 정치적 수사로 등판시켰다는 점에서 굉장히 위험한 발언이라 생각된다.

!!ᆢ한마디로 인민재판 하겠단거야ᆢ!!
집단지성은 독립된 개인들의 다양한 판단이 숙의와 검증을 거쳐 제도 속으로 흡수될 때 성립한다. 반대로 여론의 즉각적 반응, 실시간 댓글, 공개적 압박은 집단지성이 아니라 '군중심리'로 쉽게 변질된다. 공직자가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여론의 파도나 댓글의 소음이 아니라 법과 책임이다. 여론은 언제든 왜곡될 수 있고, 다수의 횡포는 언제든 폭력으로 돌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중계와 댓글이 제도적 숙의 없이 결합될 경우, 그것은 투명성이 아니라 공개 압박이 되고, 책임 행정이 아니라 눈치 행정이 된다. 특히 권력이 ‘국민의 집단지성’을 반복해서 호명할 때, 그 말은 존중이 아니라 동원의 언어가 되기 쉽다.

좌파 포퓰리즘이 즐겨 쓰는 방식도 늘 같다. 도덕적 우월성을 선언하고, 다수의 이름을 빌려 제도를 압박하며, 반대 의견을 ‘국민 뜻에 반하는 세력’으로 낙인찍는다. 이 과정에서 법과 절차는 뒷전으로 밀리고, 여론이 재판관처럼 군림한다. 인민재판이라는 말이 괜히 역사 속에서 반복된 것이 아니다. 진짜 집단지성은 권력이 위에서 선언한다고 생기지 않는다. 권력 밖에서 자라나고, 권력은 그것을 겸허히 참고할 뿐이다. 법과 제도를 건너뛰어 여론과 분노를 통치 수단으로 삼는 순간, 민주주의는 광장 정치로 후퇴한다. 그리고 광장은 언제나 가장 큰 목소리를 가진 쪽이 이긴다. 집단지성을 말하기 전에, 그 말을 입에 올릴 자격이 무엇인지부터 되묻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ᆢ개딸ㆍ영포티가 홍위병이 되는 거야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