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청년이 게으르기 때문도, 요즘 아이들이 약해서도 아니다.
문제의 뿌리는 훨씬 더 깊고 구조적이다.
 

우리는 초등학생 때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자본주의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배우지 못했다.
돈이 어떻게 흘러가고, 자산을 쌓는 법이 무엇이고,
노동자와 자본가의 차이가 무엇인지조차 배우지 못한다.
 

그 대신 우리는 끊임없이 시험과 경쟁으로 몰아넣는 ‘노동자 훈련 시스템’ 속에서 자랐다.
비판적 사고도, 토론도, 협상도, 금융지식도,
심지어 ‘왜 공부해야 하는가?’조차 설명해주지 않는다.
 

왜 그럴까?
 

이 사회의 어른들과 기득권은 이미 자본을 갖고 있다.
자본가로서 자신들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자본가 경쟁자를 만드는 것보다
잘 훈련된 노동자를 만드는 편이 훨씬 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자본주의를 가르치지 않는다.
생각할 틈도, 사회를 관찰할 시간도 주지 않는다.
오직 “더 열심히, 더 오래 공부해라”라고만 말한다.
그 공부는 대부분 사회에 나오면 거의 쓰지 않지만,
정작 필요한 지식은 학교에서 단 한 시간도 다루지 않는다.
 

그럼 청년들은 사회에 나와 깨닫는다.
‘이 게임은 이미 기울어져 있었구나.’
기득권은 부동산·자산·네트워크를 갖고 있고,
청년은 빚과 월세로 시작한다.
그러니 정책도, 교육도, 사회 구조도
항상 미래보다 현재의 기득권을 지키는 쪽으로 흘러간다.
 

이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은 단 하나다.
청년 본인들.
 

청년이 투표하지 않으면 정치인은 이렇게 계산한다.
“청년 정책은 해도 표가 안 되고, 안 해도 표가 안 빠진다.”
그럼 당연히 고령층과 기득권의 이익을 먼저 맞춘다.
이건 정치인의 악의가 아니라 ‘정치 시스템의 논리’다.
 

우리는 이제 알아야 한다.
이 시대의 청년은 그냥 생존자가 아니라,
기득권이 만들어놓은 시대착오적 시스템의 가장 큰 피해자이자,
동시에 그것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세대
라는 것을.
 

공부는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의 공부는 불완전하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시험 문제가 아니라
세상을 읽는 법, 돈의 흐름, 자본의 논리,
그리고 어떻게 행복하게 살아갈 것인가이다.
 

이 구조를 바꾸는 첫걸음은 단 하나다.
청년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것.
누군가 대신 바꿔줄 사람은 없다.
우리가 움직여야 한다.