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화를 정리하는 모습. /뉴스1
지난달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주식을 대량 매도한 반면 채권은 역대 최대 규모로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12일 한국은행의 ‘11월 이후 국제금융·외환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한국 시장에서 외국인은 채권을 118억1000만달러(약 17조2500억원)어치 순매수(매수가 매도보다 많은 것)했다. 2008년 1월 관련 통계 집계 이후 매수 규모가 가장 컸다. 반면 외국인은 한국 주식은 대거 매도했다. 아울러 한국 투자자의 해외 주식 투자도 큰 폭으로 늘며 외국인이 채권 투자를 위해 한국 외환시장에 내다 판 달러를 빨아들였다. 이에 원화는 약세를 보였다. 이달에도 금융시장은 지난달과 비슷한 기조여서 고환율이 쉽게 해소되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외국인, 채권을 역대 최대로 샀지만
한은은 “높아진 시장 금리에 따른 저가 매수세 등에 힘입어 외국인 채권 투자 자금이 큰 규모의 순유입을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채권은 금리가 오르면 가격이 싸지는데, 최근 한국의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줄며 채권 금리가 크게 오르자 채권을 저렴하게 사려는 외국인의 투자가 많이 늘었다는 의미다. 지난달 말 한국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연 3.35%로 한 달 전 3.06%에 비해 0.29%포인트 상승했다. 특히 지난달 27일 한은의 기준금리 동결 결정 직후 국채 금리가 많이 올랐다. 대미(對美) 투자금 충당을 위한 채권 추가 발행 가능성, 재정 적자에 따른 국채 발행 확대 등도 한국 채권 금리를 끌어올리는 원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외국인의 역대급 채권 매수가 원화 환율을 끌어내릴 것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외국인은 지난달 한국 채권을 많이 사들이면서도 주식은 91억3000만달러 어치 순매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전방위적인 관세 인상을 발표하며 불안감이 확산했던 지난 4월 이후 최대 매도세다. 한은은 “인공지능(AI) 고평가 우려 등으로 위험 회피 심리가 강화된 가운데 국내 주가 상승에 따른 차익 실현 매도 등으로 외국인 투자금은 큰 폭의 순유출로 전환했다”고 했다. 외국인은 5~10월에는 한국 주식을 순매수했었다.
한국인의 해외 투자도 크게 늘면서 환율 상승을 부추겼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개인 투자자는 지난달 55억3000만달러 규모의 해외 주식을 순매수했다. 지난 10월 역대 최대인 68억1000만달러 순매수를 기록한 뒤 두 번째로 큰 금액이다. 지난달 ‘서학개미(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한국 개인)’가 산 미국 주식과 외국인이 판 한국 주식을 합치면 총 146억6000만달러 규모로, 외국인의 한국 채권 매수 규모를 크게 웃돈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투자자의 지난달 해외 투자 절대 금액은 다소 줄었지만 미국의 추수감사절 연휴 등으로 거래일이 10월보다 적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하루 평균 투자액은 비슷한 수준이었다”고 했다. 한국 투자자들은 이달 들어서도 11일까지 해외 주식을 12억2000만달러어치 사들이며 공격적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 금리 인하에도 진정 안 되는 원화 환율
외국인이 한국 주식을 팔거나 한국인이 해외 주식을 살 경우 모두 원화를 달러로 바꿔야 하기 때문에 한국 외환시장에서 달러 수요가 올라가며 원화 환율도 상승하게 된다. 내년부터 연간 최대 200억달러를 미국에 투자금으로 보내야 한다는 점도 환율엔 부담이다. 실제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정부가 잇달아 고환율 방어 대책을 발표하고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기준금리 인하로 달러 가치가 하락했음에도 높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직후인 11일 환율은 전날보다 2.6원 오른 달러당 1473.0원에 주간 거래를 마쳤고 12일에도 추가로 0.7원이 올랐다. 한은에 따르면 11월 초 이후 지난 11일까지 달러 대비 원화 가치는 3.4% 내려가 일본 엔(-1.2%), 대만 달러(-1.1%), 인도네시아 루피아(-0.3%) 등 다른 아시아 국가의 통화보다 하락 폭이 컸다. 같은 기간 주요 6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1.5% 하락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