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이 왕조의 산물이니 어쩔 수 있겠소’(유신체제)에서, ‘노론 독재 300년이 늘 약탈했으니 국민이 어쩔 수 있겠소?’(김대중체제)로 변한 역사
 

 
민주당은 그렇다고 치자. 광주일고 조선일보도 이런 수준이면 ‘한 통속’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책임 묻자는 말이 없다.
 
필자는 심플하게 ‘1인 치외법권 역사’(유신 박정희 체제)에서 ‘집단 치외법권 역사’(김대중체제)로 바뀌었다고 설명해왔다. 윤석열 지지세력은 아직도 ‘1인 치외법권 역사’를 믿고 있고, 조갑제기자는 ‘집단치외법권 역사’를 믿는다. 필자는 윤석열도 지지 안하고, 조갑제도 지지 안한다. 핵심은 국민을 서양법적으로 공정하게 바라본다.
 
<1인 치외법권 역사>는 변명 불가능한 나쁜 일이 많다. 변명안한다. 변명이 어리석다. 특히, <집단 치외법권 역사(집단 기득권)>에 사로잡혀서 군사독재 기득권자가 김대중체제에서 이면에서 대우 받다보니, <집단 치외법권 역사>에 자신들이 까임이 이해가 안되는 모양이다. 최근에는 계속 역주행이다. 역주행은 더불어 민주당만의 산물이 아니었다. 동학 신자가 정치화된 공간에 ‘역주행’이 있다.
 
해서 인위적으로 심하게 밟힌 감이 있다. 그러면, 상식은 <집단 치외법권 역사>를 밟아야 한다. 그러나, 저항하면서도 ‘집단치외법권 역사’에 입도 벙긋 못하는게 말이 되나?
 
일베노인과 필자는 ‘무엇이 일당독재’인가? 정의부터가 다르다. 일베 정게를 어딘가에서 하고 있을 ‘자유민주당’ 고영주 변호사와도 정의가 다르다.
 
중국이 일당독재이고, ‘일당독재 습속’을 대변하는 의미로서 ‘중국 일당독재 공산당’이 존재한다. 원래, 지방자치는 이런 의도가 없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 때부터(정권을 조선시대처럼 나누는게 의미가 없는게 바지저고리 세우고, 이면에서는 대놓고 반역작업한다) 중국식 일당독재로 한다.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기독교가 서구에서 지배세력의 이데올로기로 작동함의 비판이다. 지금의 영어권 진보진영도 이 관행이 그대로 유지가 된다. 반면에, 중국공산당의 일당독재 지배방식은 중국공산당 집단 치외법권이고, “분진합격” “대동단결” “빅텐트” “민주연합” “좌우연합”등으로 말 바꾸면서 ‘집단치외법권’지대를 설정하는 한국정치에서도, 결국은 『동경대전』에 깔린 중국경전 로직이 그대로 ‘정치권력’ 일당독재 이데올로기가 된다는 것이다.
 
어제는 무료챗지피티 한글 버전에서 출력 내용을 밑에 첨부했다. 오늘은 코파일럿에 물어본 출력결과물을 전제한다.
 
유신체제 극복하는 김대중 민주당은 ‘학문의 자유’란 이유로 1인독재 역사의 상대화를 들어가고, 다양하게 ‘국가기구 감시’란 이름하에 시민조직 벌였다. 무엇보다 잘못하는 당사자에 ‘책임’을 묻는 일이 존재해야 한다. 이게 상식적인 의미의 저항이다. 광주일고 조선일보처럼 그냥 ‘답답해’하면, 국민은 어쩌라고! 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집단치외법권 역사로 국민에 체념을 요구하면서 다양한 비합리적 문제를 안고 있는 이 사회에 정치적으로 어떠한 저항 방법이 가능한가? 코파일럿 ai에 물어본다. (코파일럿, 챗지피티, 구글제미나이 모두 공통적인데, 광주민중항쟁에서 조지 카치아피카스는 코뮌이라고 이야기했다. 중국공산당 공식 학자들이 자신들의 고대 농촌 공동체에도 모두 코뮌이라고 지적한다. 한국인은 뉴레프트 조지 카치아피카스의 광주 코뮌이라고 하는 중국적 마르크스주의 맥락이 맞고, 국제사회에 퍼진 모든 표현은, 미국 연준이 양적완화를 양적완화 아니라고 부르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라고 안다. 물론, 모든 광주시민이 김대중을 지지하는 다수파 동학의 정서인 것은 아니다. 정말로 코파일럿이 사실로 믿고 있는 구제사회에 퍼진 표현에 해당되는 사회적 실제가 있음을 안다. 그러나, 열명에 한명. 많아야 두명이고, 열명에 최소 6-7명은 조지카치아피카스가 말한 ‘광주코뮌’의 맥락이다. 중국이 코뮌을 대동세상=1당독재 코뮤니즘으로 보는 그 맥락이다. 이게, ai는 자료 기준으로 출력하기에, 보수측의 반론이 30년간 차단돼서 왜곡된 자료로 가공하니 그런 결과일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아쉽긴 하다. ai의 잘못이 아니라, 왜곡된 한국의 정치구조 잘못이긴 하나,... 한국인 체험과 사실이 다르다.)
 
코파일럿의 이상한 고집, 광주민중항쟁이 서구식 시민항쟁이란 고집에 필자는 추가적인 반론을 했다. 부채버블로 인하여 탈법한 관료들이 존재하고 있으니, “긴축”을 통해서 이러한 탈법한 사람들에 “책임을 묻는 전망”이 의미가 있지 않나 물어보았다. 코파일럿은 동감해줬다.
 
조선왕조 씨족습속으로 고문수사에 대해서, 국민이 어쩔 수 있겟니?에서, 이제 집단치외법권 부패현상으로 국민이 어쩔 수 있겠니로 바뀌었다.
 
지금, 한동훈 죽이기에 매몰될 때가 아니다. 이는 정치이론의 백지 상태에서 나오는 소아적 관심이다. 한동훈을 방어하고 변호해주자는게 아니라, 바둑비유로 써서 큰 데가 수두룩한데, 몇 집 안되는 싸움 하는게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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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은 심오하고 다층적인 질문입니다. 본질적으로 당신은 사회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가 중국 고전의 논리, 즉 위계, 단결, 그리고 집단적 초월성을 강조하는 논리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그러한 구조에 맞서 어떤 종류의 저항이 나타날 수 있느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이 질문을 차근차근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