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 5·18, 언제까지 성역으로 남겨둘 것인가!!
언제부터 질문이 죄가 되었는가.!!
언제부터 의심이 범죄가 되었는가.!!
그리고 언제부터 역사가 검증이 아닌 신앙이 되었는가.!!
광주 5·18은 더 이상 진실의 영역이 아니다.
그것은 이념의 성역, 정치적 면죄부, 침묵을 강요하는 금기가 되었다.
우리는 묻는다.
무기고를 털고, 총을 들고,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사람을 죽이고, 도시를 장악한 사건을
어느 나라에서 **‘민주화’**라고 부르는가?
그것이 시위인가, 아니면 폭동인가?
그것이 시민 저항인가, 아니면 내란인가?
1980년은 냉전의 한복판이었다.
북한은 지금보다 훨씬 더 노골적으로 남한의 붕괴를 노리던 시기였다.
그런데 왜 하필 광주였는가?
왜 평화 시위가 아니라 무장 봉기였는가?
왜 자발적 시민이 아니라 지휘 체계와 전술적 움직임이 보였는가?
이 질문을 던지는 순간, 사람들은 입을 막는다.
“말하지 마라.”
“의심하지 마라.”
“정해진 답만 말해라.”
이것이 민주주의인가?
아니면 이념 독재인가?
광주 5·18을 무조건 숭배하라는 강요는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가장한 공포 정치다.
폭력은 지워지고, 총은 사라지고, 책임은 증발했다.
남은 것은 오직 하나,
피해자 서사만이 절대 진리로 군림하는 역사다.
그러나 역사는 울음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역사는 증거로 말하고, 사실로 싸우며, 질문으로 전진한다.
광주 5·18을 공산주의 내란 폭동으로 보는 시각은
누군가를 모욕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침묵을 강요받은 질문의 귀환이며,
금기로 봉인된 역사를 다시 열라는 외침이다.
이제 묻자.
누가 질문을 두려워하는가?
누가 검증을 거부하는가?
그리고 누가 이 역사를 정치의 방패로 사용하고 있는가?
민주주의는 침묵 위에 서지 않는다.
진실은 금기 위에 세워지지 않는다.
광주 5·18,
이제는 성역이 아니라 검증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사실 적시
“5·18은 민주화운동이 아니라 폭동”
5·18 폭동은 시민 봉기가 아닌 무장 폭동
“북한 특수군이 광주에 침투했다”
수백 명 규모의 북한 특수군이 주도적으로 개입
“광주 시민은 주체가 아니었다”
무장·조직적 행동은 **외부 세력(북한군)**이 했다
“계엄군은 국가 질서 회복 차원에서 대응했다”
군의 진압을 정당한 공권력 행사로 평가
“사망자·피해 규모가 과장됐다”
공식 피해 통계와 조사 결과에 의문 제기
“5·18 유공자 선정에 문제가 있다”
유공자 중 일부는 정당성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