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지중해의 패권을 쥐고 로마와 양자대결을 벌이던 카르타고, 대부분의 역사책에 로마의 상대정도로만 나와있고 카르타고만의 역사를 다룬 책도 그렇게 흔치 않은데 이번에 도서관에서 눈에 띄어 빌려봤다. 꽤 긴 책이라 다 읽는데 몇주걸린듯.
케임브리지대학교 출신 역사학자 Richard Miles가 쓴 "Carthage mvst be destroyed". 700여년간의 카르타고의 흥망성쇠를 묘사해나간 책임. 재밌고 읽기 쉽게 씌여있어 첫문단 읽으면 빠져드는 책들 중 하나다. 카르타고를 중심으로 씌여있으니 독자들은 카르타고 입장이 되어 역사의 흐름을 보게 되는데.. 지중해 전체를 누비던 화려하던 문명이 결국 로마의 칼앞에 무너지는 BCE 146년이 너무 슬프게 다가옴.
이 3차 포에니전쟁을 기록한 당시 그리스출신의 역사가 Polybius가 현장에서 로마의 장군 스키피오 아멜리우스를 따라다니며 생생하게 기록한 묘사들이 살아있어 더욱 가슴아프게 느껴진다. 사실 폴리비우스도 로마의 3차포에니전쟁이 정의로운 전쟁이 아니었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었음.
Los Alamos 컵의 커피와 함께하는 독서타임 ㅍㅌㅊ?

사람들은 주로 한니발 장군이 활약한 2차 포에니전쟁만 많이 들어봤을테지만 사실상 로마의 상승/카르타고의 몰락이란 대세를 결정지은 중요한 전쟁은 1차 포에니전쟁이었다. 이번에 1차포에니전쟁에 대해 많이 배우게됐는데 이 시점이 로마가 지중해연안의 "절대권력"을 지니기 시작한 최초의 시기라 그전까지 그토록 중시했던 국가로써의 정의/명분(fide)을 망각하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함.
1차 포에니전쟁을 정보글 형식으로 간략하게 설명해보면..
1. 당시 시실리는 동부의 그리스도시 시라쿠사를 중심으로 하는 그리스세력과 서부의 카르타고 식민지세력들이 늘 티격태력하며 싸우고 있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었음.
2. 그 와중에 시라쿠사가 이탈리아 본토에서 데리고 온 용병들이 전쟁 후 돈까지 받고 집으로 가는 대신 난데없이 잘 살고 있던 Messina라는 시실리동북부 끝의 도시를 기습공격함.
3. 이 공격은 손쉽게 성공하고 점령자들인 용병들은 원래 있던 남자주민들은 다 죽이고 여자들은 아내/첩으로 삼는 만행을 저지름 (현대인들에겐 만행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게 꽤 전형적인 고대시대의 루틴임. 요즘세상 태어난거 감사하게됨).
4. 이에 열받은 시라쿠사는 대군을 이끌고 메시나를 치러 오는데.. 이에 겁먹은 메시나는 카르타고에 도움을 요청함.
5. 이에 들어온 카르타고는 도와주는 대신 이 기회에 메시나를 자신의 영향권으로 두려함. 이게 맘에 안든 용병들은 몰래 로마에 또 도움을 요청함.
6. 이 요청을 받은 로마의회엔 큰 찬반토론이 벌어짐. 부정한 전쟁의 원흉인 저 용병들 편을 들어선 안된다 vs. 시실리에서 카르타고의 세력이 커지는 걸 묵인할 수 없다. 였는데 다들 알겠지만 결국 후자가 토론에 승리, 참전하기로 함. 이에 로마역사상 첨으로 바다를 건너 원정을 가게 되는데..
7. 원래 해전으론 수백년간 지중해를 맘대로 항해하던 능력이 있던 카르타고와는 상대를 할 수준이 아니었음. 하지만 엔지니어링기술 원탑에 포기하지 않는 정신을 지닌 로마는 결국 카르타고함선을 뛰어넘는 전함을 개발하게됨.
8. 그래서 결국 큰 해전이 벌어지는데..
그 당시까지 국제사회에서의 최대해전이었던 시실리섬 남부해상에서 벌어진 카르타고/로마의 해전을 묘사한 부분. (The two sides clashed at Cape Ecnomus off the southern coast of Sicily, in what was the largest naval battle of the ancient world.) 여기서 압승한 로마는 1차포에니전쟁을 승리하게 됨.

9. 그래서 시실리섬 서부의 식민지지역을 전부 잃는 선으로 전쟁을 마무리짓는 조약을 하게된다... 어? 그럼 1차포에니전쟁의 결과로 카르타고가 로마에 Sicily와 Sardinia 섬을 넘겨준걸로 배웠는데 그럼 Sardinia는 어떻게 된거냐고?
10. 그건 곧바로 이어진 용병들의 반란과 관련이 있음. 카르타고는 시실리에서 데리고 온 용병들 수만명을 (분산수용하지않고) 한곳에 모아두는 결정적 실수를 하는데, 전쟁패배와 보상금으로 돈이 없던 카르타고는 약속한 돈을 줄 수 없었고 이에 이 북아프리카로 돌아온 용병들과 사디니아에 남아있던 용병들이 거의 동시에 반란을 일으킴. (이 두 반란이 서로 조율된건지는 아직도 역사가들이 토론중임.)
11. 그래서 이때 카르타고는 북아프리카의 용병들에 거의 멸망할뻔 하다가 Hamilcar Barca의 인덕때문에 간신히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게되었지만 (이부분을 자세히 설명하려면 재밌는 정보글 한편 쉽게 쓴다. 과정이 정말 드라마틱함) 사디니아의 반란용병은 모든 섬내의 카르타고인들을 죽이고 섬 자체를 로마에 가져다바침.
12. 로마는 첨엔 거절하다가 결국 받아들이게되는데 이는 사실 명백한 조약위반이었고 로마는 힘으로 카르타고의 항의를 억누르고 오히려 더 큰 전쟁배상금까지 요구함. 막가파 로마 ㄷㄷㄷ
13. 그리하여 꿀흐르던 식민지였던 시실리서부와 사디니아섬을 동시에 잃은 카르타고의 Hamilcar Barca 장군은 새로운 개척지로 지중해 최서단 이베리아 반도에 당시 9살이던 아들과 함께 도착, 그 후 20년간 개척하며 이베리아반도 남동부의 대부분을 식민지로 만듬. 이때 하밀카 바르카는 죽고 우여곡절끝에 결국 20대의 아들이었던 Hannibal Barca가 군대를 이어받게되는데... 여기서부터 누구나 알고 있는 2차포에니전쟁이 시작됨.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라 설명은 생략하고 이 책에 있는 한니발장군의 행로가 나온 지도로 대신함.

이 멋있는 카르타고의 역사를 따라 북아프리카 카르타고(현 튀니지)와 리퍼스마그나(현 리비아)에 가는게 꿈인데 여긴 훗날 은퇴하고나 가보려고 하고있고, 대신 이베리아반도의 페니키아식민지 Gades(현 Cadiz)와 하밀카장군이 세운 New Cartago (현 카타제니아)에는 다음 스페인 여행때 꼭 들려보려고 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