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말과 품격(品格)
- 조광형 기자
- 뉴데일리 2025-12-20
- 탈무드(Talmud)에 나오는 유명한 우화다. 어느 날 한 랍비가 하인에게 비싸도 좋으니 시장에 가서
- 가장 맛있는 것을 사오라고 했다. 이에 하인은 '혀'를 사왔다.
다음날 랍비는 같은 하인에게 이번엔 맛은 상관없으니 가장 싼 걸 사오라고 했다. 그랬더니 하인은 또 '혀'를 사왔다.
이유를 물어보니, 하인은 "혀는 사용하기에 따라 가장 귀한 것이 될 수 있고, 가장 천한 것이 될 수도 있다"고 답했다.
이 현명한 하인의 말처럼, 사람의 부드러운 입술 속에 숨겨진 혀는 세 치 남짓한 크기에 불과하나, - 엄청난 위력을 갖고 있다. 이 작은 혀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기도 하고, 불행을 가져오기도 한다.
- 세 치 혀에 의해 우리 삶의 방향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말은 마음의 소리(言爲心聲)다. 사람의 속내가 얼굴 표정에서도 엿보이지만 직접적으로 표출되는 건 결국 말이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업무보고에서 각 기관장들에게 했던 '말'이 화제가 되고 있다. - 이학재 인천공항공사 사장에게 "100달러짜리를 책갈피로 끼워 해외 밀반출이 가능하냐"고 질문을 던진 이 대통령은
- "저희는 주로 유해 물질을 검색한다"며 "업무 소관은 다르지만, 그런 것을 이번에도 적발해 세관에 넘겼다"는 답변이
- 끝나기가 무섭게 "말이 참 기십니다. 가능하냐, 안 하냐를 묻는데 자꾸 옆으로 샙니다"라고 쏘아 붙였다.
그러면서 답변 자료를 보려는 이 사장에게 "써준 것만 읽지 마시라" "지금 다른 데 가서 노시냐"고 빈정댔다.
또한 입찰 공고도 안 나온 '이집트 공항'과 관련된 질문을 하면서 "임기가 3년씩이나 됐는데 업무 파악을 정확하게 하고 있지 않은 느낌"이라고 질책하기도 했다.
이후 이 사장이 SNS 등을 통해 당시 상황을 해명하는 입장을 밝히자, 이 대통령은 "업무보고는 정치적 논쟁의 자리가 아닌데, - 왜 그런 것을 악용하느냐. 이런 사람은 어떤 공직도 맡아선 안 된다"며
- "권한은 누리면서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것은 그야말로 도둑놈 심보"라고 비난했다.
이 대통령은 "특정 개인의 문제라고 하기는 어렵고, 하나의 풍토 문제"라고 설명했지만, - 사실상 이 사장을 겨냥한 경고성 메시지란 해석이 짙다.
이 대통령이 동북아역사재단 업무보고에서 했던 말도 화제가 됐다. - 이 대통령은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에게 '환빠(환단고기 추종자)'와 '환단고기'에 대해 알고 있는지를 물으며
- "동북아역사재단은 고대 역사 연구를 안 하느냐"고 추궁했다.
이에 박 이사장이 "소위 재야 사학자들보다는 전문 연구자들의 이론이 주장이 훨씬 더 설득력 있다"고 답하자, - 이 대통령은 "증거가 없는 건 역사가 아니다?
- 사료가 물리적 증거를 말하는 건지, 역사적 문헌에 있는 걸 증거라고 하는 건지는 논쟁거리"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기관장을 문책할 수는 있다. - 그러나 이번 업무보고는 생중계로 진행돼 전 국민이 실시간으로 시청했다.
- 답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말을 자르고 "말이 길다" "써준 것만 읽지 말라"고 기관장들에게 면박을 주는 건
- 바람직하지 않다.
- 공직사회에 불필요한 긴장감을 조성할 수 있고, '공개 망신'으로 자존심이 긁힌 이들의 반발심만 키울 소지가 다분하다.
모든 리더는 비난과 비판의 유혹에 직면한다. - 일단 눈에 보이는 흠집을 지적하고 질타하면 가시적인 성과는 거둘 수 있다.
- 실제로 생중계된 업무보고를 보며 '넷플릭스보다 더 재미있다' '통쾌하다'는 온라인 반응도 나왔다.
- 일단 가려운 부분을 긁고 도려내면 시원해 보일 순 있다.
- 하지만 함부로 건드리면 상처가 더 벌어지고 곪아 터지는 부작용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한때 사람들을 비난하기 좋아했다. - 젊은 시절 종종 주변 사람들을 비판했던 그는 특정인을 조롱하는 편지나 시를 써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가에 놓아두기도 했다.
1842년 가을 링컨은 제임스 쉴즈라는 아일랜드 출신의 정치인을 조롱하는 글을 '스피링필드 저널'에 기고했다. - 이 일로 화가 난 쉴즈는 링컨에게 결투를 신청했고, 싸움을 못 하는 링컨은 졸지에 목숨 건 결투를 해야하는 위기에 처했다.
- 다행히 제3자의 중재로 위기를 모면한 링컨은 다시는 남을 조롱하는 글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링컨은 남북전쟁 당시 참패를 거듭하던 미드 장군에게 "장군이 효율적으로 부대를 통솔할 수 있을지에 대해 자신이 없다"는 - 질책성 편지를 썼다.
- 그러나 링컨은 이 편지를 부치지 않고 평생 자신의 서랍 속에 넣어 뒀다. 이 편지는 링컨 사후에 발견됐다.
미 대통령 경선 당시 링컨을 "털빠진 원숭이"라고 놀리던 스탠턴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 그는 대통령 후보 경합을 벌이면서도 미국 전역을 돌며 링컨에 대한 독설을 서슴지 않았다.
- 나중에 대통령에 당선된 링컨은 주위의 만류에도 "그만한 적임자가 없다"며 스탠턴을 국방장관으로 임명했다.
훗날 국방장관을 역임하며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끈 스탠턴은 링컨이 암살당했을 때 - 가장 먼저 달려와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다시 이 대통령의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야당 중진 의원 출신으로 차기 인천시장 출마설이 도는 이학재 인천공항공사 사장이 눈엣가시처럼 보일 수 있다. 대통령이 야당 대표 시절, 윤석열 정부가 임명한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의 '파면'을 요구했던 것도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물론 행정부 수반이기 이전에 정치인으로서 이들에 대한 대통령의 감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 그러나 전 국민이 보는 앞에서 대통령이 공직자들을 대놓고 면박하고 자질을 운운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 일종의 '갑질'로 비칠 소지가 있는 데다, 특정인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전 정부 인사들에게 '알아서 처신하라'는
- 시그널로 읽힐 우려도 있다.
임기가 보장된 전 정부 인사들을 차별하거나 배제하는 듯한 태도는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 이런 식으로는 '협치'는커녕, 여야가 더욱 극심한 '정쟁국면'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 '정쟁보다 민생'이라는 대통령의 국정철학이 흔들리는 것은 물론,
- 대통령의 '호통'만 들리는 생중계가 계속될 경우 되레 '국민 갈등'만 부추길 가능성이 농후하다.
세 치 혀는 마치 칼처럼 신중히 휘둘러야 한다. 열광하는 지지층에 취해 멋대로 휘두르다 - 주변까지 해치는 흉기가 될 수 있다.
말은 그 사람의 '품격'을 나타낸다 - . 누군가를 베고 찌르는 칼이 아니라, 누군가의 상처를 보듬고 힘을 주는 '품격 있는 말'이 우리 사회와 가정을 윤택하게 한다.
- 우리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 품격 있는 언어로 공직자, 그리고 국민과 소통하는 참다운 지도자의 모습이다.

조광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