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기업과 산업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국내 주식뿐 아니라 글로벌 주식 투자에도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필자는 20년간의 중국 및 글로벌 투자 분석 경험을 바탕으로 중국 산업과 증시의 변화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그 영향이 독자의 글로벌 투자에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 조목조목 살펴보겠습니다.



한국 증권업이 새로운 성장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최근 증권주 상승은 단순히 주식시장 호황에 기댄 결과만은 아니다. 기업가치 중시 관행의 확산, 그리고 증권 비즈니스모델의 확장이라는 구조적 변화가 그 배경이다.

과거 한국 증권사의 수익 구조는 단순했다. 고객이 주식을 사고팔 때 발생하는 수수료와 고객 예치금에서 나오는 이자 수익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단순한 중개 역할을 넘어 자산 포트폴리오 관리, 퇴직연금 운용까지 담당하며 증권사는 금융 생태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넓히고 있다.

이 변화의 근본에는 가계 자산 배분의 변화가 있다. 한국 가계는 과거 부동산과 예금에 집중하던 자산을 점차 주식과 금융상품으로 이동시키고 있으며, 이는 증권업의 성장 동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새로운 비즈니스모델을 구축할 토대를 마련했다.

그렇다면 중국 증권업도 한국처럼 새로운 성장 국면을 맞이할 수 있을까?

첫째, 중국에서도 가계 자산 배분 과정에서 주식 자산이 중요해질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지난 30년간 중국 가계는 ‘부동산 불패’라는 인식 아래 자산을 부동산에 집중해왔다. 그러나 과잉 공급과 2020년 이후 강화된 반(反)부동산 규제로 수익성이 급격히 떨어졌다. 최근 상하이 등 주요 도시 아파트의 임대수익률은 2.5% 수준에 불과하다. 부동산이 다시 매력적인 투자처로 복귀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부동산 불패 신화가 무너진 뒤 중국 가계는 자산을 은행 예금과 국채 펀드로 옮겼다. 올 상반기 기준 가계 예금은 160조 위안으로 GDP 대비 120%에 달한다. 절대금액뿐 아니라 비율로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또 지난 3년간 채권 시장으로 자금이 몰리며 채권가격이 상승했다. 혹자는 “부동산 버블이 꺼졌는데, 채권 버블이 만들어졌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은행 예금 금리가 1%, 국채 10년물 금리가 1.8% 수준에 불과한 상황에서 앞으로 예금과 채권시장이 자금을 의미 있게 유치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결국 주식시장의 성과에 따라 막대한 가계자산이 주식시장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중국 본토 지수는 2024년과 2025년 모두 두 자릿수 양의 수익률을 기록하며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이는 중국 증권업이 한국처럼 가계 자산의 주식 이동을 기반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둘째, 중국에서도 한국이나 일본처럼 증시의 ‘밸류업’ 분위기와 정책 트렌드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한국이나 일본보다 오히려 그 강도가 더 세다고 볼 수 있다.

밸류업의 핵심 지표라 할 수 있는 주주환원을 보면 변화는 분명하다. 지난 10년간 중국 본토 거래소는 IPO와 증자를 통한 자금조달 중심이었다. 반면,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을 통한 주주환원 기능은 미약했다. 그러나 2023년 이후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2023년부터 기업이 조달한 금액보다 주주에게 환원한 금액이 역전되기 시작했고, 2024년에는 그 격차가 더욱 크게 벌어졌다. 2024년 지표만 놓고 보면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주주친화적이다”라는 우스갯소리도 가능할 정도다.


물론 2025년 들어 홍콩거래소를 중심으로 IPO 금액 규모가 반등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하지만 본토와 홍콩거래소를 합산할 경우 올해도 여전히 주주환원 및 자사주 매입 규모가 IPO 및 증자 규모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변화의 신호탄은 2024년 3월 국무원이 발표한 자본시장 진흥 정책, 이른바 제3차 ‘국9조(新国9条)’였다. 여기에는 소액주주 보호, 부실기업 퇴출 등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방침이 담겼다. 이는 10년 전 발표된 제2차 ‘국9조’와는 확연히 다르다. 당시 정책은 자본시장 규모 확대, IPO 활성화에 초점을 맞췄고 그 결과 주식 과잉 공급으로 이어졌다. 지난 10년 중국 증시는 시가총액 규모는 크게 늘었지만 지수는 제자리걸음을 했다.

정부가 정책기조 변화 등을 통해 주식시장의 방향성을 신경 쓰는 이유는 뭘까? 과거에는 부동산 가격 상승이 ‘부의 효과’를 통해 도시 가계의 소비를 늘리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지금 부동산 가격이 반등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며 정부도 부동산 가격 상승을 원하지 않는다. 경기와 소비 회복을 위해 ‘부의 효과’를 가져올 자산군은 이제 주식시장밖에 없다.

중국 증권업의 미래는 두 가지 축에 달려 있다. 하나는 가계 자산의 이동이다. 부동산 불패 신화가 무너진 뒤 막대한 예금과 채권 자금이 언제, 얼마나 주식시장으로 흘러들어올지가 관건이다. 다른 하나는 정부 정책이다. ‘신국9조’로 상징되는 주주가치 제고 기조가 지속된다면, 중국 증시와 증권업은 단순한 자금조달 창구를 넘어 가계 자산 증식의 핵심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한국 증권업이 새로운 성장 국면을 맞이했듯, 중국 증권업도 제도적 전환과 투자 문화의 변화가 맞물릴 때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설 가능성이 크다.

[이필상 미래에셋자산운용(홍콩) 전무]

20년간 글로벌 주식 리서치 및 투자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2010년부터는 미래에셋자산운용(홍콩)에서 중국 현지 기반으로 중국 및 글로벌 기업의 분석과 투자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저서로는 『아시아 투자의 미래』(2018)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