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편 최참판댁 문전에는 예전과 달리 각처의 마름들이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그들 중에는 조준구가 갈아치운 사람들이 있었다. 호열자에 죽은 사람 자리에는 물론 조준구의 입김이 닿은 사람을 앉혔으며 대세를 따라서 옛적부터 최참판댁 일을 보아온 사람도 점차 마음을 달리했다. 자연 그들은 드나들면서 빈손으로 오지 않았고 조준구 기색을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으며 아첨이 늘어갔다. 어쩔 수 없는 인심의 추세다. 간사스럽지 않던 사람도 간사스러워지고 의리가 있던 사람도 의리를 잃어버리고 땅속에 묻힌 사람은 말이 없으니 눈앞에 보이는 것은 자신들의 살 길이요 처자식의 얼굴이다.
인심도 물과 같아서 낮은 곳으로 흐르기 마련이요
거슬러오르는 법이 없으니 서희의 처지는 고립되어갈 수밖에 없었다. 수동이 피를 쏟고 자리에 누우면서부터 더더욱 그러했다.
마을 사람들은 삼수가 한번 얼씬거리면 까닭 없이 불안해한다. 애써 비굴한 미소를 보냈으며 술 마시러 가지 않겠느냐 하며 주막으로 데려가기도 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그들 이웃 사이에서도 최참판댁 내막에 관한 뒷공론 따위는 깊이 삼갔다. 행여 삼수 귀에 들어가지 않을까 두려워한 때문이다. 어쩌다가 실수로 말을 해버리면 그날 밤 그 사람은 어두운 천장을 올려다보고 후회하였다.
'낮말은 새가 물고 가고 밤말은 쥐가 물고 간다 카는데 에이 이눔우 입을 그만 돌에 문질러부으믄 좋것다.'
그러다가 말을 들었던 상대가 밭둑에서 삼수와 얘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먼발치로 보게라도 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이었다.
“우리 집 암이 요새는 맨날 알을 낳는구마. 이까짓 장에 내봐야 몇 푼이나 될 기라고. 너거 아아들 삶아 믹이라."
하며 제 집 아이들에게는 손도 못 대게 한 계란을 갖다 주며 말막음을 하려고 했다. 마을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와 같은 독()을 마을에다 뿌리고 다닌 것이 삼수다.
'너거들 멩줄은 내가 쥐고 있이니께 알아서들 하라고. 나는 이자 최참판네 종놈은 아니다. 다른 일이 몰라도 동네 일이라 카믄 내 입하나에 달리 있이니께.'
말로도 그렇게 지껄였고 농부들을 바라보는 눈초리는 그 이상의협박도 하고 있었다. 막딸네를 걷어찬 것은 벌써 옛날이다. 삼월이하고는 내외가 된 것처럼 한방 거처를 하는 터이나 조준구의 편리를 보아주고 당분간 자신의 아쉬움도 풀자는 심산이었지 애초 생각한 대로 삼월이를 데리고 살 생각은 없었다. 그의 야심은 조신스럽고 얼굴도 반반하게 생긴 봉기의 딸 두리에게 있었다. 평생을 함께 살 여자라면 처녀라야 한다는, 그에게는 과람한 자존심 때문인데 종의 신분으로 될 법이나 한 일인가. 그러나 그는 조준구의 두호를 과신했으며 뚜렷한 것은 아니었지만 뭔지 약점을 쥐고 있다는 느낌에서 조준구를 뜻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자신과 어처구니없이 마을 사람들을 자기 졸개쯤으로 생각하는 과대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는 자기 세력을 믿고 봉기 딸에게 희망을 갖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