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기업과 산업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국내 주식뿐 아니라 글로벌 주식 투자에도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필자는 20년간의 중국 및 글로벌 투자 분석 경험을 바탕으로 중국 산업과 증시의 변화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그 영향이 독자의 글로벌 투자에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 조목조목 살펴보겠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동남아시아 경제와 증시에 대한 기대는 뜨거웠다. 가장 큰 기대 요인은 중국 제조업이 아세안으로 이전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이유는 명확했다. 30년간 고도성장을 이어온 중국의 인건비가 아세안 국가들보다 훨씬 높아졌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의 1인당 GDP는 1만3000달러를 넘어섰지만, 인도네시아·베트남·필리핀은 여전히 5000달러 수준에 머물러 있다.

많은 이들은 1980년대 동남아시아 호황을 떠올렸다. 당시 일본 기업들은 제조 원가 상승을 피하기 위해 공장을 대거 동남아로 이전했고 그 결과 투자·건설 붐과 경제 호황이 찾아왔다. 여기에 2016년 트럼프 1기 정부가 들어선 이후 미·중 갈등이 심화되면서 관세와 정치적 요인으로 중국 내 공장이 동남아로 옮겨갈 것이라는 기대도 더해졌다.

하지만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최근 동남아 증시는 상대적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11월 25일 기준 12개월간 MSCI ASEAN 지수 상승폭은 7%에 그쳤다. 이는 같은기간 중국(36%)은 물론이고 글로벌 지수 (16%)와 비교해도 부진한 성적이다. 이유는 다양하다. 태국과 필리핀은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고 인도네시아는 석탄·팜유 등 주요 수출품 가격이 하락하면서 기존 경제 활력소가 약해졌다. 게다가 AI 관련 종목을 아세안 증시에서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도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이유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시장의 오래된 기대와 달리, 동남아로의 공장 이전과 관련한 투자 수요가 예상을 밑돌고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중국산 제조품이 동남아시아 시장을 휩쓰는 모습이 뚜렷하다. 동남아시아의 경제성장률은 과거 일본·한국·중국이 고도성장기에 기록했던 수준과 비교하면 확연히 낮다. 또 GDP 대비 투자 비율 역시 30%를 넘지 못하고 있다. 참고로 중국에서 그 비율은 오랜 기간 40%를 훌쩍 넘겼다. 물론 중국처럼 과도한 투자가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제조업의 글로벌 경쟁력이 투자 활성화를 통해 경제성장을 견인해왔던 공식이 동남아에서는 작동하지 않고 있다.

이같은 일이 발생한 이유는 뭘까. 간단히 보자면 그동안의 예상과 달리 중국산 제품의 원가 경쟁력이 크게 약화되지 않았다는 점이 주요 원인이다. 우선 중국 기업들의 기술 혁신 능력이 인건비 상승을 상쇄했다. 여기에 결정적인 요인이 또 있다. 바로 위안화의 약세 기조다. 지난 10년간 위안화 가치는 거의 오르지 않았다. 최근 5년간 대규모 무역수지 흑자와 물가 안정세 등 실물 경제 지표는 통화 강세를 가리키지만, 위안화의 실질실효환율은 오히려 15% 가량 하락했다.


관세에 따른 동남아의 반사이익도 크지 않았다. 트럼프 1기 당시 미국은 중국만을 겨냥해 관세를 인상했다. 그러나 트럼프 2기에 들어서면서 미국은 모든 대미 무역 흑자 국가를 대상으로 관세를 높이는 경향을 보였다.

이러한 상황은 1980~90년대 동남아시아가 누렸던 환경과는 확연히 다르다. 당시 동남아는 일본의 고성장 후광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고성장을 이어온 일본은 1990년 일인당 국민소득이 2만6000달러에 이르며, 당시 미국(2만4000달러)을 넘어 세계 최고 고소득 국가가 되었다. 당시 일본과 아세안(태국 1600달러) 간 소득 격차는 10배 이상이었다.

특히 1985년 플라자협의 이후 엔화 가치는 3년 만에 두 배로 뛰었다. 제조 원가 경쟁력이 급격히 약화된 일본 기업들은 생산 거점을 해외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정치적 부담이 큰 중국 대신, 비교적 우호적인 동남아 국가들을 선택했다. 그 결과 동남아시아는 제조업 투자 붐을 맞았다. 특히 태국은 일본 자동차·전자 기업들의 설비 이전 덕분에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눈부신 성장기를 경험했다.

하지만 지금은 1980년대 일본과 동남아시아 사이에 존재했던 것과 같은 현격한 임금 격차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사실 중국산 제품의 공세는 동남아시아만의 고민이 아니다. 이는 글로벌 무역 불균형의 핵심 과제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유럽에서는 가성비 좋은 중국산 자동차가 몰려오면서 유럽 제조업의 자존심이었던 자동차 산업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 내 투자와 GDP 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동남아시아가 다시 투자 매력을 회복할 해법은 의외로 간단할지도 모른다. 위안화의 절상이다. 물론 환율을 결정하는 변수는 금리, 국내외 정치 등 복잡다단하며 그 향방을 예측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동남아시아의 운명을 바꾸고 글로벌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는 데 있어 위안화의 움직임이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필상 미래에셋자산운용(홍콩) 전무]

20년간 글로벌 주식 리서치 및 투자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2010년부터는 미래에셋자산운용(홍콩)에서 중국 현지 기반으로 중국 및 글로벌 기업의 분석과 투자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저서로는 『아시아 투자의 미래』(2018)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